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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원조, 독일 '피도르은행' 성공 키워드는 '공동체'

파괴적 혁신 롤모델…커뮤니티 통해 기획·홍보·고객대응 등 비용 절감

2017.08.01(Tue) 13:43:43

[비즈한국] 카카오뱅크의 흥행으로 인해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강국을 자처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도입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은산분리, 개인정보보호법 등 각종 금융 규제로 인해 넘어야 될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빠른 일처리와 통합 전산망 구축도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이 늦어진 역설적 이유로 작용했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금융권 모두 더 이상 낡은 규제로는 세계적인 흐름인 ‘핀테크’에 발맞추지 못한다는 것에 공감대는 충분해 보인다. 다만 규제를 어디까지 완화하는지를 두고 저마다 입장차가 커, 입법까지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규제는 어디까지 건전한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장치이기에, 무조건 풀기만 하는 것도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록 뒤늦기는 했지만 카카오뱅크와 지난해 출범한 ‘K(케이)뱅크’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인터넷 전문은행 모델을 국내 대표적인 IT기업인 카카오와 KT가 각각 우리 금융 환경에 맞게 도입한 결과물이다. 굳이 원조를 따지자면 독일의 ‘피도르은행’이 물망에 오른다. 은행 계좌 하나 만드는데 최소 2주가 걸리는 독일에서 피도르은행은 그야말로 ‘혁신’ 그 자체로 평가받았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카카오뱅크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 금융에 대한 불신을 역이용하다

 

2009년은 유럽 금융시장이 완전히 녹아내렸다고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은 해다. 바로 그리스 재정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피도르은행은 이러한 금융 위기 속에서 독일 은행 면허를 취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당시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반에는 기존 은행 및 금융권에 대한 강한 불신이 만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에 불어 닥친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각국 정부와 금융기업 들의 방만한 재정 운영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99%다(We are 99%)’로 상징되는 금융개혁에 대한 요구는 미국 월스트리트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빠르게 퍼졌다.

 

피도르은행은 처음부터 지점이 없었다. 초기 직원도 스무 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도르은행이 세계 최고의 혁신 은행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까닭은 처음부터 추락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회복하는 것을 핵심 경영방침으로 정하고 금융 소비자들의 각종 불만 및 불편사항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기 때문이다. ‘피도르(Fidor)’라는 사명 역시 신뢰를 의미하는 라틴어 ‘fides’가 어원이다.

 

피도르은행은 은행 최초로 페이스북 계정을 사용해 계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통해,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악명이 높은 독일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사진=피도르은행 홈페이지

 

유럽에서 소비자 금융 서비스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악명이 높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새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 방문 예약을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 복잡한 서류를 제출하고도 수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점에서 가입 후 바로 내주는 체크카드조차도 일주일은 지나야 수령이 가능했다. 신용 카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도르은행의 등장은 독일 금융 소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  없었다.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페이스북 계정과 연결해 계좌를 개설하고, 돈을 맡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예금 및 대출 이자 역시 기존 은행에 비해 훨씬 유리했다. 계좌를 개설하고 이체하는데 어떤 수수료도 받지 않았다. 카드 연회비도 없을뿐더러 일정 이상 사용 금액을 강제하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와 똑같다. 

 

# 은행을 게임처럼 쉽고 재미있게 풀다

 

피도르은행의 가입자는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기준 3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으며 약 3억 2000만 유로(4227억 원)의 예금을 유치했다. 그 사이 피도르은행 직원도 같이 늘긴 했다. 피도르은행 시작 당시 직원은 25명이었지만, 30만 건을 돌파하는 시점에서 직원은 40명. 우리나라에서는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지점 하나 정도의 직원 수에 불과하다.

 

피도르은행은 단순히 지점을 개설하지 않아 고정비용을 낮춘 것 이외에도, 마케팅 및 홍보에서도 혁신적인 행보를 보였다. 마치 은행을 모바일 게임처럼 운영하고 서비스했다.

 

피도르은행 체크카드는 기존의 고급스럽고 딱딱한 카드 디자인에서 벗어나 보다 친숙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사진=피도르은행 홈페이지

 

피도르은행 홈페이지에는 커뮤니티가 있다. 피도르은행 회원이라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피도르은행에 대한 소개나 활용 팁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린 다음, 일정 수 이상 다른 회원의 추천을 받으면 즉각 100유로(13만 2000원)를 보상으로 지급했다. 피도르은행의 자유예금 이자는 연 0.5%에서 출발한다. 그 다음 페이스북 ‘좋아요’ 수에 따라 금리를 올려줬다. 좋아요가 2만 2000건을 돌파했을 때 금리를 연 1.5% 제공하는 식이다. 요즘 모바일 게임에서 즐겨하는 이벤트 방식이다.

 

고객대응 비용도 이러한 방식으로 줄여나갔다. 누군가 피도르은행과 관련된 질문을 게시판에 올리고, 또 다른 사람이 답변을 달면 질문자와 답변자 모두에게 각각 0.1유로(132원)가 주어진다. 심지어 누군가 피도르은행에 도움이 될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1000유로(132만 원)의 상금이 제공됐다. 즉 고객을 단순히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제3의 행원과도 같은 존재로 바꿔나갔다. 이를 통해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추고, 발생되는 이익을 고객에게 혜택으로 돌려줌으로써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피도르은행은 2013년 독일 최고의 혁신 은행에 선정됐다.

 

# 은행과 고객은 공동체다

 

피도르은행은 크라우드 펀딩, 비트코인 거래 등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차례대로 선보였다. 이는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각각의 아이디어는 수많은 핀테크 스타트업에 영감을 줬다. 피도르은행 이외에도 세계 각국의 인터넷 전문은행 들이 기존 은행이 가진 딜레마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피도르은행의 다음 행보는 영국 등 다른 EU 국가로의 진출이다. 지점이 필요 없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특성상 국가의 경계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시장이 하나로 묶여있는 EU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가 해외로 진출을 논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이미 인접국가인 중국과 일본에는 피도르은행 못지않은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발히 운영 중이다.

 

피도르은행의 혁신은 IT와 금융 분야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매년 전 세계 각종 단체로부터 수 많은 상을 받았다. 사진=피도르은행 홈페이지

 

피도르은행이 서비스 5년 만에 30만 가입자를 모았다고는 하지만, 카카오뱅크는 불과 3일 만에 100만 가입자를 모았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다른 경제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카카오뱅크 역시 의미 있는 출발을 했다는 평가다.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을 등에 업은 카카오뱅크나 시장 점유율 30%의 대표적인 통신사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케이뱅크는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카오뱅크, 케이뱅크가 피도르은행을 롤모델로 삼기 충분한 이유는 그들이 가진 지향점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도르은행은 어렵고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은행의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성공했다. 먼저 출범한 케이뱅크보다 카카오뱅크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 역시 친숙한 카카오 캐릭터를 활용한 접근과 쉽고 간편한 인터페이스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이 나온다.

 

메티아스 크뢰너 피도르은행 CEO(최고경영자)는 한 인터뷰에서 “기존 은행들이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지 고민할 때,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공동체를 이룰 것인지 고민했다”며 “회원들을 공동 관리자로 대우하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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