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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공정위 규제는 어떻게 K팝 한류를 낳았나

표준계약서 도입으로 불공정 관행 막고 연예인 보호 가능…올바른 규제는 육성의 발판 마련

2022.02.28(Mon) 15:26:16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정부 기관의 규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없다. ‘규제’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따라오곤 한다. 언론에서도 ‘규제가 혁신산업을 가로막는다’라거나 ‘민간의 창의성을 제약하는 과잉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 담긴 보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끔 규제가 산업 융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과거 연예계에선 불공정한 계약과 업계 관행으로 인해 연예인과 기획사 간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에서 한류 열풍이 분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아이돌 가수의 역량은 다른 나라 가수를 압도한다. 국내 가수의 역량이 높은 데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계약서를 제정하면서 연예계에서 불공정 거래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연예인은 대부분 연예기획사(소속사)를 통해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예인은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전속계약’ 또는 ‘전속 매니지먼트 계약’의 주요 내용은 △소속사나 매니저가 연예인의 업무 처리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예인은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만 연예 활동을 하고 △직접 또는 제삼자를 통해 연예 활동을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술하니 전속계약에 별다른 내용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장에선 연예기획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서를 제시하고, 연예 지망생은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서명하는 식으로 전속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속계약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연예 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계약이다. 상황에 따라 연예인의 커리어를 좌우할 수도 있다.

 

앞서 설명한 전속계약 내용 중 ‘소속사가 연예인의 업무 처리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항목이 있다. 여기서 말한 업무 처리 서비스란 소속사가 스케줄 관리·운전·경호·의상·메이크업 등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속사가 연예인 대신 방송·행사·영화 등을 섭외할 수 있고 연예인은 계약에 따라 협조해야 한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물론 연예기획사는 섭외에 앞서 연예인의 의사를 확인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연예인의 나이가 어릴수록, 인기와 인지도가 낮을수록 소속사가 일방적으로 방송 등을 섭외하는 경우가 많고, 해당 연예인은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과거 연예계에서 ‘소속사가 무리하게 행사를 섭외해 연예인 이미지가 하락했다’, ‘지나치게 지방 행사를 많이 섭외해 연예인의 건강을 해졌다’ 등의 논란이 많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속계약 중 ‘연예인이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만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항목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연예인이 A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체결했고 계약 기간 중인 경우, 연예인은 다른 기획사를 통해 연예활동을 할 수 없다. 이때 다른 기획사란 A 기획사의 경쟁사, 같은 업계(연예계)의 기획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회사 또는 관계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연예인이 A 기획사를 거치지 않고 인터뷰에 응하거나, 굿즈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에도 전속계약 위반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주 발생하는 분쟁은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정산 문제다. 연예인은 기획사를 통해서만 활동하고 출연료를 정산받을 수 있다. 기획사는 연예인의 활동으로 발생한 모든 매출액을 기획사 계좌로 입금받아 수수료를 공제한 나머지를 연예인에게 지급한다. 

 

그런데 몇몇 메이저 업체를 제외한 다수의 연예기획사가 영세하다 보니 정산자료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거나 정산자료를 정기적으로 연예인에게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회사와 연예인 간에 불신이 생겨 연예인이 정산금 지급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있다. 

 

전속계약에 따라 연예인이 기획사를 거치지 않고 굿즈를 출시한다면 계약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BTS 콘서트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소파이 스타디움 앞 응원 용품 매장. 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연예인이 직접 또는 제삼자를 통해서 연예 활동을 하지 않을 의무’라는 전속계약 항목도 문제다. 항목에 따라 연예인은 오로지 전속계약의 상대방인 기획사를 통해서만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다. 즉 기획사의 역량이 미흡해 연예인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계약 기간 중이라면 연예인은 해당 기획사를 통해서만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연예인이 계약기간 중 다른 기획사와 접촉해 활동한다면 전속계약 위반이 되는데, 전속계약을 할 때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수억 원의 위약금 조항을 두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이 다른 기획사와 접촉하는 경우 연예인이 속한 기획사의 의지에 따라 수억 원의 위약금 채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항목 때문에 연예인으로부터 ‘데뷔 기간 7년 동안 고작 앨범 2개밖에 내지 못해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삼류 영화에 출연시켜 이미지가 하락했다’ 등의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전속계약의 불공정 조항이나 반복되는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과거 국내 연예계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일었고, 불미스러운 소문도 많았다. 부모가 자녀의 연예계 데뷔를 선뜻 지원하지 못하거나 다른 일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에 표준계약서를 제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적어도 계약상으로는 불공정 조항을 바로 잡았고, 표준계약서에 따라 전속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늘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계약상으로는 불공정 소지가 대폭 줄었고, 이는 한류가 융성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혔다. 참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전속계약서는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선 기획사가 표준계약서를 제시한다면 기획사를 믿고 자녀의 연예계 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다만 연예계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에서 그렇듯,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하더라도 기획사 등 계약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표준계약서가 사실상 의무화하면서 연예인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됐지만, 단점도 생겼다. 표준계약서는 연예인을 보호하고자 연예기획사의 의무를 강화했는데, 영세한 기획사는 계약서상 의무를 전부 지키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연예계 양극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또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면서 거래의 내용이 획일화하고 있다. 연예인마다 분야마다 고려할 요소가 있고 이에 따라 계약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면 계약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진다. 예컨대 국내 아이돌은 7년 차가 되면 그룹을 해체하거나 일부 멤버가 탈퇴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표준계약서상 전속계약 기간이 최대 7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계약서를 제정한 이후 빈번하게 발생했던 연예계의 불공정 관행은 줄어들고 있다. 두 사실 간의 관계는 우연이라기보단 인과관계에 의한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규제가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흔하지 않은 사례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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