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정학적 갈등과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가 맞물리며 현대 글로벌 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물류 운송 경로들이 연이어 차단되거나 이용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 무역의 주요 동맥으로 기능하던 해상 및 육상 통상로가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처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은 전 세계 물류 업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물류망의 최우선 가치가 물류비를 최소화하고 최단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효율성’이었다면, 이제는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발생하더라도 외부의 돌발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우회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기업과 국가의 생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 통상로를 대체하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공급망 우회로의 현황과 그 거시경제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파나마 운하의 수위 저하 현상으로 인해 전 세계 해상 물류의 정체가 발생면서, 멕시코 정부가 추진하는 ‘테우안테펙 지협 횡단열차(CIIT)’가 해운업계의 우회 경로로 주목받고 있다. 파나마 운하의 통항 제한 조치로 선박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운송의 정시성을 확보해야 하는 물류 기업들이 멕시코의 육로 철도를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단일 항로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하고, 추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유지하려는 기업들의 다변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배에서 열차, 다시 배로…번거로워도 안정적
테우안테펙 지협은 멕시코만과 태평양 사이에 놓인 지협으로,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200km인 지형이다. 큰 육지 사이를 잇는 좁고 잘록한 땅을 뜻하는 ‘지협’은 예부터 운하 건설의 최적 후보지로 꼽혀 왔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대표적 사례다. 테우안테펙이 횡단 물류 노선의 무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두 대양 사이 거리가 멕시코 영토에서 가장 짧은 지리적 숙명에서 비롯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경쟁 구도가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철도는 신설 노선이 아니다. 1907년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부 시절 두 대양 사이 화물 운송을 위해 개통됐던 노선이지만, 결정적 패인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갓 개통한 테우안테펙 철도는 경쟁력을 잃었다. 한 세기 전 파나마 운하에 밀려 사라졌던 노선이, 이번에는 그 파나마 운하가 기후위기로 흔들리면서 110년 만에 부활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 대통령은 2023년 12월 개통식에 직접 참석해 “수십 년 동안 꿈만 같았던 프로젝트가 재개됐다”고 말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는 글로벌 해상 교역의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지속된 기상이변으로 운하 가동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운하 갑문 운영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는 가툰 호수의 수위가 가뭄으로 인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파나마 운하 당국은 하루 통항 선박 대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운하 진입을 기다리는 선박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졌고, 전반적인 물류 흐름이 지연됐다.
이 병목이 지속되자 멕시코가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던 테우안테펙 횡단열차가 대안으로 부각됐다. 태평양 연안 오아하카주 살리나크루스 항과 멕시코만 연안 베라크루스주 코아차코알코스 항을 철도로 연결하는 약 300km 노선이다. 선박이 운하를 거치지 않고 한쪽 항구에 화물을 하역한 뒤 철도로 반대편 항구까지 수송해 다시 선박에 싣는 방식이다.
물류 업계는 파나마 운하의 용수 부족 문제가 만성적인 리스크가 될 것을 우려한다. 이에 따라 멕시코 철도를 안정성을 보장할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배에서 철도로, 다시 배로 옮겨 싣는 환적 과정이 추가되지만, 운하 정체에 따른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 노선으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상반기 시범운행 “화주사 논의 후 상시 운송 확정”
물류·해운 시장에서 기업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운송 과정의 불확실성이다. 정수현 평택대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선사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언제 통과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장 기피한다”며 “수에즈 운하가 막혔을 때 10일이 더 걸리더라도 희망봉을 우회하는 이유는, 고객에게 약속한 날짜에 화물을 배송하는 ‘정시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시성 유지를 위해 국내 물류 기업인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상반기에 멕시코 테우안테펙 횡단열차를 활용한 시범 운행을 진행했다. 테우안테펙 횡단열차를 통해 완성차 900대를 미국 동부 조지아주 브런즈윅 항까지 수송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번 시범운행에 대해 “기후 위기로 인한 가뭄과 용수부족으로 파나마 운하의 선박통항 제한이 재현되고 있어,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급망 리스크의 대응 방안 중 하나로 CIIT를 통한 운송을 검토하고 있다”며 “상시 운송 루트로 활용하는 점에 대해서는 시범운행을 통해 확보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화주사등 과 논의 후 결정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른 운하’ 뒤의 그늘, 경제성 확보와 환경·인권 갈등
CIIT의 근본적인 한계와 실무적 우려는 명확하다. 가장 큰 문제는 환적에 따른 물류비 상승과 시간 소요다. 선박에 화물을 실어 최종 목적지 항구까지 직항으로 운송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중간에 화물을 여러 번 내리고 싣는 환적 방식을 취하면 비용과 시간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인 파나마 운하 통항 비용과 비교했을 때 우회 노선의 경제성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이 노선은 파나마 운하가 운영이 제대로 안 될 때 기능하는 제한적 대안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직 파나마 운하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아니며, 운하 당국도 용수 재활용 등 장기적인 인프라 개선책을 강구하고 있다. 따라서 멕시코 횡단열차는 임시 방편에 그칠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멕시코 내부에서도 CIIT는 ‘장밋빛 미래’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회랑이 지나는 테우안테펙 지협은 다수의 원주민 공동체가 자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환경 단체들은 열대우림 파괴, 멸종위기종 서식지 단절, 산업 용수 수요 급증에 따른 물 부족, 연계 석유·가스 인프라의 유출 위험을 지적한다. 인권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22년 12월부터 2025년 5월 사이 멕시코 전역의 토지·환경 활동가에 대한 협박, 폭력, 체포 등 갈등의 67.7%가 테우안테펙 지협에서 발생했으며, 모두 이 사업과 연관됐다. 여기에 2025년 12월 28일 승객 241명을 태운 열차가 Z노선에서 탈선해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안전성 의문까지 더해졌다.
제조업 시장의 구조적 변화 역시 육로 운송 수요의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글로벌 제조업 업체들은 관세 및 무역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소비 시장 내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생산을 내재화하는 추세다. 이처럼 대륙 간 해상 이동을 거치지 않고 생산과 소비가 완결되는 구조가 확산되면, 장기적으로 국경을 넘는 대규모 물류 수요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 이는 대체 경로로 구축된 철도 노선의 장기적 경제성 확보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세기 전 파나마 운하에 밀려 사라졌던 테우안테펙의 철길은, 기후위기를 타고 다시 세계 무역 지도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 부활이 안정적 대안으로 안착할지, 운하의 일시적 위기에 기댄 ‘제한적 우회로’에 머물지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환적의 비효율, 절반에 못 미치는 물동량, 환경·인권 갈등, 탈선이 남긴 안전 과제까지, 멕시코의 ‘마른 운하’가 넘어야 할 시험대는 여전히 길고 험난하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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