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기후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시민대표단 숙의를 거친 ‘기후위기 대응 방안 공론화 결과’를 13일 기후특위에 보고했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강화하고 감축 경로를 앞당겨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번 절차는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에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헌재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법적 공백이 미래 세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며, 국회에 2026년 2월 28일까지 관련 입법을 완료하라고 명령했다.
국회 기후특위는 국민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공론화 절차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이창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특임교수(전 한국환경연구원 원장)를 위원장으로 하고 여야 간사 및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가 2026년 2월 공식 출범했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기초 여론조사로 시작해, 성별·연령·지역을 대표하는 312명 시민대표단과 정책의 장기적 영향권에 있는 40명 미래세대 대표단이 참여하는 2주간 자가 학습 기간과 4일간 집중 숙의 토론회로 이어졌다. 시민대표단은 인구 통계적 변인뿐 아니라 기후위기 입장 분포까지 반영해 최종 대표단을 무작위로 선발했다.
#감축 목표와 경로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첫 번째 핵심 의제는 ‘한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준’이었다. 숙의 결과, 시민 인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적극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1차 조사 당시 ‘전 세계 평균 감축률보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지지한 비율은 24.5%였으나, 4일간 토론을 마친 2차 조사에서는 35.8%로 11.3%p 상승했다. 반면 ‘전 세계 평균 수준’ 지지 비율은 50.1%에서 39.1%로 11.0%p 감소했다. 당초 정부가 내놓은 NDC 2035 하한선 53%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권고 기준에 맞는 61% 상한선에 힘을 싣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주목할 데이터는 미래세대의 응답 변화다. 미래세대는 1차 조사에서 ‘평균보다 높은 수준’에 단 12.5%만이 동의했으나, 숙의 후에는 50.0%로 크게 증가했다.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대한민국이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 의제인 ‘감축 경로’는 이번 공론화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지점이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들에게 △초기에 더 많이 줄이는 방식(초기 감축형, 오목형) △전체 기간 비슷하게 줄이는 방식(선형) △나중에 더 많이 줄이는 방식(후기 감축형, 볼록형)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소위 ‘볼록형 경로’ 선택지 포함 여부를 두고 의제숙의단 내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 의제숙의단은 시민대표단이 논의할 핵심 의제를 설정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집단이다. 환경운동연합, 한국노총, 청소년기후행동 등 참여자 8명은 볼록형 경로가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위헌적 선택지라고 주장하며, 숙의단 배제 권고를 무시하고 이를 설문에 포함한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항의해 집단 사퇴했다. 헌법재판소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할 때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는 모든 정보와 경로 장단점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최종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절차를 강행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시민대표단은 빠르게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1차 조사에서 51.2%였던 초기 감축형 방식 지지는 숙의 후 77.9%로 무려 26.7%p 급증했다. 반면 논란의 중심이던 볼록형은 숙의 후 단 2.1% 지지를 얻는 데 그쳤으며, 선형 감축 또한 19.9%로 하락했다. 이는 시민대표단이 지금 당장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미래세대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번째 의제인 ‘이행 방안’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경제적 부담 수용력이다. 시민대표단은 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 요금 인상이나 생활 불편을 감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94.6%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는 숙의 전 30.1%에서 숙의 후 51.0%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창훈 위원장은 “국회에서 이번 공론화 결과를 입법에 잘 반영했으면 좋겠다”라며 “시민대표단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 기후위기를 더 인지하게 되고 넓은 의미의 공론화가 진행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여야 공정성 설전, 시민대표단 다수 균형성 ‘긍정’ 평가
공론화 결과 보고회가 열린 국회 기후특위 전체회의에서는 공론화 과정 공정성을 둘러싼 여야 간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보통 해외에서는 공론화 과정을 1년은 하는데 이번 기간은 너무 짧았다”라며 “공론화 과정에서 산업계가 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창훈 위원장은 “산업계 입장도 같이 제시하려고 노력했고, 시민대표단이 제기한 전환 비용과 현실 가능성 질문에도 답변했다”라며 “의제 숙의 단계에서 볼록 경로를 배제하라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는 노력을 했다”라고 답변했다.
조사를 설계한 김춘석 한국리서치 부문장은 “편파성 문제 등은 시민대표단이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라며 “숙의 자료집의 적절성과 상반된 입장의 균형성을 두고 90% 이상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정보 유도성에 대해 시민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대표단 90.7%는 숙의 자료집에서 상반된 입장이 균형 있게 구성됐다고 평가했다. 또 80.0%가 ‘전문가 발표는 상반된 입장이 균형 있게 배정됐다’라고 답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공론화 결과에 환영 입장을 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4월 13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론화 설문 결과를 환영하며, 결과를 반영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5월 말까지 완료할 것을 촉구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이번 결과는 기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됐던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증명한 것”이라며 “국회는 이제 산업계 로비에서 벗어나 국민의 안전할 권리를 선택하고, 시민들이 확인한 기후 대응 최소선을 즉각 법제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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