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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서답] 모든 것이 혼재하는 나라에서, ‘인도 야상곡’

2016.08.30(Tue) 15:17:21

이대로라면 정말로 살아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에서 먹은 지미 아저씨네 초우멘이 문제였는지, 자이살메르에서 먹은 노점상의 초우멘이 문제였는지 아무튼 초우멘이 문제였던 것은 확실했다. 바라나시로 넘어오는 기차에서부터 설사가 시작됐고,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히즈라’라 불리는 여장 남자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연신 귀엽다 조롱했지만,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야심차게 사서 입고 다녔던 알라딘 바지 밑단에는 점차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갈색 도트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인도에 도착한 지 약 3주차.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첫 물갈이가 시작된 것이다.

바라나시에 도착 후 머문 숙소들의 선택 기준은 오로지 변기였다. 첫 숙소는 가트 근처로 결정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그 유명한 갠지스강이 보였다. 삶과 죽음이 맞닿는 곳.

   
 

인도 사람들은 시신을 화장하여 갠지스 강물에 흘려보내는 일을 매우 신성시 여긴다고 했다. 망자들은 매일 이곳으로 실려왔고, 화장터의 불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잦아들지 않기는 내 뱃속의 불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는 족족 물이 되어 빠져나갔다. 그것들도 아마 갠지스강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숙소에서 멀리 나갈 수 없었다. 퀴퀴한 방 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엽서 따위를 적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인도까지 날아와서 설사나 하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써 날린다는 것은 제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원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광활한 인도에서 근 일주일을 화장실에 갇혀 있었다. 변기를 부여잡고 인생 최고의 무력감을 맛봤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고, 건강했던 시절의 내가 간절히 그리웠다. 강물처럼 생각들이 흘러갔다. 나를 찾아나선 최초이자 최후의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육체의 감각이 어느 정도 여과되고 나면, 경험은 모호해져서 한껏 더 나은 이미지로 남게 마련이다.” -83p

4년의 시간이 흘러 오늘이 됐다. 기억의 편집이란 참 대단하다. 그렇게 극한으로 몰렸던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요즘처럼 잠 못 이루는 밤에는 특히 더 그렇다. 인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인도 야상곡>을 집어든 이유도 그런 꼬리 물기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당분간은 집어들고 싶지 않은 소설이었건만…. 단 한 번의 호흡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렸다. 다른 소설들은 여러 번 끊어 읽을 수 있었지만, <인도 야상곡>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밤이 지나갔다. 장담컨대 나 아닌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나는 인도의 북쪽을 여행했고, <인도 야상곡>은 인도의 남쪽을 배경으로 삼았다. 책에서 마주한 인도는 실제로 마주했던 인도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도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서로가 속고 또 속인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땅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극심한 빈부의 차가 존재하고, 수많은 종교들은 저마다의 믿음을 과시한다. 모든 것이 혼재한다. 비우러 간다면 채우고 올 것이오, 채우러 간다면 비우게 될 것이다. 인도는 그러한 혼란 속에서 오직 한 사람, 나를 마주하게 되는 곳이다.

<인도 야상곡>이 그려내는 열두 번의 밤 또한 존재의 단면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밤 속에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었다. 모순된 모든 것이 온전하게 존재되는 시간들. 주인공 호스는 이러한 열두 번의 밤 속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종된 친구, 사비에르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가고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타부키의 전작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문장과 문장의 틈새로 타부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마지막 밤에 이르러서는 타부키의 꼬리를 물고 내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이 시점부터 소설은 이야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아니 오히려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이 소설만의 정체성을 얻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나는 어제 이곳 인도의 밤 속으로 빨려 들어왔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인도 야상곡>의 밤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4년 전 여행에서 느꼈던 그 묘한 느낌을 책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꿈의 꿈에서도 몰랐다. 대단한 소설이다. 내가 꿈꿔왔던 인도 이야기가 이렇게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정말로요. 당신의 그 사진하고 약간은 닮았어요. 확대는 맥락을 변조하지요. 사물은 멀리서 봐야 해요. 선택된 부분은 신중히 보시기 바랍니다.” -113p

블로거 녹색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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