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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강남스타일과 흑사병의 공통점

전염병이 물결모양으로 퍼지듯 온라인의 비디오 전파 경로도 동일

2017.08.05(Sat) 10:47:22

[비즈한국] 중세 온난기가 13세기 말에 끝나고, 이전보다 훨씬 춥고 혹독한 겨울이 다가왔다. 유럽은 14세기의 시작을 대기근과 함께했다. 식량이 부족해지고 민중은 영양부족으로 인체의 저항력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귀족과 군주 들은 오히려 세금과 소작료를 올렸고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최소 10%의 유럽 인구가 대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런저런 질병들로 사람들과 가축이 피해를 더해가다 14세기 중반에 흑사병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지칠 대로 지친 유럽인의 1/3인 약 2500만 명이 사망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악명을 떨친 범유행전염병인 흑사병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1억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범유행전염병(팬데믹, Pandemic)은 이렇게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퍼지는 전염병을 말한다. 

 

흑사병이 퍼진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광경을 그린 그림. 사진=위키미디어


결국은 사람들의 접촉에 따라 전염되는 만큼, 전염병의 전염 경로를 따라가면 가정과 일터가 중심이 되고 사람들의 이동경로가 또 한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역로와 도시가 그 전염경로가 되는 이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로는 바로 전쟁이다. 

 

14세기 흑사병의 기원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유럽에 흑사병을 옮긴 원인으로 많은 학자들이 꼽는 것은 비단길을 통해 공격해온 몽골 군대이다. 유럽 최초의 흑사병 창궐지가 몽골이 포위공격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심지어 몽골 군대는 성벽 너머로 흑사병으로 죽은 군인의 시체를 투석기를 이용해 던져 넣었다). 

 

20세기 초의 또 다른 유명한 팬데믹인 ‘스페인 독감’ 또한 그 주된 전염경로가 군대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미국에서 최초로 발병한 스페인 독감이 군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전파된 것으로 본다. 미국 독감이 아니라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보도검열에서 자유로운 비참전국 스페인의 언론이 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팬데믹은 병이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교통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므로 전파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었다. 14세기 흑사병의 경우에는 하루에 2킬로미터를 나아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비행기로 이동이 빨라진 20세기의 경우에도 그 효과를 고려하여 분석하면 마찬가지로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패턴을 보인다.

 

그럼, 인터넷에서 유행이 되는 것도 팬데믹과 같은 패턴을 보이는 걸까? 이런 호기심으로 연구를 한 과학자들이 있다. 지난 7월 인터넷 논문집 ‘arXiv’에 헝가리 외트뵈시대학의 복잡계 물리학과 연구진이 주축이 된 비디오 팬데믹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팬데믹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을 선택했다.

 

연구진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전파 경로를 추적했다. 사진=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캡처


‘강남스타일’이 발표된 처음 몇 달간의 트위터 사용자 580만 명의 위치 정보와 전파 경로 등을 분석한 연구진은 흥미로운(어쩌면 당연하게 보이는) 결과를 얻었다. 지리적인 거리에 따라 분석한 비디오 전파 양상은 과거 팬데믹의 경우와 달리 어떤 패턴을 보이지 않았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정보가 퍼져나가는 것에 지리적인 거리는 주요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어나 문화와 같은 사회적 유대가 강한 정도로 유효 거리를 매겨서 분석하면 과거의 팬데믹 전파 패턴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 논문의 내용이다.

 

논문에 따르면 ‘강남스타일’ 유행의 출발점이 된 곳은 필리핀이다. 지리/문화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필리핀은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고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강남스타일’을 언급한 트위터 메시지의 분포. 사진: arxiv.org/pdf/1707.04460v1.pdf


결국 전염병이든 인터넷 유행이든 사람을 통해서 확산되는 것이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선 퍼져나가는 것이다. 사실 이번 연구는 크게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확실한 이해는 아니더라도 막연히 예상하고 있었던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다만, 싸이 본인도 과하다고 얘기하는 손목 동상이나 지뢰에 피해를 입은 병사의 발목 동상처럼 제작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동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세계로 퍼뜨리는 또 다른 팬데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괜히 드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런 걸 퍼뜨릴 정도로 강한 유대 관계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전 세계에는 거의 없으리라는 점이고.​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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