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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없는 가게' 열풍 속 엇갈린 속사정

한쪽에선 찾아가는 재미와 희소성 파는 마케팅 전략, 다른 쪽에선 과도한 영업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2026.04.13(Mon) 15:58:13

[비즈한국] 간판이 없다는 것 자체를 마케팅으로 삼는 이른바 ‘간판 없는 가게’​ 열풍이 분 지 수년이 흘렀다. 한때 유행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서울의 골목 곳곳을 취재해보니, 간판을 달지 않은 가게들의 속내는 장소와 세대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렸다. 치밀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점포가 있는 반면, 오래된 골목의 노포에겐 플랫폼 수수료와 광고비를 견뎌내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 작동했다.

 

#간판만 없을 뿐, SNS 홍보는 활발

 

2030세대가 자주 찾는 서울 성수동과 건대입구역,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간판 없는 가게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기자가 방문한 이들 가게는 입구에 흔한 돌출 간판 하나 없었다. 왜 간판 없이 운영하느냐는 질문에 현장 직원들은 “잘 모른다”거나 “아직 달지 않은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현장에서의 침묵은 역설적으로 가장 활발한 홍보 수단이 된다. 가게 문 앞에서는 답변을 회피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꾸준히 숏폼 영상을 올리고 감각적인 사진으로 위치와 분위기를 노출하며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성수동 등 젊은 층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SNS 입소문과 희소성을 계산한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간판을 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한 간판 없는 가게. 사진=김상훈 인턴기자

 

성수동에서 음료 매장을 운영하는 C 씨는 “간판이 없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된다는 걸 처음부터 계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SNS에서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 굳이 간판 광고비를 쓰지 않아도 유입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매장은 오픈 초기 별도의 광고 없이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 명을 돌파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희소성의 경험’이다. 정보 과잉 시대에 ‘아무나 찾을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곳을 찾는 주 고객층은 2030 청년들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20대 방문객은 “인스타를 보고 찾아왔다. 간판 없는 가게 앞에 줄이 길면 따라서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전략이 모두에게 유효한 것은 아니다. 건대입구 인근에서 의류 편집숍을 운영하다 최근 폐업한 D 씨는 “처음엔 화제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자 신규 유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간판이 없다는 것은 결국 재방문을 유도하는 힘이 아니라 최초 유입을 끌어당기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희소성이라는 자극은 소비자가 익숙해지는 순간 효력을 잃는다.

 

#비용 절감 및 배달 앱 과도한 권유 방지 목적

 

서울 강서구와 종로구, 마포구의 오래된 골목에서 만난 무간판 가게들의 사정은 사뭇 달랐다. 이곳 사장님들에게 무간판은 멋이 아닌 실리였다.

 

강서구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간판이 없는 이유로 단호하게 ‘비용 절감’을 꼽았다. 업종을 변경하며 간판을 새로 제작하려 했더니 디자인·제작·설치비를 합쳐 300만 원이 넘는 견적이 나왔다고 했다. “동네 장사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굳이 비싼 돈 들여 달 이유가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인근 주민 다섯 명에게 이 가게를 아는지 물었더니 네 명이 간판 없이도 정확한 위치를 짚어냈다. 수십 년 쌓인 신뢰가 간판을 대신하고 있었다.

 

오래된 골목의 노포들이 간판을 달지 않는 이유는 비싼 간판 제작비와 배달 앱 수수료, 과잉 영업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생존 방식이다. 사진=김상훈 인턴기자

 

종로구에서 김밥집을 혼자 운영하는 B 씨는 4년 전 멀쩡히 붙어 있던 간판을 직접 내렸다. 이유는 배달 앱이었다. “간판이 있으니 배달 플랫폼 업체에서 등록 권유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아예 간판을 떼니까 조용해졌다.” 그는 배달 수수료 구조를 직접 계산해 보여줬다. 음식값 6000원짜리 메뉴를 배달 앱으로 팔면 플랫폼 수수료와 배달 대행비를 합쳐 2000원 안팎이 빠져나간다. “남는 게 없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낫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현재 이 가게는 포장 주문조차 ​점심 ​시간이 지나면 받지 않는다.

 

마포구의 한 국숫집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1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킨 E 씨는 “간판을 다는 건 곧 외부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배달 앱이든, 광고 대행사든, 카드 단말기 교체 영업이든 간판이 있으면 다 찾아온다. 조용히 장사하고 싶어서 내렸다”고 말했다. 세 명의 노포 사장 모두 공통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장사하겠다’는 뚜렷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이들 노포 세 곳은 공통적으로 ‘착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끼에 5000원에서 8000원 사이로, 현재 서울 평균 점심값과 비교해 눈에 띄게 저렴했다. 간판 유지비와 플랫폼 수수료를 덜어낸 자리를 가격 경쟁력으로 채운 셈이다. 저렴한 가격은 가게를 먹여 살릴 만큼의 단골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요소로 작용했다.

 

반면 마케팅형 간판 없는 가게들의 객단가는 노포와 차이가 컸다. 성수동 매장의 음료 한 잔 가격은 1만 원을 넘었다. ‘경험’에 값을 매기는 구조다. 간판이 없다는 불편함은 그 자체로 ‘특별한 곳을 찾았다’는 감각을 강화하고, 그 감각이 소비로 이어진다.

 

‘간판 없는 가게’라는 동일한 외형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논리를 품고 있다. 하나는 도시 소비 트렌드를 읽고 ‘공간의 경험’을 파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비와 플랫폼 수수료, 과잉 주문을 차단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방식이다. 두 가게 모두 간판이 없지만, 그 침묵이 말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전자에게 간판 없음은 선택이고, 후자에게는 생존이다.​ 

김상훈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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