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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떠난 지 16년…여전히 '집에서 죽을 권리'는 없다

현장 의료진 "선의의 판단 보호 안 되면 연명의료 확대 불가피" 한목소리

2026.05.15(Fri) 16:16:35

[비즈한국]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되돌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지 마라.” 2010년, 법정 스님이 남긴 마지막 유지는 우리 사회에 ‘존엄한 죽음’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스님은 임종이 가까워지자 인공호흡기나 수혈 등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삶을 붙잡는 대신, 자연의 순리대로 산사로 돌아가기를 택했다. 이는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른 완전한 자기결정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2026년 5월 대한민국은 연명의료결정법이라는 제도적 틀을 갖췄지만 법정 스님이 보여준 자연스러운 마무리는 여전히 쉽지 않다.

 

법정 스님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임종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환자들은 원하는 곳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사진=생성형AI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제5회 미디어포럼 ‘삶의 마지막 단계, 자기결정과 최선의 의료’에서는 법과 현실, 그리고 윤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토론이 이뤄졌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의료진이 느끼는 법적 불확실성이 환자의 자기결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라고 지적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집에서 죽고 싶다’고 명확히 의사를 밝혀도 의사들은 법적 책임이 두려워 응급실 이송을 권유하는 방어적 의료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선의에 기반한 임상적 판단과 공유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일정 수준 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 한 의사들은 안전한 오답인 연명의료 확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종교계를 대표해 참석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 신부는 가톨릭의 ‘의료의 균형성’ 원칙을 통해 이 문제를 짚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의료의 균형성이란 말기 환자 치료에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며 과도한 부담·부작용이 없는 적절한 의료행위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오 신부는 “생존 연장 기술이 환자에게 항상 도덕적 선은 아니다”면서 “고통스러운 임종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집요한 치료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 스님이 거부했던 기계에 의존한 삶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오 신부는 의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치료의 유효성을 객관적으로 식별해 무의미한 치료 대신 완화적 돌봄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토론자들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의료진의 선의의 임상적 판단을 법으로 보호하고, 현재 연명의료 중단 이행의 전제 조건인 말기와 임종기 구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복규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현재의 법은 말기와 임종기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분해 의사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며 “법이 모든 것을 규정하기보다 의료기관의 윤리적 결정을 면책하고 보장하는 유연한 체제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4일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공동 주최로 제5회 미디어포럼이 열려 연명치료 중단 현실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사진=최영찬 기자

 

연명의료 중단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반면 말기 환자는 죽음을 앞뒀다는 점에서 임종과정 환자와 유사하지만 연명의료 중단 대상자가 아니다. 말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담당의사와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일선 현장에서는 말기 환자에게도 인공호흡기 착용을 의무로 하고 있다. 만약 중단해서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료진에게 책임 공방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체계에서 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임종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엄격히 제한된다.

 

포럼에서는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가족 단절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가족이 없으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요건조차 채우기 힘든 사각지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다. 이에 따라 미국이나 영국처럼 환자가 평소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미리 지정해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의료 대리인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 진정한 의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제언도 나왔다.

 

“삶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는 죽음은 사회제도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동안 살아있는 데 관심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죽음과 관련한 제도를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토론 말미 마무리 발언을 맡은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 교수의 말을 우리 사회가 곱씹어볼 때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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