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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온 힘을 다해 힘껏 껴안아주고 싶은 '신데렐라 언니'

악역 관점에서 신데렐라 스토리 새롭게 해석…처절한 감정선 살린 배우들의 살 떨리는 연기

2020.12.01(Tue) 13:52:13

[비즈한국] 사람들은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기억하지만,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은 이름조차 모른다. 아니, 계모와 언니들이 왜 신데렐라를 구박했는지 이유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피가 섞이지 않은 계모와 의붓언니니까 당연히 구박하는 거라고? 아무리 주인공 중심 전래동화라지만, 그래도 악역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전사(前事)가 있지 않겠는가. 2010년 방영한 ‘신데렐라 언니’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동화 속 주인공을 괴롭히는 포지션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독특한 드라마다.

 

‘국민여동생’으로 유명했던 밝은 이미지의 문근영이 차갑고 위악을 떠는 은조를 맡고 엉뚱하고 강단 있어 보이는 서우가 사랑스러운 효선을 맡아 화제를 모은 ‘신데렐라 언니’. 다만 후덜덜한​ 여배우들보다 남배우들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아쉬웠다. 택연은 이 작품이 드라마 데뷔작. 사진=KBS 홈페이지

 

‘신데렐라 언니’의 주인공은 제목처럼 동화 속 신데렐라 같은 구효선(서우)의 의붓언니 은조(문근영). 뜯어먹을 게 있는 남자를 찾아 전전하는 막장 인생인 엄마 송강숙(이미숙) 때문에 송은조의 인생도 웃을 날 하나 없는 팍팍하기 그지없다. 매 순간순간 엄마를 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애증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은조는 세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러니 벌써 몇 번째 갈아치운 엄마의 새 남자일 뿐인 구대성(김갑수)과 그의 딸인 구효선도 당연히 믿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의 이번 남자 구대성, 뭔가 다르다. 엄마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은조를 딸로 받아들여 송은조에서 구은조로 만들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그리 쉽게 믿기엔 은조와 엄마 강숙이 살아온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대성의 딸 효선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언니, 언니 하며 은조를 따르고, 처음 알에서 깨 강숙을 본 오리마냥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받아본 기억이 없는 은조는 상처 입고 발톱 세운 들짐승마냥 그들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고, 기구한 팔자 때문에 사람을 뜯어먹을 구실로만 보는 강숙은 그들을 이용하기만 한다.

 

누구에게도 상처 입지 않으려 강한 척, 독한 척, 괜찮은 척 위악을 떠는 은조(문근영)와 그의 위악을 알아보는 기훈(천정명). 기훈이 당초 계획과 달리 대성참도가를 망하게 만들며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이어지기 힘들어진다. 사진=KBS 홈페이지

 

그리고 홍기훈(천정명). 막걸리를 만드는 구대성의 ‘대성참도가’에서 일하고 있는 기훈은 거대 전통주 기업 홍주가 회장의 숨겨진 아들이다. 생모도 죽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버지와 이복형들 때문에 상처가 많은 기훈은 구대성의 보살핌으로 따스함을 알게 되며, 어린 계집애 은조의 상처를 가장 먼저 들여다본다. 대성과 결혼을 앞둔 강숙의 부탁으로 처음 기훈이 은조를 데리러 갔을 때,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상처 입은 눈망울로 돌아보며 도망치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한 명장면. 

 

사람을 믿지 않던 은조가 겨우 ‘한 사람에게만 칭찬받으면 된다’며 기훈을 마음에 담았지만, 기훈이 대성참도가를 떠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진다. 떠나기 전 자신을 잡아 달라는 편지를 기훈이 효선에게 맡겼으나 전해지지 않은 까닭이다. 이 드라마는 주요 인물들의 문학적인 내레이션이 퍽 심금을 울렸는데, 그중 기훈이 “은조야” 부를 때 은조가 몇 번이고 속으로 읊조리는 ‘은조야, 하고 불렀다’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명장면이다(이후 ‘미생’에서 ‘우리 애라고 불렀다’와 비견할 만한 내레이션). 그리고 기훈이 떠난 뒤 강가에서 홀로 은조가 오열하던 장면의 내레이션과도 연결된다.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따오기가 따옥따옥 울듯이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일찍 엄마를 여읜 효선(서우)은 강숙(이미숙)에게서 엄마의 정을 얻고자 애를 쓴다. 그러나 세상 독하게 살아온 강숙에게 대성과 효선은 ‘뜯어먹을’ 대상에 불과했었는데. 사진=KBS 홈페이지

 

‘신데렐라 언니’는 8년의 세월이 지나 돌아온 기훈이 이복형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잠시 대성참도가를 빼앗으려 한 결과가 홍주가의 흉계로 어그러지며 구대성이 죽는 참사가 벌어지며 급진전한다. 드라마 중반부 이후는 ‘대성참도가 살리기’가 주요 서사를 이루는데, 중요한 건 인물들의 감정선이다. 사실 드라마에서 은조의 마음을 여는 첫 인물이자 서사의 발단이며, 은조와 효선의 사랑의 상대는 홍기훈이지만 내가 보는 ‘찐 남자주인공’이자 감정선의 핵심은 구대성이다.

 

은조가 남몰래 도망치려 했을 때 그를 잡아준 대성은, 그야말로 바다처럼 넓은 무한한 사랑으로 강숙과 은조를 품에 안는다. 대성이 죽고 나서 남긴 일기장을 보면, 심지어 강숙이 오랜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옛 남자를 만난 사실을 알면서도 강숙을 사랑한다! 가장 많이 눈물을 자아내는 인물 또한 단연 구대성. 자신의 힘으로 대성의 막걸리를 완성한 은조가, 생전 은조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한 번 듣고 싶어했던 대성의 사진을 보며 우는 장면이 되면 보는 사람들은 절로 수도꼭지가 되고 만다. “저는 아, 아, 아버··· 아빠한테 칭찬받고 싶었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아빠.”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중요한 ‘신데렐라 언니’에서 특히 심금을 울린 건 은조의 내레이션이었다. ‘은조야, 하고 불렀다’와 기훈이 떠난 후 오열하던 장면의 내레이션은 언제 봐도 먹먹하다. 문근영은 이 작품으로 KBS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과 인기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인기상을 수상한다. 사진=KBS 홈페이지

 

사랑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은조와 평생 주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온 효선의 관계, 대성이 죽고 난 이후 의붓딸 효선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는 강숙과 효선의 관계도 ‘신데렐라 언니’의 큰 관전 포인트다. 끊임없이 효선을 밀어내지만 사실 효선을 대하는 은조의 태도는 지극히 ‘츤데레’스럽다. 사랑할 줄 모르기에 표현할 줄도 모르는 것. 이는 뒤늦게 대성과 효선의 깊은 사랑을 알고 ‘부끄럽다’는 감정을 알게 되는 강숙 또한 마찬가지다. 

 

이 물고 물리는 관계의 배우들이 살 떨리게 연기를 잘하는 것도 ‘신데렐라 언니’를 잊지 못하는 이유다. 날카롭고도 처연한 눈빛과 몸짓, 빼어난 발음 등으로 지금도 배우 지망생들의 연기 대사로 자주 애용되는 문근영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티 없이 밝은 신데렐라였다가 온갖 마음의 상처를 받는 효선 역의 서우, 기함하도록 뻔뻔스럽지만 험악했던 전사가 짐작되기에 끝내 저버릴 수 없는 강숙 역의 이미숙, 이 세 여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드라마 내내 시청자들의 마음을 후벼 파고, 눈물로 눈이 짓무르게 만들고, 가슴을 애틋하게 한다.

 

천정명, 옥택연보다 마음을 뒤흔드는 무한한 사랑의 소유자 구대성(김갑수). 엄격하지만 강숙과 은조를 받아들인 그의 마음은 바위도 녹일 만한 대단한 것이었다. ‘사망 전문 배우’로 불리는 김갑수는 이 작품에서도 9회에 죽지만, 드라마 끝까지 그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사진=KBS 홈페이지

 

‘신데렐라 언니’는 10년 전 봄에 방영했지만, 이상하게 지금 같은 계절에 더욱 생각난다. 상처투성이로 누구도 믿지 못하던 춥디춥던 어린 은조가 생각나서일까. 아니면 한없이 그를 품어주던 대성의 따스한 사랑이 그리워서일까. 아직까지 ‘신데렐라 언니’를 못 봤다면 바깥나들이 어려운 이 시기에 추천을 권한다(KBS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다). 단 손수건이나 휴지는 필수.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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