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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거대 유통업자가 농부의 피를 빨아먹는다?

한국과 영국 양파 가격 비교해보니 '의외의 결과'

2018.09.10(Mon) 17:22:49

[비즈한국] 주말 동안에 영국의 유명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가 진행하는 ‘제이미의 푸드파이트 클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보면서 쉬려고 켜놓은 이 프로그램에서 내 눈길을 잡아 끈 부분은 영국의 한 양파 농가와의 인터뷰였다. 

 

방송에 나온 양파 농장주는 이윤이 참 박하다면서 양파를 톤당 100파운드에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재 영국 파운드 환율이 약 1400원 정도이므로 저 농장주는 kg당 140원 정도에 양파를 팔고 있는 셈이다.

 

‘거대 유통업자가 막대한 폭리로 농가와 소비자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주장이 과연 맞을까? 대형 마트에 쌓여 있는 양파 더미. 사진=연합뉴스

 

저 가격에 생산된 양파는 대체 얼마에 팔릴까? 잠깐 화면을 멈추고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테스코에서 양파 1kg이 얼마에 팔리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테스코에서는 양파를 1kg당 55~75펜스에 판매하고 있었다. 0.55파운드가 소비자가이고 0.1파운드가 산지가격이니 0.45파운드가 도소매 유통마진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도소매 비용과 이윤 등이 포함돼 있다. 소매가에서 농가 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농가수취율이라 하는데 영국에서 양파는 약 18%의 농가수취율을 차지하는 것이다.

 

좀 더 파고들어보자.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양파의 소매가는 kg당 평균 1500~1800원 정도로 나온다. aT의 자료가 주요 유통가의 평균인 만큼 마트에는 이보다 좀 더 싸게 공급되는데 2.5kg 단위를 2000원 후반에서 3000원 초반에 판매한다. 물론 다른 농산물이 그렇듯 양파도 시기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하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많은 농산물이 그렇지만 양파 역시 포전거래(밭떼기)의 비율이 높은 작물이다. 포전거래는 재배 시점에서 수확 시점의 가격을 미리 정하는 것으로 금융상품에서 많이 나오는 선물옵션 거래 중에서 선물거래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 이는 생산량과 수요량을 예상하여 미리 가격을 정해둠으로써 농가는 안정적인 수익을 미리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포전거래는 농민과 유통업자 양측이 안정적으로 거래를 지속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가 크다.

 

양파의 경우 포전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50~70%나 되기에 이 포전거래 가격이 양파 산지거래가의 기준이 된다. 포전거래가는 시기별로 차이가 있으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30㎡(약 100평)당 80만~100만 원으로 3.3㎡(1​평)당 8000~1만 원 선으로 나온다.

 

이 당시의 도매가가 지금보다 좀 더 저렴했다는 것을 감안하고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양파는 평당 20~21kg 정도 생산된다. 따라서 포전거래 기준 양파의 kg당 가격은 400~500원이 되는 셈이다. 평균 소매가 기준으로는 1000원 중반, 마트가 기준으로는 1000원 초반에 가격이 형성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양파의 농가수취율은 30% 이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흔히들 쉽게 얘기하는 ‘거대 유통업자가 막대한 폭리로 농가와 소비자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주장은 여기에서 무너진다. 

 

현재 환율을 감안하면 영국의 양파 소비자가는 kg당 770원인데 한국은 가장 저렴한 가격 기준으로도 1200원 선이니 선진국인 영국에 비해서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가수취율로 보면 18% 선에서 머무르는 영국에 비해 우리는 30% 이상이므로 피를 빨아먹기는커녕 오히려 한국의 유통업자들이 농가를 훨씬 신경 쓰고 이익을 덜 취하는 이타적인 사업자란 이상한 결론이 나와버린다. 더군다나 영국 농가는 140원만 받아도 되는데 한국 농가는 400원, 500원을 받고 있으니, 폭리와 착취라는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가장 폭리를 취하고 착취를 하는 것은 한국 농가라는 역설이 발생한다.

 

애초에 산지 가격에서 영국과 한국이 3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이상, 영국이 선진국이고 임금수준이 더 높은 것과 상관없이 한국의 양파 소비자가격이 더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엔 폭리나 착취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오히려 kg당 400~500원을 받는 한국 농가도 빠듯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결국 한국은 농가나 유통업자나 소비자나 전부 빠듯하게 살 수밖에 없다.

 

어떠한 가격이 폭리로 보인다면 그것은 실제로 폭리를 취했다기보다는 빠듯함이 주는 억하심정이 만들어낸 편견과 음모론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의 이익을 깎는 것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양파의 문제지만 결국 양파 가격만 보더라도 우리가 양파를 좀 더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으려면 농가가 kg당 300원에 팔고도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제이미 올리버가 진행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진정 놀라고 한편으로 부러웠던 것은 140원에 해당하는 kg당 0.1파운드에 양파를 팔고도 농가가 수익을 내는 점이었다. 폭리로 보이는 가격엔 비싼 생산가가 존재한다. 스치듯 지나간 그 한 장면이 남긴 시사점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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