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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쌀밥에도 '취향'이 있다

이제 쌀은 '기호품' 밥맛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8.09.17(Mon) 11:18:17

[비즈한국] 당신의 입맛엔 어떤 지역, 어떤 품종의 쌀이 가장 잘 맞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별로 없을 듯하다. 

 

이 답을 하려면 다양한 지역과 품종별 쌀을 다 맛보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지를 가려봐야 한다. 쌀이면 다 같은 쌀이지 차이가 얼마나 있겠냐는 이들도 있다. 동그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밥을 온장고에서 꺼내주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보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거다. 사실 쌀밥은 갓 지어서 바로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하지만 뚜껑 닫힌 밥그릇에 담겨 밥 온장고로 들어갔다 나오면 쌀밥 본연의 향과 맛은 퇴색한다. 하지만 우린 개의치 않는다. 쌀밥 맛보단 반찬 맛, 찌개나 국 맛으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 당시 한미정상 만찬에서는 우리 토종쌀 4종으로 지은 쌀밥이 등장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일반 식당에서 쓰는 쌀은 혼합미다.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다른 품종의 쌀을 섞거나, 오래된 쌀을 새 쌀과 섞거나, 심지어 수입쌀을 섞기도 한다. 쌀은 품종별로 수확량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지역별로 맛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단일 품종에 비해 혼합미는 밥맛이 떨어지기 쉽다. 

 

물론 혼합미라도 무조건 다 싸고, 다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닐 거다. 일부러 풍미를 더하기 위해 서로 궁합이 맞는 쌀을 섞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파는 쌀 포장지에 ‘혼합미’라고 적혀 있다면 이건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쌀밥 맛을 민감하게 여기지 않는 소비자에게 굳이 비싼 쌀로 밥해줄 필요는 없다. 결국 혼합미는 밥맛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이들, 싼 먹거리를 원하는 이들 때문에 존재한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은 300여 가지다. 여기에 지역별로 만들어진 쌀 브랜드만 2014년기준으로 1746개나 된다. 하지만 우린 쌀 품종과 브랜드 대다수를 모른다. 게다가 이들 1746개 브랜드 쌀 중 10% 정도만 단일 품종이다. 나머지 90%는 혼합된 것이어서, 소비자로선 어디서 나고 자란 어떤 품종의 쌀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단 얘기다. 이유는 유통과 판매, 재고관리 등에서 오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쌀 등급 표시 역시 2017년 10월부터 의무화되었다. 즉 그전까진 의무화가 아니었다. 등급 검사가 생략된 결과 완전미(형태가 온전하고 상처없는 것)의 비율이 60~70%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은 90% 이상이다. 우리에게 쌀은 그저 한 끼 먹는 식량일 뿐, 품질에도 둔감했던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최고 품질 쌀로는 삼광, 운광, 고품, 호품, 칠보, 하이아미, 진수미, 영호진미, 미품, 수광, 대보, 현품, 해품, 청품, 해담쌀 등 15종이 있다. 이들은 국내 육성 품종이다. 그 외에 일본에서 들여온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밀키퀸도 밥맛 좋다고 알려진 쌀들로 국내에서 재배가 늘고 있다. 

 

대형마트에 쌓여 있는 다양한 국산 쌀 브랜드. 사진=이종현 기자

 

그동안 정부의 쌀 수매 방식이 수량 위주여서 생산량이 많은 다수확 품종들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다수확 품종은 생산량이 많다는 장점도 있지만 밥맛이 떨어지는 약점도 가졌다. 최근 수매에서는 밥맛이 떨어지는 품종들이 퇴출되는 추세다. 정부에서도 밥맛과 품질을 중요시 여긴다는 얘기다.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선 양보다 질, 즉 수확량은 적더라도 밥맛 좋은 고급 품질의 쌀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쌀마저 취향을 타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 쌀은 기호품이다. 최근 밥맛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반찬 맛, 요리 맛이 아니라 밥맛 그 자체에 집중한다. 고급쌀 시장의 가능성이 충분히 열린 셈이다. 부자만의 시장이 아니라 서민들의 시장도 될 수 있다. 쌀밥을 매일 먹지 않고, 가끔 먹을수록 쌀밥이 흔하고 아무렇게나 먹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신경 써서 골라 먹을 수 있다. 흔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가치가 익숙함을 버리니 새로운 가치로 보인다. 

 

오늘 얘기의 핵심은 쌀이 아니다. 작은 것에도 자신의 취향을 따져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이다. 취향을 가진 것이 바로 클래스다. 그냥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는 사람이라는 건 취향이 없다는 얘기다. 쌀밥마저 취향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의식주 전반의 모든 소비에서도 취향을 고려해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일상만 풍요로워지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경쟁력을 가진다는 의미다. 

 

좋은 취향을 가진 이들의 큐레이션이 의식주 관련 소비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모든 소비재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지향한다. 결국 취향이 클래스이자, 취향이 바로 당신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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