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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공정위 임의조사는 왜 '미란다 원칙'이 통하지 않을까

자료제출 거부 및 허위 진술은 과태료 처분 가능…달라진 '방어권 규정' 숙지해야

2020.12.15(Tue) 09:16:17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경찰과 검찰에 출석해 진술하는 경우 수사관은 조서를 받기에 앞서 ‘진술거부권이 있고 진술은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다. 피의자가 진술거부권을 포기하고 진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처럼 사전에 방어권을 고지하는 점은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출석해 진술할 때는 이와 정반대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간주해 향후 과징금 부과 등 시정조치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게 된다.

 

이러한 공정위 경고의 근거는 공정거래법이다. 공정거래법은 △자료 은닉·​폐기 △접근거부 △위·​변조 △자료 미제출 △허위 자료 제출 등을 과태료 부과 및 과징금 가중사유로 규정한다. 또 △폭언 △폭행 △고의적인 현장 진입 저지 또는 지연을 통한 조사 거부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정위에 출석해 진술할 때,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면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다. 한 기업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이 상자를 들고 본사 건물로 들어서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굳이 법률적으로 따지자면 경찰·​검찰의 수사는 수사 대상의 동의나 승낙 없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제수사고, 공정위의 조사는 그 대상자의 동의나 승낙 하에 이루어지는 임의조사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 정의와 무관하게 조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강제수사와 임의조사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고, 때에 따라서 임의조사가 더 부담될 수도 있다.

 

공정위로부터 자료 제출 요구 공문을 받았을 경우,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치고 그 요구가 임의조사이므로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공정위 조사관이 현장 조사를 하겠다면서 갑자기 사무실에 찾아오고 회의실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하기도 어렵다.

 

물론 공정위가 조사방해를 이유로 불이익한 처분을 내린 경우 이를 다투어 취소 판결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공정위 조사관은 불공정 하도급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삼성전자 임직원에게 사내전산망 열람을 요구했으나, 그 임직원은 영업비밀 및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 공정위는 이를 조사방해로 보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2010년 8월 수원지법(항소심)은 공정위가 요구한 열람권은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최소한도의 조사로 보기 힘들다고 보고 과태료 부과처분을 취소했다(대법원판결로 확정).

 

그러나 위와 같은 판결은 매우 드물 뿐만 아니라 당사자 상호를 보면 삼성전자니까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사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해당 사건에서 과태료 부과나 과징금 가중 등의 불이익을 받는 것만이 걱정되는 게 아니다. 자칫 공정위로부터 비협조 사업자로 낙인찍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에서 음으로 양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더 두려워한다.

 

조사를 받는 사람들은 공정위로부터 비협조 사업자로 낙인찍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더 두려워한다. 문서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조사방해가 인정된 최근의 사례로는 A 양회가 공정위 조사를 받으면서 자료를 은닉하고 PC를 다른 직원의 PC와 교체한 사안이 있다. 공정위는 이를 조사방해로 보고 과징금의 30%를 가중했는데, 대법원은 이러한 공정위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2017두36212).

 

한편 B 양회의 대리인(변호사)이 공정위에 향후 부과받을 과징금 437억 원을 미리 반영한 재무제표를 제출하면서 이러한 사정을 알리지 않은 사례는 특이한 사안이다. 공정위는 위 재무제표를 기초로 최근 3년간 적자를 고려해 과징금의 50%(218억 원)를 감경했다.

 

만약 과징금 437억 원이 반영되지 않았다면 과징금 감경 요건인 최근 3년간 적자가 충족되지 않았을 거다. 공정위는 B 양회의 대리인이 재무제표를 제출하면서 과징금이 먼저 반영된 사실을 묵비해 감경 요건이 충족된 것처럼 주장한 부분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한 사안에 해당한다고 보고 2017년 12월 대한변호사협회에 해당 대리인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이처럼 조사방해는 그 당사자의 변호사 자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민감한 사항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조사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임의조사나 강제수사나 부담의 정도가 비슷하다면, 임의조사에 대해서도 강제수사에 부합되는 수준으로 절차를 정비하고 피조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21년 5월 시행 예정인 개정 공정거래법은 사건처리 절차에서 적법절차를 강화하고 피조사자의 방어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공정거래위원회. 사진=임준선 기자


이러한 이유로 2021년 5월 시행 예정인 개정 공정거래법은 사건처리 절차에서 적법절차를 강화하고 피조사자의 방어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현행법에 따르면 현장 조사를 진행할 때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개정법은 조사의 목적·​기간·​방법 등이 기재된 조사공문도 제공하도록 했다.

 

둘째, 현행법은 공정위가 피조사자의 자료를 보관(영치)할 권한만을 규정했으나, 개정법은 보관 조서의 작성 및 교부 의무를 규정했다. 또 조사와 관련이 없거나 조사목적 달성으로 보관의 필요가 없으면 즉시 반환하도록 했다.

 

셋째, 개정법은 사건 처리 모든 단계에서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사 단계에서도 의견 제출·진술권이 있음을 명시했다. 현행법은 심사보고서 상정 이후 심의단계에서의 의견 진술권만을 규정한다.

 

넷째, 개정법은 피조사자와 피심인에 대한 변호인 조력권을 명문화했다. 또 피조사자에 대해 진술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진술조서 작성을 의무화했다. 

 

피조사자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선처를 구할지, 아니면 증거로 밝혀지기 전까지 일단 부인할지를 선택하는 건 어려운 문제이다.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 자칫 불이익을 받게 되거나 조사자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많은 사실관계를 밝히면 조사대상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판단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첫 번째 조치는 방어권 규정의 숙지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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