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연간 15조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낳는 ‘구조적 재난’이다. 비즈한국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비만 청구서의 근본 해법을 찾아 나섰다. 무너진 소아청소년 식생활 환경을 들여다보고, 비만 치료제 급여화와 설탕세 도입을 둘러싼 첨예한 정책적 딜레마를 살펴본다. 나아가 약물 만능주의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100조 원 시장의 판도를 바꿀 K-바이오의 혁신 현장까지 조명한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 비만치료제에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커지지만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가뜩이나 빠르게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가당음료에 이른바 ‘설탕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소비자에 부담이 전가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크다.
#단맛 중독의 대가…10년 새 소아 비만 81% 급증
10~20대 젊은 층의 당 섭취 확대 추세는 위험 수위를 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 국내 10~20대의 총열량 대비 당류 섭취량 비율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인 ‘총열량의 10% 이내’의 한계치에 다다랐다.
특히 여성의 경우 6~11세(10.2%), 12~18세(11.1%), 19~29세(10.5%)에서 WHO의 권고 상한선을 초과했다. 이것이 비만 유병률 증가로 이어진 모양새다. 질병관리청의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 새 소아·청소년 비만 유병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3~2015년 8.7%에 불과했던 6~11세 소아 비만 유병률은 2022~2024년 13.6%로 56.3%나 뛰었다. 특히 같은 기간 남자 소아의 비만율은 9.3%에서 16.9%로 81.7% 치솟았다. 12~18세 남자 청소년의 비만율도 12.7%에서 18.5%로 높아졌다.
이 지점에서 설탕세는 미래 세대의 건강을 지키고 건보 재정을 방어할 대안으로 꼽힌다. 설탕세를 부과해 식품·음료 산업계의 자발적인 당 사용 감축을 유도하고, 설탕세에서 확보한 세수를 비만병 환자들의 치료제 급여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논리다.
#산업계 반발과 “서민 증세” 논란…‘역진성’ 극복이 관건
하지만 국내에서 설탕세 논의는 사실상 증세라며 번번이 좌초됐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가당음료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가장 큰 장벽은 식품·음료 산업계의 거센 반발이다. 업계는 설탕세가 도입되면 원가가 상승해 제품 가격이 인상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관련 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설탕세는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한 세금이 될 수 있어 정치적 부담도 크다. 제조사나 수입업체에 설탕세가 부과돼도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텐데 가당음료나 저렴한 가공식품 소비가 많은 저소득층 가계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동 사태 등 글로벌 인플레이션 여파로 장바구니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인 만큼 설탕세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크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달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설탕세 도입과 관련한 질문에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있지만 지금 (도입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학계에서는 설탕세 도입 논의가 뜨겁다. 지난달 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가당음료 설탕부담금’ 정책토론회에서 음료 100ml당 설탕 함량이 5~8g이면 리터당 225원, 8g 초과시 리터당 300원을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조세 저항 우려에도 학계에서는 비만 유발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가격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칼로리 배달 음식과 달콤한 디저트에 24시간 노출된 지금 환경에서 단순한 보건 교육이나 개인의 절제력만으로 비만을 통제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황지윤 상명대 외식의류학부 식품영양학전공 교수도 지난 3월 13일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설탕세는 기업이 스스로 당 함량을 낮추게 유도해 이 환경 자체를 바꾸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며 “설탕세로 확보된 세금은 단순히 징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식품을 사기 어려운 취약계층에 보조금을 주거나 비만 환자들의 치료 재원으로 재투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더 나아가 업계 일각에서는 아스파탐, 수크랄로스 등 제로 음료에 들어가는 인공 감미료에도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칼로리가 없더라도 단맛에 중독되는 식습관 자체를 고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비만 예방 등 건강 증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은 아스파탐, 수크랄로스 등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제로 음료에도 세금을 부과한다. 업계 관계자는 “설탕뿐만 아니라 인공감미료 역시 여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설탕을 대체하는 스위트너(감미료)를 만드는 회사들도 이제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비만 예방 등 공중보건 차원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프랑스 등 50여 개국 도입…영국, 세수 확보·비만 감소 ‘일석이조’
해외 주요국은 이미 설탕세를 비만 퇴치의 핵심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WHO는 2016년 발표한 ‘식단 및 비전염성 질환 예방을 위한 재정 정책’ 보고서를 통해 설탕세 성격의 세금이나 부담금을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가당음료에 세금을 부과해 가격을 20% 이상 올리면 소비가 그만큼 줄어 비만, 제2형 당뇨병, 충치 등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2022년에는 정부가 실제로 가당음료 세금을 어떻게 설계하고 도입해야 하는지를 다룬 ‘가당음료 세금 도입 매뉴얼’도 발간했다. 이를 받아들여 현재 설탕세를 도입한 국가는 프랑스, 노르웨이, 멕시코, 칠레 등 50여 곳에 달한다.
영국은 설탕세를 가장 잘 활용한 국가로 꼽힌다. 영국은 2018년 음료 100ml당 설탕 함량이 5~8g이면 리터당 18펜스(357원), 8g을 초과하면 24펜스(476원)의 세금을 제조사나 수입업자에 부과하는 ‘청량음료 산업 부담금’을 도입했다.
효과는 뚜렷해 보인다. 코카콜라 등 글로벌 음료 제조사들은 제품의 설탕 함량을 대폭 줄여 제도 도입 1년 만에 영국 내 탄산음료의 평균 설탕 함량이 약 47% 감소했다. 매년 3억~3억 5000만 파운드(5938억~6928억 원)의 설탕세를 거둬들였고 이 돈을 학교 식사 프로그램 및 체육 활동 지원에 활용했다. 그 결과 10~11세 여성 청소년의 비만 발생 건수가 연간 최대 5000건 감소하는 등 실질적인 건강 증진 효과가 나타났다. 세수 확보와 공중보건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성과가 입증되자 그동안 설탕세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독일 정부도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달 29일 각료회의에서 2028년 시행을 목표로 설탕 함량에 따른 부담금을 가당음료에 부과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 이 법안은 음료 100ml당 설탕 함량이 5~8g인 음료에는 리터당 26센트(380원), 8g 초과 시 32센트(468원)의 부담금을 매기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독일도 설탕세가 도입되면 연간 4억 5000만 유로(7690억 원)가 세수로 걷히고, 질병 예방 효과로 2000만~1억 7000만 유로(342억~2905억 원)의 건강보험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된다.
결국 한국도 설탕세 도입은 시간문제다. 당장은 조세 저항과 물가 인상 우려에 막혔지만 가파르게 증가하는 비만 청구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설탕세 도입을 미루는 것은 미래 세대를 향한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관건은 영국 등이 증명했듯이 설탕세 제도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
[15조 원 비만청구서] ③ 위고비·마운자로 급여화, 건보 재정에 득일까 실일까
·
[15조 원 비만청구서] ② 배달앱이 살찌우는 사회, 약물만으로 치료 못 해
·
[15조 원 비만청구서] ① '민원'에 망가진 급식판, '알고리즘'에 건강 망치는 아이들
·
[극희귀질환 리포트] ③ "수십억 약값, 꼭 써야 해?" 환자 두 번 울리는 차가운 '논리'
·
[극희귀질환 리포트] ② 약은 '그림의 떡'…경제성 잣대에 병 키우는 환자들
·
[극희귀질환 리포트] ① "성인이라는 이유로…" 저인산효소증 환자의 잔인한 현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