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기후위기로 인한 에너지 전환 기조와 공급 과잉 우려로 이른바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의 금융 지원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연구기관들이 자산 가치 하락을 경고하고 실제 재무 지표에서도 위험 신호가 감지되지만, 수은은 대규모 신규 지원을 검토하고 있어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좌초자산 우려에도 과잉 공급
좌초자산은 시장 환경 변화나 기후 규제 등으로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수익성이 상실된 자산을 뜻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은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 수은이 지원한 선박금융 포트폴리오에서 ‘선박 가치 하락’으로 인해 재무약정을 위반한 사례가 4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선박의 시장 가치가 대출 잔액 대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지표로, 최근 5년간 수은의 선박금융 약정 위반 사례가 모두 LNG 운반선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기후솔루션은 주목했다.
수은은 재무약정 위반 건들에 대해 채무 이행 의무를 한시적으로 유예해주는 ‘웨이버(Waiver)’ 처리를 단행했다. 수은 측은 이에 대해 “영업 초기 일시적인 상황으로 현재는 모두 치유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원리금이 정상 상환되고 있으며 담보 가치가 충분해 부실로 분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런던대학교(UCL) 에너지연구소와 퀴네기후센터(KCC) 등은 1.5℃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2035년까지 LNG선 투자액 중 약 480억 달러(약 72조 원) 이상이 상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치 하락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시장에는 285~321척(현재 운항 중인 전체 선단의 약 39% 규모)에 달하는 막대한 신규 선박이 건조 또는 발주된 상태로 이는 시장의 흡수 능력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LNG 운반선의 특성상 2030년까지 신규 발주가 계속될 경우, 2035년에는 전체 LNG 운반선의 절반이 넘는 51%가 가동을 멈추고 좌초자산이 될 위험에 처한다.
지구 온난화가 2.5℃에 달할 거라는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2035년 기준 최대 22%의 선박이 구조적인 초과 공급으로 인해 좌초자산 리스크에 직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LNG 운반선은 평균 수명이 약 38년임에도 현재 중위연령이 5년에 불과해 2050년 이후까지 과잉 공급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다른 화물 수송용으로 개조하기도 어려워 다른 선종보다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위험에 상대적으로 더 노출돼 있다. 원유, 석유제품, LPG 운반선 등은 향후 화석연료 수요가 감소하더라도 선박을 개조해 바이오연료, 암모니아, 메탄올, 화학제품 등 다른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반면 LNG 운반선은 영하 162°C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화물창 단열 시스템과 증발 가스를 관리하는 재액화 설비 등의 인프라 때문에 경직성이 높아 선박 개조가 어렵다.
#용선처 없는 ‘투기 발주’ 비중 19%…리스크 관리 도마 위
수은의 금융 지원 방식이 선박의 실질적인 수요보다는 발주 실적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료에 따르면 수은이 지원한 LNG 운반선 120건 중 19%인 23건은 선박을 빌려 쓸 용선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승인된 ‘투기 발주’ 물량이었다. 용선 계약은 선박 운영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인데, 용선 계약이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면 향후 시장 상황 악화 시 금융기관의 부실로 직결될 수 있다. 또 LNG 운반선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이 대부분 그리스, 영국, 노르웨이 등 유럽계 해운사에 집중된 탓에, 상업적 이익은 해외 선사가 가져가고 좌초자산 리스크는 공적 금융이 떠안는다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된다.
특히 카타르에너지 등 주요 가스 공급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이유로 불가항력을 선언하는 등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수은은 이달 중 약 7100억 원 규모의 신규 LNG선 금융 지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수은은 “장기용선계약 체결을 조건부로 금융을 제공하고 있으며, 담보인정비율(LTV) 등 리스크 관리 기준을 충실히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해외 선사가 지급보증을 제공해 리스크를 부담한다”고 해명하고, “수은의 선박금융은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에만 제공하기 때문에 국내 조선업 전반에 외화 획득, 고용 창출 등 막대한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수은의 선박금융이 개별 대출 건에 대한 평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금융으로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구조 변화로 인한 전체적인 리스크 관리와 기후에 대한 외부 효과 기여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은이 제시한 조건부 계약, 담보, 지급보증은 모두 대출 실행 이후의 사후 상환 보전 장치로 선제적 리스크 관리 장치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 지원 결정 단계에서의 좌초자산, 지정학적 리스크 등의 사전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은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공적 금융이라면 사양 산업의 수명 연장을 위해서보다는 산업의 전환에 지원이 더 많이 투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 자산’ 분류에 따른 환경실사 사각지대 논란
금융 지원 과정에서 환경·사회적 영향 평가가 누락됐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기후솔루션은 수은과 한국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이 LNG선 금융 지원 시 OECD 환경사회권고안에 따른 실사 의무를 회피했다며 OECD 한국 국내연락사무소(NCP)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수은은 선박이 특정 지역에 고정된 시설이 아니라 ‘이동 자산’이라는 점을 들어 구체적인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LNG선은 운항 중 미연소 메탄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메탄 슬립(Methane Slip) 현상으로 인해 강력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수중 소음 및 평형수 배출로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 2021년 기준 해운 부문 메탄 배출량의 82%가 LNG선에서 발생했다. 필리핀과 멕시코 등 주요 운항 경로 인근의 해양 보호구역 피해 사례가 보고되면서, 국제 수준에 부합하는 환경·인권 실사 체계 구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정민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공적 금융이 환경사회영향평가를 체계적으로 수행하지 않고, 사업이 초래할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한 점검, 조건 설정, 구제 절차 마련 등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기후위기 대응, 생물다양성 보전, 인권 존중, 투명한 정보공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합의한 최소 기준으로, 공적 금융기관은 이 기준에 맞는 금융으로 전환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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