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소속사나 법원의 합의 권고도 거부하는 걸그룹 뉴진스 멤버들의 행보는 의아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이 되나, 법적으로는 불리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적인 테두리에서만 그들의 행보를 평가할 수만은 없다. 그들은 아티스트이면서 청소년이다. 이는 K팝 산업 전체는 물론 정부와 국회, 사법부도 고민해야 할 점이다.

우선 쟁점을 살펴보자. 걸그룹 뉴진스 멤버들이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불복, 즉시 항고했으나 인용되지 않았다. 법원 가처분 내용은 독자활동 금지다. 지난해 11월 뉴진스 멤버 다섯 명(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은 어도어의 의무 불이행 등을 지적하며 계약 해지를 선언했다. 시정 요구가 담긴 내용 증명을 전달했는데 최종적으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신뢰 관계가 깨졌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약속 혹은 계약된 일정과 광고 촬영은 진행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새로운 그룹명(NJZ)을 내걸고 독자 활동을 했다. 물론 새로운 이름을 만든 것은 ‘뉴진스’가 소속사에 상표권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소속사 어도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법원에 전속계약 유효 확인과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미 예상된 일이지만 법원은 소속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속계약을 한 이상 어도어가 매니지먼트사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고 했다.
임시로 정한다는 것은 본안 판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계약상 어도어의 소속사 지위를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도어의 사전 승인·동의 없이 스스로 또는 어도어 외 제3자를 통해 독자 혹은 새로운 매니지먼트 소속 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작사·작곡·연주·가창 등 뮤지션 활동 및 방송 출연, 광고 계약의 교섭·체결, 광고 출연 혹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업적인 활동 등을 할 수 없다. 이런 활동을 하려면 임시 소속사 지위를 가진 어도어의 승인이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법원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뉴진스가 독자 활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법원은 소속사의 간접 강제 신청을 인용해 이를 어길 시에는 1회당 10억 원이라는 배상금을 고지했다. 다른 어느 사례보다 그 액수가 크다.
지난 2011년 SM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 분쟁 당시 법원은 소속사에게 동방신기 출신 JYJ의 연예 활동을 방해하면 회당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속사가 2000만 원인데, 뉴진스 멤버들에게 10억 원을 내라고 결정한 것이다. 다만 본래 어도어가 회당 20억 원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그 절반 수준인 10억 원으로 줄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액수를 높게 정한 것은 뉴진스 멤버들이 가처분을 무시하고 독자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법원 처분을 무시하는 행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셈이다. 전속 계약 재판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가처분 결정을 따라야 함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언급한 ‘신뢰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판부는 뉴진스 멤버들이 ‘신뢰 관계가 깨졌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후 아이돌을 하다 정산을 한 번도 못 받고 뜨지도 못해서 계약 관계를 종결해달라던 기존 사건들과 달리 이번 건은 특이한 경우다, 보통은 정산을 안 해주거나 잘 안된 게 보인다. (이번 건에서) 신뢰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해보겠다”라고 밝혔다.
대개 아이돌 그룹의 정산문제가 소속사와의 갈등 원인으로 거론된다. 피프티피프티가 여기에 해당된다. 뉴진스 사례는 단순히 이익을 둘러싼 경제적 갈등은 아니다. 어느 샌가 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한데, 실은 신뢰 관계가 더 중요하다. 지금 시대정신은 존중과 상호 우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예컨대 에이전시를 매개로 하는 영미권에선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대등할 수 있다. 아티스트가 요구하는 바를 소속사가 충족하지 못하면 그 계약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신뢰 관계가 추상적이다. 즉 구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약 파기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본안 판결도 뉴진스에게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K팝 시스템의 물적 구조의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영미권과 달리 신인 발굴 육성 홍보 마케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탓이다. 제작사협회에서 탬퍼링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들 단체는 지금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권리가 지나치게 신장되었다며 소속사의 권리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의 갈등 당시에도 민 대표가 소속사의 지시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소유주가 경영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깔려 있다. 아티스트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소속사가 받아들이지 않거나 소극적일 때 아티스트가 그냥 지시 명령에 따라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신뢰할 수 없는 매니지먼트 환경을 묵묵히 감내하는 것은 Z세대의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국내에선 용인될지 모르지만, 선진 국가에서는 납득받기 어렵다. 특히 영국 같은 나라에서 한국 K팝 시스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이 때문이다. 아티스트가 소속사에 종속됐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문화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 더구나 뉴진스가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설파한 이상적인 사회문화 가치와도 괴리된다. 자유롭고 당당한 삶의 가치를 담아낸 K팝과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법적 테두리에 부딪히고 합의도 거부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소속사는 20억 원의 간접 강제금을 요구했고, 법원은 10억 원을 결정했다.
뉴진스 멤버들은 청소년이고, 청소년의 마음과 시선으로 활동해서 글로벌 팬덤을 일으켰다. 그들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좌충우돌하는 것일 수 있지만, 미래 세대의 요구에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 브랜드 가치의 문화적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K팝만이 아니라 한국 국가 브랜딩에도 해당한다. 현 체제에선 뉴진스의 시도나 좌충우돌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들의 아티스트다운 행보는 뒷날 K팝은 물론이고 우리나라가 진일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법에서 이기고 문화에서 지는 일은 없길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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