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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강력한 임대료 상한제가 상권을 망친다?

상권 성장할 경우 초기 계약한 임대인 불리…임대인들의 단기 이익 극대화 부추겨

2019.06.04(Tue) 09:55:36

[비즈한국] 지난 칼럼에서 임대인들이 단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결과 급격한 임대료 인상이 나타났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초기 임대료에 비해 지나치게 상승해 거래 상대방에게 ‘부당한 거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임대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임대인들은 왜 단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것일까? 물론 인간은 모두 장기적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단기적 이익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바로 그 단기적 시각의 한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임대인들 또한 인간적 한계를 지닌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은 복잡한 임차문제 해결에 해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권 문제에서 발생하는 딜레마 가운데 하나는 임대인이 통일된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들의 집합이라는 점이다. 같은 상권의 임대인이라도 임대료 수익이 모두 다를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대계약의 시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임대인들은 단기 이익 극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상권의 급성장으로 임대료가 상승해 공실이 늘고 있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 일대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낙후된 한 주택가 지역을 상상해보자. 낡은 주거지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던 지역이고 임대료도 낮았다. 이곳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임차인 A가 저렴한 임대료를 보고 진입했다. A가 진입하는 시점에 이 지역은 상권으로서 매력과 잠재력이 없는 상황이므로 임대인 B는 지역의 평균 임대료를 기준으로 임대계약을 체결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 2018년 10월 이전까지는 보호기간 5년, 10월 이후로는 보호기간 10년이며 임대료 상승률은 5%로 상한선이 정해졌다. 임대계약 시점의 임대료가 이후의 수익률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만약 임대인 B와 임차인 A가 계약 시점에서 월 50만 원의 임대료 계약을 맺었다면 5년 동안 네 번 인상이 가능하므로 계약 마지막 해에 받을 수 있는 임대료는 약 60만 원이다. 그리고 보호기간을 10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홉 번의 인상이 가능하므로 마지막 해에 받을 수 있는 임대료는 약 77만 원이 된다.

 

그런데 임차인 A가 진입하고 나서 새로운 사업가들이 몰려들어 이 지역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경우 상권이 발달하고 인기를 얻는 만큼 지역의 임대료 시세도 상승하게 된다.

 

임차인 A가 들어간 지 1년 만에 해당 상권의 임대료 시세가 월 100만 원까지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점에서 다른 후발 임차인들과 계약한 임대인 C는 단 1년 차이지만 훨씬 높은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월 100만 원에 임대계약을 체결한 C는 5년을 기준으로 마지막 해에 거둘 수 있는 임대료는 월 121만 원이며, 10년 기준으로는 마지막 해에 155만 원까지 인상이 가능하다.

 

임대인 B와 C는 단지 임차인과 계약 시점이 1년 정도 차이가 날 뿐이다. 하지만 이 단 1년의 차이로 인해 거둘 수 있는 임대수익은 B가 7546만 원(10년 기준), C가 1억 5093만 원으로 무려 2배 차이가 난다. 만약 2~3년 된 시점에 임대료 시세가 200만 원까지 오른다면 같은 기간의 임대료 수익은 4배까지 벌어진다.

 

임대인 B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단지 남들보다 먼저 임대 계약을 한 이유로 낮은 임대료 수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에 비해 상권의 성장에 운 좋게 올라탄 후발 임대인들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임대료를 벌어들이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임대인 C와 D가 더 훌륭한 임차인과 계약한 것도 아니다. 

 

상권이란 임대인에게 공유재적인 성격을 갖기에 상권의 성장에 따른 혜택을 임대인들이 모두 누리게 된다. 즉, 상권을 성장시킨 것은 임차인 A와 그에게 공간을 임대해준 임대인 B의 기여가 크지만 결과적으로 임대인 B는 상권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마음씨 좋은 임대인이라고 해도 그 상권이 크게 발전하는 데 일조한 임차인 A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권의 성장에 기여했건 아무리 유능한 임차인이건 간에 그 임차인을 내쫓아야 다른 임대인들이 거두는 임대료 수익과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다. 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상권의 초기 임대인들과 초기 임차인들 사이에 심각한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료 상한선을 5%로 제한하면 장기적으로 분쟁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상권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려면 초기 진입자인 임차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임대료 상한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상황에서는 상권의 자생적 성장에 중요한 초기 계약이야말로 임대인에겐 가장 악성 계약이 된다. 이 상황에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상권의 성장기 중간에 임대차 계약을 맺은 임대인뿐이다.

 

상권의 성장에 따른 혜택도 임대인에게 서로 불공평하게 분배가 되므로 임대인들이 장기적인 이해를 계산하는 데 무리가 있다. 이 상황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이 자생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일이 없었기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구조적 문제가 특별히 드러나거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는 상권의 자생적 성장과 급성장이 함께 나타나면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급성장하는 지역에서는 임대인들이 단기 이익을 극대화할 동기가 생기고 그로 인한 임차인과의 분쟁 가능성이 내재할 수밖에 없다. 근시안적인 임대료 규제로 현상을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급성장하는 지역이 없기를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 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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