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전기차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하는 방안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한경협은 5월 6일 국무조정실에 전달한 ‘2026 규제개선 종합과제’ 100건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제안했다. 일시적 수요 정체인 캐즘(Chasm) 현상을 겪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배터리 교환 및 구독 서비스인 ‘BaaS(Battery as a Service)’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하지만 총 비용 증가 및 책임소재 불분명 등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대한민국 전기차 시장은 초기 구매 비용은 높고 충전 인프라는 부족해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현 체계에서는 고가의 배터리가 차량과 일체형으로 취급되어 소비자가 차량 구매 시 배터리 가액 전체를 지불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전기차 가격의 40% 이상을 배터리가 차지한다.
한경협이 제안한 배터리 소유권 분리가 실현되면 소비자는 차체만 구매하고 배터리는 구독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고가 5000만 원 수준의 전기차를 기준으로 2000만 원가량의 배터리 가격을 제외하고 보조금을 적용받으면, 실구매가는 1000만 원 중후반대로 낮아질 수 있다. 다만 초기 구입비용이 낮아지는 대신 배터리 구독료가 쌓이면 결국 총비용은 더 커질 우려도 제기된다. 배터리 소유권을 가진 리스사나 금융사는 배터리 구매 자금을 조달할 때 발생하는 이자와 자산 관리 비용을 구독료에 녹여내기에 소비자의 장기적 금융 비용을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배터리 소유권 분리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은 법적 근거의 미비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자동차를 하나의 통합된 자산으로 규정한 터라 배터리만을 별도로 분리해 소유권을 등록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 배터리가 장착되지 않은 차량은 원칙적으로 자동차 등록이 불가능하며, 자동차등록원부에도 배터리 소유권자를 별도로 기재할 수 없다.
한경협은 이러한 규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차대번호(VIN)와 별개로 배터리에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각각의 소유권을 독립적으로 인정하는 ‘이중 등록제’ 도입을 촉구했다. 배터리 셀 제조사, 주요 원료 정보 등을 포함한 고유 식별번호가 자동차등록증에 별도로 기재되면 배터리는 단순 부품이 아니라 매매와 가치 평가가 가능한 ‘독립적 자산’이 된다. 정부는 자동차관리법을 일부 개정해 배터리 식별번호 기재를 의무화하는 등 기초 작업을 시작했으나, 보편적인 제도화를 위해서는 세부 시행령 마련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BaaS 시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니오(NIO)는 2024년 말 기준 중국 내 2400개 이상의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을 운영하며 4000만 회 이상의 누적 교환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BaaS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16억 3000만 달러(2.3조 원)에서 2034년 92억 달러(13.3조원) 규모로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유권 분리는 ‘사용 후 배터리’ 시장의 활성화와도 직결된다. 배터리가 전문 운영사에 의해 관리되면 충전 횟수, 온도 이력 등 방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으며, 이는 배터리의 잔존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 성능이 저하된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재사용하거나 원자재를 추출하는 재활용 단계에서 자산이 되어 자원 순환 경제 체계로 편입이 용이해질 수 있다.
BaaS 모델의 확산을 위해서는 기술 표준화 부재와 보험 체계 미비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각 완성차 제조사는 차량의 성능과 효율을 위해 크기, 전압, 물리적 체결 구조가 각기 다른 배터리 팩을 설계한다. 이 때문에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BSS)이 특정 브랜드의 차량만 수용할 수 있어 인프라의 중복 투자와 비효율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국가 표준을 제정해 배터리 제조사가 달라도 교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다만 기술적 차별화를 경쟁력으로 삼는 글로벌 제조사들이 합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조사별 전용 교환소가 따로 설치될 경우 지금의 주유소와 같은 범용성을 확보하지 못해 소비자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
소유권 분리는 사고 시 책임 소재와 직결된다. 차량 화재 발생 시 원인이 배터리 자체 결함인지, 차량의 BMS 제어 오류인지, 혹은 사용자의 부주의인지 명확히 규명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기술적 분석을 투입해야 한다. 특히 ‘차체’와 ‘배터리’ 소유주가 다른 경우 사고 보상 책임의 주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격화될 수 있다. 현재는 배터리 전용 보험 상품이 적어 사고 시 소비자 보호가 취약할 위험성이 있다.
배터리 소유권이 분리된 차량이 중고차 시장에 나올 경우에는 더욱 복잡해진다. 구매자는 차량 가격 지불 외에도 이전 차주의 배터리 구독 계약을 승계하거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독료 인상이나 승계 조건이 까다로워질 경우 중고차의 매력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소유권을 유지하며 차량 수명 주기 전반에 걸친 후방 산업 수익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독립 정비소나 영세 재활용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배터리 데이터 개방과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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