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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교 '코딩 교과서' 현직 개발자들이 보니 "주입식에 한숨만…"

올해부터 코딩 공교육 본격 시행…개발자들 "책 봐도 코딩 전혀 못하고 학원 몰릴 것"

2018.03.06(Tue) 15:56:11

[비즈한국] 컴퓨터 프로그래밍, 이른바 ‘코딩’ 공교육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중학생은 2018학년도부터 34시간 코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초등학생은 내년부터 5, 6학년 대상으로 17시간 교육이 이뤄진다.

 

코딩 교육을 앞두고 적잖은 학부모 들은 막막하고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자녀를 둔 구 아무개 씨는 “학원비가 부담되긴 하지만 앞으로 코딩이 필요하다고 해서 보낸다”며 “학교에서 하는 수업만 들으면 우리 애가 뒤처질까 봐 그렇다”며 걱정했다. ​

 

결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는 벌써부터 요동친다. 대치동에서 3년째 코딩학원을 운영하는 금 아무개 씨는 “3년 전만 해도 이 근처에 코딩학원이 딱 3개였다. 지금은 15개쯤 된다”고 전했다. 현재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되는 대치동 부근 코딩학원은 16곳이다.  

  

‘비즈한국’은 초·중등 코딩 교육에 쓰일 예정이거나 쓰인 교과서 2종을 단독 입수했다.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사용될 ‘정보’ 과목 교과서와 ‘소프트웨어 선도 지정’ 초등학교에서 쓰인 ‘소프트웨어와 함께하는 창의력 여행’이라는 초등생 교과서다. 현직 개발자를 포함 전문가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었다.

 

‘정보’ 교과서는 15개 출판사가 만들어 교육부 검·인정을 거쳐 학교에 배포된다. G 출판사에 출판한 교과서도 그 중 하나. ‘소프트웨어와 함께하는 창의력 여행’ 초등생 교과서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만든 홈페이지 ‘에듀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학교에 배포될 G 출판사의 ‘정보’교과서다. 아직 시중에 나오기 전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중학교 ‘정보’ 교과서는 ‘정보 문화’, ‘자료와 정보’, ‘문제해결과 프로그래밍’, ‘컴퓨팅 시스템’ 크게 네 분야로 나뉜다. ‘정보 문화’ 분야는 정보 사회 개념을 정의하고 저작권 보호 같은 정보 윤리를 안내한다. ‘자료와 정보’ 분야는 자료 수집과 보관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해결과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실질적인 의미의 ‘코딩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분야는 알고리즘과 프로그래밍의 개념에 대해 가르친다. 마지막 분야인 ‘컴퓨팅 시스템’에서는 코딩으로 배운 프로그래밍이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 현직 개발자 “코딩은 전혀 못 한다고 봐야…” 

 

프로그래밍 20년차인 이준행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는 “이 책을 다 배워도 코딩은 전혀 못 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책에는 실질적인 프로그래밍에 쓰이는 언어를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 내용이) 많이 아쉽다”고 평했다. 

 

‘정보’ 교과서에 등장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스크래치’다. 스크래치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만든 코딩 교육용 프로그램이다. 이 씨는 “스크래치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이해하는 툴(도구)일 뿐”이라며 “해외에선 중학생 수준에서 파이썬이나 C(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은 실질적으로 개발에 활용하는 언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정보’ 교과서 목차. ‘정보 문화’, ‘자료와 정보’, ‘문제해결과 프로그래밍’, ‘컴퓨팅 시스템’ 크게 네 분야로 나뉜다. 사진=박현광 기자

 

아울러 이 씨는 “지금 이 책 내용만 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합의가 안 된 것처럼 보인다”​며 “​정보 윤리와 프로그래밍이 한 책에 다 들어가 있어서 제한된 시간 안에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기엔 힘들 것 같다. 정보 윤리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데, 차라리 정보 윤리와 프로그래밍 두 부분을 분리해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초등학교 교과서랑 중학교 교과서는 내용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똑같은 내용을 조금 더 늘려서 설명해 둔 정도”라고 덧붙였다.

 

# “코딩에서 중요한 건 창의력인데, 교과서는 주입식”

 

국내 개발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D 개발사의 15년차 개발자 곽 아무개 씨는 생각도 비슷했다. 곽 씨는 “나도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프로그램 언어를 바로 배우는 건 원치 않는다. 그건 대학을 가서 배워도 상관없다”면서도 “사실 코딩 교육에서 중요한 건 창의력과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거다. 근데 지금 이 교과서 내용은 지나치게 주입식”이라고 밝혔다.

 

곽 씨는 “실제로 현장에서 개발할 때 필요한 건 생각하는 능력이다. 우리 사이에도 ‘코더’와 ‘개발자’를 (임의로) 구분 지어 말하기도 한다”​며 “​개발 일을 할 때 설계자가 고객과 조율한 뒤 설계해서 주는데, ‘코더’는 설계자가 준 대로만 코드를 짜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선 안 된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생각해서 거기에 최대한 맞춰서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을 받다 보면 그게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이 교재는 모든 걸 정의해준다. 심지어 코딩 시작부터 결과에 이르는 과정까지 하나로 정해준다. 프로그래밍은 답에 도달하는 무수히 많은 길이 존재한다. 그래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건데, 아이들이 이 교육을 받고 어떻게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탰다.

 

15년차 개발자 곽 아무개 씨는 “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코딩 교과서”라며 “코딩 시작부터 결과에 이르는 과정까지 하나로 정해준다”고 지적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평가 방식에 대한 우려도 함께 표시했다. 곽 씨는 “시험을 치게 되면 달달 외워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코딩은 시험을 본다면 논술형으로 보는 게 적당해 보이지만 그걸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선생님들이 그 정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이대로 라면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 

 

대치동에서 코딩학원을 3년째 운영 중인 A 씨는 “이건 완전 주입식이다. 이 교재로 시험을 보게 된다면 학생들이 학원으로 엄청 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원에서는 이런 교육을 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한다고 하면 4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 이 교재에는 가르칠 내용이 많지 않다. 학생들에게 쭉 설명해주고 공부해오라고 해도 충분하다. 다 개념 설명이기 때문”이라면서 “이대로라면 학원가에 ‘4주 단기 완성’ 같은 코스가 곧 생겨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국영수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딩은 학부모와 학생을 비롯해 교육계에서 화두다. 불안감에 학생들은 학원가로 몰리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A 씨는 “학원에서 나름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코딩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서 정말 필요한 교육이다. 우리 세대에서 인터넷을 쓴 것처럼, 아이들 세대에서는 코딩을 일상에서 활용할 것이다. 코딩이 공교육 의무화가 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너무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현재 전국 중학교는 3224개소(폐교 예정 12개소 포함)이지만, ‘코딩을 가르칠 자격이 되는’ 정보·컴퓨터 교사 자격증을 가진 중등 교사는 3072명이다. 올해 코딩 교육을 채택한 중학교는 전체 42%에 불과하다. 초등학교의 경우 각 학급 담임 교사가 연수를 통해 배운 뒤, 코딩 교육을 할 방침이다.

 

교육부 융합교육팀 관계자는 “교육 수요가 학생마다 다양할 순 있지만, 학교 수업은 사고력 위주, 체험과 놀이 위주 교육이기 때문에 학교 코딩 수업을 따라기 위해서 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다”며 “방과후학교, 동아리 지원, EBS 오픈 플랫폼에 있는 다양한 콘텐츠 등이 있으니 잘 활용하면 학원을 가지 않고도 소프트웨어 원리를 이해하는 교육이 충분히 이뤄질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

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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