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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1980년대 나이트클럽 휩쓴 '긴기라기니'와 일본 노래의 추억

일본 국민가수 쿠와타 케이스케, 곤도 마사히코에 열광한 청춘들에게 바침

2017.12.06(Wed) 07:42:13

[비즈한국]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 소이츠가 오레노 야리카타…. 그 다음에 뭐였지?” 

“왜 Just a man in love 계속 반복되는 일본 노래 있잖아. 그것만큼 신나는 것 드물던데, 공테이프 줄 테니까 녹음 좀 해줘.”

 

1980년대를 관통해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경험했을 법한 대화다. 1980년대 초반에 ‘긴기라기니’가 있었다면 1980년대 후반엔 ‘Just a man in love’가 그 시절을 보낸 청소년들을 열광시켰다. 

 

곤도 마사히코가 부른 ‘긴기라기니’가 수록된 앨범 표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해방된 지 20년 후인 1965년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 된 뒤에도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의 국내 진입에 빗장을 걸어놓았다. 

 

억압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도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시대 청춘들은 주류였던 미국이나 유럽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힘입어 대학가에서 가장 먼저 유행했던 일본 대중가요가 1980년 이츠와 마유미가 부른 애절한 발라드 ‘고이비토요’였다. 

 

당시 알음알음이라도 일본 대중가요를 들으려면 이른바 ‘빽판’으로 불리던 해적 레코드나 몇 번 들으면 늘어지거나 끊어지기 일쑤였던 저질 카세트 테이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청계천이나 세운상가는 이런 조악한 소모품이나마 일본 대중가요를 구매할 수 있었던 메카였다. ​​

 

뭐니 뭐니 해도 청소년층에게 파급효과가 큰 건 신나는 댄스음악이었다. 이런 니즈에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노래가 바로 1981년 곤도 마사히코가 내놓은 ‘긴기라기니’였다. 이 노래 원래 제목은 한국어 발음으로 ‘긴기라기니 사리게나쿠’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일본 대중문화는 지리상 여건으로 인해 부산에서 가장 먼저 유행되는 특성이 있었다. ‘긴기라기니’​는 1983년쯤 부산에 상륙해 대 유행했고 1984년에 들어서 서울 지역 청소년들에게까지 퍼졌다. ‘​긴기라기니’는 ​멜로디와 중간중간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브라스 밴드까지 동원된 관악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말을 타는 듯한 둥두두둥둥 베이스 기타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깨와 손을 들썩하기에 충분할 만큼 신나는 곡이다. ‘긴기라기니’는 나이트클럽, 롤러스케이트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당시 해적 음반으로 먼저 이 곡을 구매한 청소년들이 친구들에게 테이프로 녹음해주었고 다시 더블 데크 카셋트 레코더를 통해서도 마구 퍼져 나갔다. 가사조차 구할 수 없는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테이프를 몇 백 번씩이나 돌려가며 반복해 들리는 대로 가사를 받아 적었고 적은 가사를 친구들과 나눠 가졌다. 소풍이나 장기자랑에서 “일본 노래 부를 줄 안다”는 자부심에서 이 노래를 자랑스럽게 부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청소년들은 당시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곤도 마사히코 본명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대신 그의 일본 내 애칭인 ‘맷치’ 또는 ‘맛치’로 통용됐다. 1964년생인 곤도 마사히코는 가수 겸 배우로 곱상한 얼굴과 달리 거칠고 반항적인 매력을 내세워 일본의 당대 최고의 남자 아이돌 스타였다. 

 

곤도 마사히코는 ​1985~1986년 ​일본의 전설적인 여성 아이돌 나카모리 아키나와와 홍콩 스타 매염방과도 염문을 뿌리면서 이른바 양다리를 걸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매염방은 곤도 마사히코 원곡들을 자신의 모어인 광둥어로 번안해 불렀다. 

 

대표적으로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웅본색3’​(1989)의 주제가 ‘석양지가’ 원곡을 부른 사람이 곤도 마사히코였다. 웬만한 남자조차 흉내를 내기 어려운 마성의 알토 저음을 가진 매염방이 부른 ‘석양지가’는 원곡을 압도한다. 

 

2013년 일본 삿포로 맥주 광고 모델로 나온 일본의 국민가수 쿠와타 케이스케.


1980년대 후반 국내 나이트, 록카페, 롤라장에선 일본의 국민가수 쿠와타 케이스케가 1987년 부른 ‘Just a man in love’가 대히트를 쳤다. 이 노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잊을 수 없어 눈물에 젖어 있다는 매우 슬픈 가사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멜로디는 너무나 흥겹고 경쾌한 곡이다.

 

쿠와타 케이스케가 ‘Just a man in love’를 발표했을 때 초기 퍼포먼스를 보면 슬픈 가사를 노래하면서도 너무나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로 우스꽝스럽게 부르는데 이마저도 흥겨움을 배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Just a man in love’​는 국내에서 카이 등 여러 가수들에 의해 한국어 가사로 리메이크되면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쿠와타 케이스케는 작사, 작곡, 연주, 노래 등 대중음악 전 분야에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다. 청중을 웃기고 울릴지는 쿠와타 케이스케가 그날 그의 기분에 따라 결정했음에도 콘서트에 항상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쿠와타 케이스케는 솔로 활동과 자신이 이끄는 록 밴드 사잔 올 스타스를 합치면 일본에서만 무려 60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국민가수다.

 

재일교포설까지 나오는 쿠와타 케이스케는 쿠나사기 츠요시(초난강)와 더불어 대표적인 친한파 일본 가수로 통한다. 그의 곡 중에는 ‘Love Korea’라는 곡마저 있을 정도다.​ 

 

 

1962년생 동갑내기 7명으로 구성된 더 체커스가 부른 1984년 곡 ‘줄리아 니 쇼우신’도 ‘Just a man in love’와 같은 시기 국내 나이트와 록카페 등에서 대유행했던 곡이었다. 이 곡은 컨츄리 꼬꼬가 ‘오 마이 줄리아’라는 곡으로 번안해 인기를 끌었다. 

 

1985년 데뷔한 일본의 4인조 록밴드인 튜브 역시 일본 문화 개방 전까지 많은 곡들이 국내에 유행했다. 캔이 번안한 ‘내 생에 봄날은’의 원곡은 튜브가 1992년 발표한 ‘가라스노 메모리즈’다. 튜브가 1986년 내놓은 ‘Season in the sun’ 역시 정재욱이 번안하는 등 널리 알려져 있다.

 

화제를 전환해 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1998년부터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마무리 개방하기까지 일본 대중가요는 국내에서 제도권 밖 문화의 산물이었다. 

 

그간 일본 가수들이 공중파 방송 등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2003년 완전개방 전까지 국내 방송에서 일본어 원곡으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으며 영어로 불러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 MBC와 TBC에서 개최했던 국제가요제를 꼽을 수 있다. 

 

MBC는 1977년부터 1988년까지 10회(1985년은 미개최)에 걸쳐 ‘MBC 서울 국제가요제’를 개최했다. 1978년 서울국제가요제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전설 시몬 마사토가 대회 참가자로 나왔다. 1986년에는 당대 최고 일본 인기 여성 아이돌 트리오(3인조)인 소녀대(쇼조타이)가 독특한 의상을 입고 나와 ‘Starlight memory’를 불렀는데 모두 일본인 특유의 엉성한 영어 발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TBC는 2년 늦은 1979년 ‘제1회 TBC 세계가요제’를 개최했는데 대회 대상곡은 ‘Beautiful me’였다. 아담한 키와 가녀린 몸매에 숏컷 헤어스타일로 대회에 나온 오하시 준코는 우수에 젖은 음색에 윤복희나 최진희를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성량으로 노래를 불러 당대의 일본 실력파 여가수의 위상을 국내에 알렸다. 오하시는 매우 세련된 발음의 영어로 곡을 소화해 빛을 발했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신군부가 1980년 언론 통폐합을 해 TBC가 KBS로 통합, TBC 세계가요제는 그해를 끝으로 폐지됐다. ​ ​

 

당시 대회에 초대가수로 초청받은 팀이 일본 여성 듀오 핑크 레이디였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인해 초청 무대에서 핑크 레이디는 자신들의 히트곡을 부를 수 없었다. 대신 할리우드 영화 주제가들을 메들리로 엮어 영어 가사로 불렀다. 메들리 중간 중간 ‘무비 러버(Movie Lover)’라는 희한한 추임새를 반복하면서. ​​​

  

이제는 공중파 방송에서도 일본어 가사로 된 일본 대중가요가 전파를 타는 시기를 맞고 있다. 완전개방 초기 우려와 달리 일본 대중음악의 방송 빈도는 극히 낮다. 더 이상 일본 대중가요가 신기하지도 않고 한국 대중음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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