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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건물주는 왜 그렇게 '미움'을 받을까

임대료 인상 등 '부당 거래'로 인식되는 경우 많아…장기적 관점에서 거래해야

2019.05.27(Mon) 14:17:18

[비즈한국] 건물주만큼 인식이 양 극단으로 갈리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장래 희망으로 건물주를 거론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되고 싶어하니 건물주를 직업이라 부를 수 있다면 가장 선망받는 직업이라 하겠다. 반대로 건물주만큼 미움을 받는 직업도 또 없다. 건물주의 이미지는 썩 좋지 않다. 착취와 탐욕, 불로소득 등과 같은 표현이 건물주를 비난할 때 동원된다.

 

모두가 미워하면서도 모두가 선망한다는 것이 건물주라는 집단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이성이다. 이런 이중성에 대해 사회적인 논평도 가능하겠지만 여기선 그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이렇게 미움을 받는가?’이다. 이 질문의 답은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건물주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사람들은 건물주를 부러워하면서도 미워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잭 네취는 사람들이 무엇을 근거로 ‘좋은 거래’라고 판단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설문에는 이러한 질문이 있었다. “한 철물점이 평소 눈삽을 15달러에 팔았다. 어느날 폭설이 내리고 나서 이 철물점은 눈삽의 가격을 20달러로 올렸다. 당신이 받은 느낌은 어떤가?”

 

이 답을 ‘인정할 만하다’와 ‘부당하다’로 단순화했을 때, 응답률이 각각 18%와 82%가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설이 온 다음 날에 눈삽의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아마 마찬가지 답을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익의 극대화에 초점을 두자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위다. 가격의 결정권은 판매자에게 있고 소비자는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폭설이 온 다음 날은 눈삽의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눈삽 구매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 소비자들은 이런 상황의 가격 인상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눈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리처드 세일러는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에서 급격하게 수요가 몰리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면, 소비자들에게 ‘부당한 거래’라고 느끼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사람들이 수요에 따른 차등 가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성수기처럼 수요가 몰릴 때는 더 높은 가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 다만 거기에 심리적 상한선이 존재하며 그 선을 넘겼을 때는 부당한 거래라고 인식하여 발을 끊게 된다.

 

이런 ‘공정한 거래’의 측면에서 건물주의 가격 결정을 살펴보자. 상가임대차보호법(상임법)이 생기기 이전까지 건물주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가격 결정권을 가졌다. 상임법이 등장하면서 임대료의 인상 상한선이 등장했지만, 5년의 보호기간이 끝나면 그 이후로는 무제한적인 가격 결정이 가능했다. 사람들이 뉴스에서 본 임대료가 몇 배나 오른 사례는 바로 이 보호기간이 끝난 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리고 이 급격한 인상은 주로 낡은 상가에서 벌어졌다. 건물의 환경 개선이 동반되지 않았고 임차인은 인테리어 등의 시설투자로 이전이 제약되는 상황에서 2배, 3배로 임대료가 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당한 거래라고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범죄가 아니며 합법적이지만, 부당한 거래로 인식되는 순간 부당한 거래자로 지탄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같은 상황에서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가격을 덜 올린다. 가격 결정 이론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대기업은 브랜드가 생명이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지속해야 하기에 최대한 소비자의 적의를 사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건물주에겐 브랜드라는 것이 없고 사실상 불특정 다수이기에 이러한 책임과 거래의 장기 지속성에 대한 고려가 뒤로 밀린다. 특히나 대도시의 상권과 상가는 임차인도 임대인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기에, 그 지역의 오랜 거주자와 토박이보다 평판에 덜 민감하다. 따라서 건물주들은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행동의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실제 건물주의 상황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다. 공실인 상가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숫자로 보면 임대인의 상황은 건물 없는 사람들의 상상만큼 좋지 않다. 상가임대 수익률은 세금이나 기타 비용을 제외하면 3%대에 불과하고 공실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 피해업종인 외식업 매출에서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9.4%(외식업 경영실태조사보고서 2018, KREI)로 식재료비나 인건비보다 낮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임대인 집단의 불특정 다수라는 특성과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거래의 누적과 미디어를 통해 이 문제가 널리 알려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임대인 집단을 공정한 거래 상대가 아니라 부당한 거래 상대라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사람들이 건물주에게 적의를 가지는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건물은 많고 좋은 임차인은 갈수록 줄어가는 시대다. 좋은 임차인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상권의 성공에서 핵심임을 생각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장기적 시각이다. 장기 거래를 할 수 있는 좋은 거래 상대가 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부당한 거래 상대와는 장기적으로 거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건물주도 마찬가지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 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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