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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새해 복 받으며 되새기는 '나눔', 제주 김만덕기념관

기녀에서 거상으로, 자선사업가로 산 김만덕의 삶 '생생'…나눔 체험은 '덤'

2019.01.02(Wed) 08:09:59

[비즈한국] 2019년, 올해는 60년 만의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예로부터 돼지는 풍요와 부의 상징.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모두가 부자가 되시라는 덕담을 주고받을 때, 아이와 함께 나눔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여행지, 제주에서 말이다. 

 

현재 제주항이 자리 잡은 제주시 건입동은 조선시대 제주도의 관문이었다. 이곳을 통해 수많은 물자가 오갔고, 이것들을 중계하는 객주들이 들어섰다. 김만덕(1739~1812)의 객주도 그 중 하나였다. 제주도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그녀는 전 재산을 털어 500석의 쌀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기녀에서 거상으로, 다시 자선사업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김만덕을 기리는 기념관이 건입동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제주항이 자리 잡은 제주시 건입동은 조선시대 제주도의 관문이었다. 1890년대 산지 포구 모습. 사진=구완회 제공


# 조선의 기부 여왕, 김만덕에게 배운다

 

때는 정조 18년(1794). 제주 목사 심낙수가 조정에 급한 장계를 올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돌과 기와가 마치 나뭇잎처럼 날리더니 곡식이 바다의 짠물에 김치를 담근 듯 피해를 입었다”는 것. 그리하여 제주를 덮친 흉년은 고금에 드문 것이라 당장 2만 섬의 구호미를 긴급 요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차적으로 2만 섬을 보내기로 하지만, 곡식을 싣고 출발한 수송선마저 풍랑에 침몰하면서 제주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하고 만다. 

 

정조 18년(1794) 고금에 드문 흉년이 제주를 덮쳤다. 이때 나선 것이 산지항에서 객주를 운영하던 행수 김만덕이었다. 김만덕기념관 내부 모습. 사진=구완회 제공


이때 나선 것이 산지항에서 객주를 운영하던 행수 김만덕이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기녀가 되어야 했던 과거를 지닌 김만덕은 누구보다 배고픈 설움을 잘 알았다. 기녀의 신분에서 꿈에도 그리던 양인이 된 후, 객주를 차려 번 돈을 털어 곡식을 사서는 배고픈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녀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줄잡아 일천수백 명. 2015년 5월 29일 문을 연 제주시 건입동의 김만덕기념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각종 자료와 멀티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의 생활과 제주의 특산품들, 당시 제주도의 객주에서 취급한 물건과 함께. 

 

# 나눔의 의미를 새기고 체험하는 공간

 

김만덕기념관은 단순히 그녀의 업적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김만덕 할망’의 정신을 이어받아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도 보여준다. 별도로 마련된 ‘나눔실천관’에서는 나눔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사람과 물건, 생명까지도 나눌 수 있는 나눔의 스펙트럼을 알아볼 수 있다. 여기다 나의 나눔 지수를 체크하고, 나눔 약속 타임캡슐에 참여하며, 나눔 사전을 함께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것들을 게임처럼 재미있게 즐기며 나눔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김만덕기념관에 별도로 마련된 ‘나눔실천관’에서는 나눔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사람과 물건, 생명까지도 나눌 수 있는 나눔의 스펙트럼을 알아볼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자, 다시 김만덕 할망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김만덕의 선행을 들은 정조는 그녀에게 큰 상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김만덕이 왕의 상을 사양하고 다른 소원을 말한 것이다. 육지로 올라가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다는 것. 아니 금강산을 보고 싶으면 그냥 가서 보면 되지 굳이 임금님한테까지 청을 드려야 하는 건 또 뭔가? 

 

# 육지여행 소원도 이루고 전기까지 출판

 

당시 제주도민들은 마음대로 육지로 나갈 수 없었다. 이른바 ‘출륙금지령’ 때문. 이런 법이 생긴 것은 나라에서 부과하는 해삼, 전복 같은 공물이 너무 과도하여 많은 제주도민들이 육지로 도망을 간 탓이었다. 김만덕이 굳이 금강산 구경을 소원한 것은 혹시 출륙금지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만덕기념관에서 조금 떨어진 모충사에 있는 김만덕의 묘비에는 ‘행수내의녀김만덕지묘(行首內醫女金萬德之墓)’라는 글씨가 지금도 선명하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하튼 김만덕의 소원을 전해들은 정조 임금은 금강산 구경뿐 아니라 한양과 궁궐 구경도 허락한다. 또한 ‘의녀반수’라는 벼슬을 내리고 임금님을 알현할 수 있는 영광까지 주었다. 마지막으로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에게 김만덕의 선행을 담은 전기까지 지으라 했으니, 임금의 상을 사양한 덕분에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된 셈이다. 

 

김만덕기념관에서 조금 떨어진 모충사에 있는 김만덕의 묘비에는 ‘행수내의녀김만덕지묘(行首內醫女金萬德之墓)’라는 글씨가 지금도 선명하다. 모충사는 1976년 김만덕과 제주 의병들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사당이다. 원래 이곳에 김만덕의 묘지와 함께 기념관도 있었는데, 가까운 건입동으로 확장 이전한 셈이다. 

 

여행정보

▲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산지로 7

▲ 문의: 064-759-6090

▲ 관람 시간: 09:00~18:00(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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