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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시촌도 승자독식…달라진 노량진·신림동 풍경

대형학원이 독서실 운영, 기존 독서실 나간 자리엔 셰어하우스…'부익부 빈익빈' 심화

2020.03.04(Wed) 18:04:54

[비즈한국] 오후 12시 40분, 다섯 시간 만에 처음 엉덩이를 뗐다. 앞앞 좌석의 삼색 볼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집중을 못했다. 교무실 쌤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한 뒤 밥을 먹으러 휴게실로 갔다. 점심은 4500원짜리 배식 식사다. 나가서 먹고 와도 되지만 자체 배식 식사 또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이 많다. 밖에 나갈 때마다 외출증을 받는 것도 번거롭다. 얼마 전에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하니 영수증을 가져오라고 했다. 웬만해선 아침 7시 첫 교시에 앉아서 10시 마지막 교시까지 건물을 나가지 말라는 얘기다. 

 

#노량진은 대형 공무원학원이 독서실도 운영

 

김민경 씨(가명·28)는 작년 11월 노량진에 입성했다. 고향 포항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기왕 올라온 거 돈이 좀 들더라도 가장 큰 학원으로 갔다. 학원에선 신규 오픈한 자체 독서실을 같이 등록하면 합격률이 높아진다고 광고했다. 오빠 집이 있는 경기도에서 노량진 학원까지는 지하철로 40분, 급행을 타면 30분이 걸린다. 출근시간을 피해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오면 저녁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간다. 

 

처음 학원에 들어갈 때 동의서를 썼다. 외출·벌점 등 학원의 조치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땐 ‘뭐 이런 것까지 쓰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리를 배정받고 공부를 시작하니 이유를 알게 됐다. 대부분이 성인인데 작은 책상에 묶여 있으니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김 씨는 “넓은 공간에 책상이 150개, 문은 1개 있다. 독서실에 들어설 때마다 이 인원 중에 몇 명이나 합격해 여기를 나갈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대형 공무원 학원 부설 독서실 내부. 남성과 여성이 분리된 공간을 사용하며 긴장감을 주기 위해 줄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강의실 내부에는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한다. 사진=공무원학원 홈페이지

 

노량진의 독서실 풍경이 바뀌었다. 높은 칸막이의 지정 좌석이 전부인 독서실은 줄었다. 관리·감독을 위해 책상의 칸막이는 낮아지고 시간대별로 출석체크를 하는 교무실이 생겼다. 건물 내부에서 식사도, 실강도 가능하다. 모든 건 자리번호로 통하고, 휴대폰은 아침에 제출해 집에 갈 때 받는다. ‘쌤’이라 불리는 교무실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마다 출석체크를 하고, 조는 학생을 깨운다.

 

비용은 올랐다. 독서실비 30만 원에 점심·저녁 식비를 더하면 대략 50만 원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꽉 찬다.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빠진 자리는 며칠 내로 채워진다.

 

반면 소규모 독서실은 공실에 허덕인다. 한 달 10만 원대로 이용할 수 있는 독서실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한때 시간 단위로 금액을 결제하는 카페형 독서실이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옛말이다. 프랜차이즈나 무인 시스템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상권이 됐다. 공무원 학원도 몇 년 전부터 유명 강사를 다 데려간 모 학원이 거의 독점했다. 독서실도 그 학원이 운영하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실이 많다”고 말했다.

 

독서실뿐만 아니라 전체 상권이 비슷하다. 노량진에 온 지 6년 된 한 스터디룸의 총무는 “달라진 노량진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스타벅스다. 2018년에 노량진역점을 연 뒤 지난해 10월 인근에 노량진동점을 열었다.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 주변 카페 여럿이 문을 닫았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900원 아메리카노를 파는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점만 된다. 스터디룸도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박리다매식이다. 아는 점주는 스터디룸 6개를 운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해 올라가는 인건비와 월세를 감당할 수 없다. 식당도 고시원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신림동도 독서실 대신 ‘스파르타 학원’이 대세

 

또 다른 고시의 메카 ‘신림동 고시촌’ 독서실도 노량진과 유사한 형태로 재편됐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많은 노량진과 달리 신림동 고시촌에는 국가공무원 5급 공채 및 외교관후보자 시험 준비생, 변호사·법무사·노무사 등 전문직 시험 준비생들이 많다.

 

신림동 고시촌 초입의 한 건물. ‘스파르타 학원’​이라는 이름의 독서실이 많아졌다. 사진=김보현 기자

 

신림동에 거주하는 고시생 김영수 씨(가명·29)​는 “관리형 독서실은 5~6년 전부터 있었다. 수요가 늘면서 점점 많아졌다. 특히 ‘스파르타 학원’이라는 이름의 학원 연계형·관리형 독서실이 많아졌다. 전통적인 형태의 독서실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신림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 자리에서만 7년간 부동산을 운영했다. 사법고시 폐지 이후 상권이 완전히 죽었다. 독서실은 특히 많이 줄었다. 이 근처에 30개가 넘었는데 이젠 10개 정도 남았다. 대부분 원룸으로 개조해 직장인이라도 받는 분위기인데, 그마저도 공실이 많다. 원룸은 보증금 200만 원에 관리비 포함 30만 원부터 있다”고 전했다.

 

신림동의 한 스파르타 학원 안내문. ‘하루 11시간 강제 자습’, ‘교시제와 벌점제’를 강조한다. 사진=김영수 씨 제공

 

2016년부터 신림동에서 독서실을 운영해온 한 점주는 이번 달을 끝으로 가게를 접는다. 이 점주는 “관리형이 아닌 독서실을 찾는 학생도 꾸준히 있어 영업을 해왔다. 단골손님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손해만 보지 않는 선에서 계속 운영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계속 사람이 줄어 폐업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동네에 사람이 많이 줄었고, 코로나19로 더 줄었다. 한동안 신림동에 재건축 열풍이 불면서 우리 독서실 바로 옆에서도 1년 이상 공사가 진행됐고, 그 소음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독서실이 문닫은 자리에는 셰어하우스가 들어오기도 한다. ‘쉐어어스 신림점은’ 지난해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의 사회공헌기금을 지원받아, 독서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어졌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시 리모델링형(매입형) 사회주택인 ‘아츠스테이 신림점’도 독서실이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어졌다.

 

‘아츠스테이 신림점’ 관계자는 “신림동으로 1호점 위치를 잡은 이유 중에는 저렴한 땅값도 있다. 사회주택은 주변 시세의 70% 정도로 월세가 책정된다. 고시준비생 외에도 직장인, 취준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설명했다.

 

#공시마저 사적 투자에 의존…양극화 계속 심해져

 

‘경제와 사회’​ 2019년 가을호에 실린 한국교원대 석사 과정 김도영 씨의 논문 ‘대졸 청년의 공무원 시험 준비 및 합격에 나타난 계층수준과 교육성취의 효과’는 “공무원 시험조차도 계층수준 및 교육 성취에 따른 계층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논문은 “한국 공무원 시험 제도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입직 절차임에도 그 준비 과정을 전적으로 사적 투자에 의존하고 교육의 평등화 효과마저 미약한 수준에 그치게 하면서 계층 재생산의 직접적인 경로로 기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림동 고시촌의 한 골목. 김영수 씨는 “고시원, 고시부페라고 적힌 간판들이 하나둘 사라져간다”​고 전했다. 사진=김보현 기자

 

고시생 김영수 씨는 “수험시장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걸 느낀다. 독서실은 비싼 만큼 실시간으로 관리를 해준다. 그러나 모든 시험준비생이 이런 식으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고, 10만 원짜리 독서실을 다닌다”고 전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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