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골목의 전쟁] 배달앱은 골목상권을 어떻게 바꿨나

다른 권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가격·맛 등 '차별화' 안 되면 도태

2018.08.28(Tue) 14:10:02

[비즈한국] 기술의 변화는 느리지만 생각보다 많은 실물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다만 그 속도가 느려서 우리가 짐작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본격적인 이커머스의 시대가 시작된 지 1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커머스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식 배달 또한 그렇다. 과거 배달음식은 치킨이나 피자, 중국집의 짜장면, 짬뽕, 탕수육 같은 것뿐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음식 배달앱의 성장세도 매우 가파르다. 국내 배달음식 시장의 규모가 15조 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배달앱이 약 3조 원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배달앱의 등장은 배달음식 시장의 규모를 키우면서 그 비중을 끌어올리고 있다.

 

배달앱을 이용하는 모습. 배달앱은 배달음식 수를 늘렸고 음식점 자영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김상연 기자


배달 가능한 음식이 늘고 배달시장의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상권과 자영업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여기서 수요층이 똑같은 인접한 가상의 세 상권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자영업 비즈니스는 그 점포가 위치한 지역의 수요를 기반으로 하므로 각 상권의 범위는 상권의 중심지에서 도보로 닿을 수 있는 거리로 가정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들이 떡볶이를 사 먹기 위해 200~300m 정도는 걸어도 1km를 걸어나가지는 않으니, 상권의 범위는 사람들이 걸어서 사 먹으러 나가는 범위로 한정된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상권마다 업종별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이해하기 쉽게, 각 상권에는 업종별로 1개의 가게만 있다고 가정하자. 즉, 상권 A, B, C에는 각각 떡볶이집이 하나씩 있고 빵집도 하나씩 있고 카페도 하나씩 있는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배달앱을 통한 상품 배달이 본격화할 경우 배달의 도달 권역은 도보로 갈 수 있는 권역보다 훨씬 커져서, 기존의 상권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상권까지 걸치게 된다. 즉 상권 B지역에 있는 떡볶이집의 배달 권역이 상권 A, C에 위치한 떡볶이집과 겹친다. 이전까지는 각 떡볶이집이 자신의 상권에서만 장사를 했지만 이제는 다른 권역의 떢볶이집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만약 세 떡볶이집이 가격이나 품질 차이가 없다면, 배달 권역이 겹쳐도 자신의 상권에서만 소비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만약에 B상권의 떡볶이집이 가격이나 품질에서 다른 지역보다 우위를 보이는 현실적인 경우를 가정해보자. 가격에서 우위를 보인다면 현실적으로는 배달비 때문에 그 효과가 제한적이겠지만, 품질에서 우위를 보인다면 B 지역의 떡볶이집이 A와 C지역의 수요를 일부 흡수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경우 B 지역의 떡볶이집 사장님은 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벌 것이고, A와 C지역의 사장님은 전보다 가난해질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배달의 본격화는 각 상권의 권역을 간접적으로 확대해 조금 더 경쟁력 있는 사업자에게 수익을 더해주지만, 나머지 사업자들에게서는 수익을 빼앗는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전체적으로 보자면 적정한 상가의 수를 줄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옛날엔 상권별로 가게 하나씩은 있어야 했지만 배달앱의 영향으로 상권마다 가게가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로 인해 한 가게는 흥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가게는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기술의 변화가 가져오는 상권과 비즈니스의 변화, 구조의 변화다.

 

물론 여기서 든 예는 이해를 위해 많은 부분을 단순화했다. 실제로는 훨씬 더 조건이 복잡해서 배달앱의 영향력이 이 정도까지 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리고 앞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추세가 어떠한 파급을 미치는지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영업의 생존은 더더욱 어렵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부동산 인사이트] 20년 이상 구축아파트, 입지·공급 따져라
· [홍춘욱 경제팩트] 터키 경제는 왜 곤경에 처했을까?
· [골목의 전쟁] 우리 동네 추로스 가게는 왜 망했을까?
· [골목의 전쟁] 수제맥주 먹어도 마트 가면 4캔 만원 찾는 이유
· [골목의 전쟁] 성수동이 '제2의 홍대'가 될 수 없는 이유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