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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9] 오민준-한글로 그려내는 글씨 회화

2023.05.02(Tue) 15:41:15

[비즈한국] 우리가 사는 일은 하찮은 일의 연속이다.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 가치를 붙이면 소중한 의미가 생긴다.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예술도 이런 마음에서 시작된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는 이런 마음에서 출발했다. 초심을 되새기며 아홉 번째 시즌을 맞았다. 사소한 일상에 가치를 새기는 평범한 삶이 예술이 되고, 그런 작업이 모여 한국 미술이 되리라는 믿음이다. 이것이 곧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의 정신이다.

 

오민준 작가는 한글을 이용해 독보적 회화 언어를 개척하는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전통 회화 중 현대적 표현성이 보이는 것이 민화다. 민화는 조선 말기에 나온 그림이다. 감정 표현을 천시하던 성리학의 나라에서 표현주의 성향의 회화가 나왔다는 게 신기하다. 

 

민화에는 글자를 소재 삼은 그림이 있다. 문자도다. 유교적 교훈이나 기복적 신앙의 한자를 장식적으로 구성한 그림이다. 글자의 의미와 관계 있는 옛 이야기를 한자의 획 속에 넣어 아름답게 꾸민 그림이다. 그래서 꽃 글씨라고도 불린다.

 

문자를 회화 표현의 한 방법으로 수용한 예는 서양 회화에서도 보인다. 195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추상미술 가운데 ‘타시즘’이라는 것이 있다. 작가의 자유로운 붓놀림을 중히 여기는 경향이다. 

 

추상표현주의의 한 갈래인 타시즘은 필력과 거친 붓 터치, 붓에서 뚝뚝 떨어져 생긴 점 등으로 그림을 만드는 방법이다. 화선지에 붓으로 글씨 쓰듯 밑그림 없이 한순간에 무엇인가를 그려내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숙련된 손놀림과 순식간에 빈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직관력 없이는 불가능한 그림이다. 서예의 기본인 직관적인 제작 태도를 서양에서 따라한 셈이다. 

 

겸손: 70×70cm 색지, 한국화물감, 아크릴 2023


타시즘의 생명은 서예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필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타시즘을 ‘서법적 추상’이라고 부른다. 중국계 프랑스 작가 자오우키는 한자의 획을 활용한 회화로 서법적 추상의 대표작가가 되었다. 이우환 역시 한자의 기본 획과 점을 응용한 추상 회화로 성공한 경우다. 

 

오민준도 문자를 주제로 새로운 글씨 회화에 도전하는 작가다. 특히 그는 한글을 이용해 독보적 회화 언어를 개척하는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다.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글자가 아닌,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글자인 한글의 매력에 빠져 작업을 시작했다”는 오민준은 “표현 방법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개발하고, 독창적인 자형을 만들기 위해 공간과 사투를 벌이듯 작업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꿈: 46×78cm 한지, 아크릴, 혼합먹물 2021


 

한글은 한자와 달리 뜻을 품은 문자가 아니다.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하는 글자이기에 뜻을 담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음과 자음을 합성해서 구성하는 독특한 구조와 가로세로, 전후좌우를 아우르는 짜임이 가능하기에 조형성의 폭이 매우 넓다. 여기에 문자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는 매력까지 더해진다.

 

이렇듯 한글이 가진 변화의 스펙트럼은 현대 디자인 감각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이런 이유로 현대 회화의 새로운 표현 영토로 손색이 없다. 

 

오민준의 작업은 이러한 한글의 표현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랜 세월 서예로 다져온 필력과 추상 회화의 감각을 결합한 신선한 그의 작업은 현대 회화의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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