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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희귀질환 리포트] ① "성인이라는 이유로…" 저인산효소증 환자의 잔인한 현실

환자 대다수 성인 이후 확진, 급여 기준 못 맞춰 진통제로 연명…조기 진단 체제 강화돼야

2026.03.19(목) 11:09:44

[비즈한국] 희귀질환 가운데서도 환자 수가 특히 적은 질환은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통상 유병인구 200명 이하이거나 질병분류코드조차 없는 질환을 뜻한다. 환자가 적다는 것은 곧 진단 경험도, 치료 데이터도, 사회적 관심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병명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게 진단을 받아도 치료제와 제도가 따라오지 못해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온전히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 비즈한국은 숫자 뒤에 가려진 극희귀질환 환자들의 현실과 의료 사각지대를 짚어본다.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통증이 몰려와도 성인 저인산효소증 환자들이 당장 의지할 수 있는 건 진통제뿐이다. 병의 진행을 늦추고 삶을 붙잡아줄 치료제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다. 단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성인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의 높은 문턱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50명 남짓으로 파악된 저인산효소증은 환자 수가 극히 적은 극희귀질환이다.

 

저인산효소증은 이름은 낯설지만 결코 ​고통이 ​가볍지 않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체내 ALP(알칼라인 포스파테이스) 효소가 부족해지는 유전 대사질환으로, 10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효소가 부족하면 뼈와 치아가 제대로 단단해지지 못해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 반복되고 근육은 점차 약해진다. 보행 장애가 나타나고, 증상이 악화하면 휠체어에 의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단순히 뼈가 약한 병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무너뜨리는 질환이다.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사회적 관심과 의료적 경험이 부족한 극희귀질환의 전형적인 어려움이 이 병에도 고스란히 겹쳐 있다.

 

저인산효소증은 뼈와 치아를 단단하게 만드는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매우 희귀한 유전질환이다. 뼈가 쉽게 부러지고 근육이 약해지며, 치아가 일찍 빠지거나 걷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사진=생성형AI

 

#성인은 넘기 힘든 급여 조건, 약값만 연간 8억 원

 

그나마 저인산효소증은 치료제가 있다. 효소대체요법 주사제 ‘스트렌식’은 저인산효소증 환자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구명줄이다. 소아기에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해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충족하면 희귀질환 산정특례와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받아 실부담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고가 약제이지만 환자 부담은 100만~800만 원 수준으로 관리된다.

 

문제는 그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한 성인 환자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스트렌식 급여 조건으로 △연령 및 성별 기준보다 낮은 ALP 수치와 정상범위를 넘는 PLP 수치 △치료 시작 전 방사선 사진에서 확인되는 저인산효소증의 특징적 골 증상 △만 19세 미만 치료 시작을 요구하고 있다. 소아 환자에게는 열려 있지만 성인 환자에게는 사실상 닫힌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실에서는 저인산효소증 환자 상당수가 어릴 때 병을 알아채지 못한다. 증상이 골다공증, 류마티스, 신경근육계 질환 등과 비슷해 오인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진단 방랑을 겪다가 40~50대가 돼서야 병명을 알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뒤늦게 진단받은 환자들은 치료제가 있어도 보험급여를 적용받지 못한다. 약값 전액을 자비로 감당해야 한다.

 

스트렌식은 저인산효소증(HPP) 치료에 쓰이는 효소대체요법 주사제로, 성분명은 아스포타제 알파다. 국내에서는 용량에 따라 1바이알당 약 80만 원대부터 530만 원대까지 급여 상한금액이 책정돼 있다. 사진=아스트라제네카 홈페이지

 

그 비용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난다. 심평원에 따르면 스트렌식 급여 상한금액은 고용량 80mg/0.8mL 기준 1바이알에 537만 9760원이다. 이를 주 3회 투여하면 연간 비용이 8억 원을 넘는다. 가장 저렴한 12mg/0.3mL 제품도 1바이알당 80만 6964원으로 연간 1억 2600만 원가량이 든다. 성인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한 채 도수치료나 진통제로 버티는 이유다.

 

김현주 한국저인산효소증 환우회 회장은 “청소년까지는 급여 적용이 되지만 성인은 비급여인 데다 일정 기준이 확인돼야만 약을 사용할 수 있어 치료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다”며 “유전자 돌연변이로 골 증상이 있는데도 엑스레이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급여 조건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겐 질환 자체의 고통만큼이나 병을 증명해야만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현실이 또 다른 장벽인 셈이다.

 

의료계도 지금의 급여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본다. 이유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경제성을 따지지만, 치료 기회를 박탈당한 성인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비용과 삶의 질 하락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장의 재정지출은 계산하면서도 치료를 놓친 환자가 장기적으로 떠안게 되는 통증과 돌봄 부담, 노동 손실은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특히 환자 수가 적고 임상 데이터 축적이 쉽지 않은 극희귀질환일수록 이런 경제성 중심 접근은 환자의 치료 기회를 더 좁힐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성인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18세 미만, 영국은 17세 미만에 저인산효소증 증상이 발현한 것으로 확인되면 실제 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스트렌식 급여 대상에 포함된다. 일본은 더 나아가 연령 제한 자체를 두지 않아 성인 저인산효소증 환자도 공적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성인 환자를 급여 체계 밖으로 밀어내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다.

 

#조기 발견 못하면 치료 시기 놓쳐

 

급여 장벽 못지않게 큰 문제는 늦은 진단이다. 저인산효소증은 워낙 희귀한 데다 증상이 골다공증, 류마티스, 다른 신경근육병증과 비슷해 병을 알아채기 자체가 쉽지 않다. 그 결과 환자들은 몸이 계속 망가지는데도 정확한 병명을 듣지 못한 채 수십 년을 보내기 쉽다. 치료제가 있어도 진단이 늦어지면 결국 치료 시기도 놓치게 된다.

 

진단은 대개 치과나 정형외과, 소아과에서 ‘이상 신호’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영유아기에 유치가 지나치게 일찍 빠지거나 원인 모를 골절이 반복되면 의심이 필요하다. 이후 혈액검사로 ALP 수치 저하를 확인하고, 엑스레이로 뼈의 무기질화 저하나 성장판 변형 같은 특징적 골격 손상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ALPL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되면 확진에 이른다. 다만 실제 임상에서는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이 과정이 교과서처럼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극희귀질환의 경우 의료진이 평생 한 번도 환자를 못 봤을 가능성도 높아 조기 진단 체계를 더 촘촘히 갖출 필요가 있다.

 

저인산효소증(HPP) 환아의 조기 탈락 유치(오른쪽)와 정상 유치 비교. 사진=논문 ‘저인산효소증의 치과적 양상 및 관리’ 오카와 레나·나카노 카즈히코

의료계는 특히 치과 현장에서의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별다른 잇몸 질환이나 외상이 없는데도 4세 이전 영유아기에 유치가 조기 탈락한다면 저인산효소증을 강하게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유치가 빠질 때 뿌리가 정상적으로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이가 빨리 빠지는 것이 아니라 치아를 지지하는 뼈와 조직에 문제가 생겨 탈구되듯 빠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강정민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소아치과 교수는 “유치는 어차피 빠지는 치아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뿌리가 남아 있는 상태로 빠지는 것은 치아 주변 조직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라며 “뼈에서 탈구돼 빠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영구치가 나와도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도 치아가 흔들리거나 빠질 수 있고 발음 문제나 부정교합이 생길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소화기능과 성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 올해 1월부터는 영유아 구강검진표에 유치 탈락 여부를 묻는 문진 항목이 포함됐다. 치과의사의 판단에 따라 대학병원이나 내과로 연계할 수 있는 조기 발견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뒤늦게나마 진단 체계를 손보려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현장 인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가 있어도 실효성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목소리 반영할 창구 ‘절실’​

 

저인산효소증 문제는 한 질환만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제가 있어도 급여 기준에 막혀 쓰지 못하고, 희귀하다는 이유로 진단과 치료 체계가 늦어지며, 환자 목소리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한국 희귀질환 정책 전반에 반복되고 있다. 특히 극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더 쉽게 밀려난다. 국가는 ​환자들을 ​사실상 ‘없는 사람’ 대하듯 작동하게 된다.

 

대한내분비학회는 지난 7일 한국저인산효소증 환우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저인산효소증의 진단 및 치료환경 개선, 질환 인식 제고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한국저인산효소증​ 환우회 제공

 

대한내분비학회도 이런 현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고 보고, 지난 7일 한국저인산효소증 환우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저인산효소증의 진단 및 치료환경 개선, 질환 인식 제고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학회와 환자단체가 손을 잡은 것은 환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올릴 통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대한내분비학회 희귀질환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이유미 교수는 “희귀질환이 7000개가 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환우회는 많지 않다”며 “우리나라에서도 환자의 목소리가 더 잘 반영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내분비학회 이사장인 정윤석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도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했지만 일부 희귀질환에는 충분한 의료적 도움이 제한돼 있다”며 “국회에서도 관심을 가져 인지도가 높아지고 의료 접근성이 점차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극희귀질환 정책의 수준은 결국 환자 수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을 보여준다. 환자가 적다는 이유로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고통까지 국가가 책임질 것인지가 의료 선진국의 진짜 기준이다. 저인산효소증 성인 환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너무나 기본적인 권리다. 치료제가 있는데도 맞지 못하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K-의료의 성과는 절반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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