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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자동차업체들이 1조 싸들고 '노스볼트'로 달려간 까닭

단일 라운드 8.9억 유로 지분투자…전기차 사업재편에 필수인 배터리 고립 상황 타개책

2019.07.18(Thu) 11:07:22

[비즈한국] 지난 6월 2억 3000만 달러의 시리즈 C 투자 유치로 새로이 유니콘에 등극한 프랑스의 사진 스타트업 ‘미로’를 이 코너에서 소개했다(관련기사 [유럽스타트업열전] 우버, 에어비앤비가 반한 사진 스타트업 '미로'). 아시다시피 유니콘은 기업 가치 10억 달러, 즉 빌리언(billion)을 넘은 스타트업을 칭하는 용어다. 현재 환율 기준 미화 10억 달러는 9억 유로, 1조 2000억 원가량이니 대충 1조 가치가 넘는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고 한다, 정도로 기억하면 될 듯하다. 

 

혹 스타트업의 가치 평가와 투자 방식에 대해 익숙지 않은 독자들이 있을까 하여 설명하자면 신생 기업의 가치 평가는 여러 번의 라운드(투자 회차)를 거치며 지분 매각을 통해 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20% 지분 취득의 대가로 2억 달러를 유치했다면, 투자자들은 그 스타트업의 가치를 10억 달러로 평가하고 있다는 셈이다. 

 

즉 새로이 유니콘에 등극한 스타트업이 있다고 해서 그 시점(라운드)에서의 투자 금액이 1조 원대라는 얘기는 아니다. 신규로 유입되는 자금이 1000만 달러에 불과(?)하더라도 이에 대한 지분 매각이 1%에 그친다면, 해당 스타트업은 10억 달러의 가치 평가 즉 유니콘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물론 스타트업의 투자 라운드가 지분 1%에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가 유럽 스타트업의 단일 라운드로는 사상 두 번째 규모인 8억 9000만 유로의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노스볼트 홈페이지


‘미로’가 유니콘으로 등극하기 바로 며칠 전에는,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가 유럽 스타트업의 단일 라운드로는 사상 두 번째 규모인 8억 9000만 유로의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 사상 최대는 2017년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주도한, 스위스의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로이반 사이언스(Roivan Sciences)에의 11억 달러 투자 라운드였다(과연 큰 손이다!). 

 

한 번에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유치한 것이니 유니콘이고 뭐고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노스볼트에의 이번 투자는 그동안 ‘유럽스타트업열전’에 소개해 온 유니콘 스토리들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노스볼트는 테슬라에서 일하던 두 명의 스웨덴인이 유럽에도 ‘기가팩토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뛰쳐나와 2016년 10월에 창업한 기업이다. 이번의 대규모 투자는 벤처 캐피탈이 아니라 폭스바겐을 비롯한 독일의 자동차 업체들이 주도했다. 

 

전기자동차 산업 동향에 관심이 있다면 테슬라의 ‘기가팩토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충전된 전기를 동력으로 삼아 달리는 전기차의 경쟁력에 있어, 배터리의 성능과 가격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배터리의 생산과 조립 과정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 수년간의 고민 끝에 미국 서부 네바다의 사막 한 가운데에 거대한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설비용의 일부(약 16억 달러)를 분담하는 조건으로 일본의 파나소닉이 이에 동참, 2016년에 부분적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테슬라는 ‘모델3’ 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기가팩토리로도 턱없이 부족한 배터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두 번째 기가팩토리를 뉴욕주에 건설했고, 2018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기가팩토리3 건설에 착수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테슬라는 유럽에도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노스볼트의 아이디어 자체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고, 같은 전략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경쟁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더구나 폭스바겐 등이 투자한 1조 원의 자금은 정작 이들의 원대한 야망을 실현하기에 충분한 금액도 아니다. 노스볼트는 16GWh 생산 능력의 1차공장 건설을 위해 16억 유로, 약 2조 100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서다. 

 

노스볼트의 아이디어 자체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고, 같은 전략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경쟁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노스볼트의 배터리 셀(위)과 배터리 시스템. 사진=노스볼트 홈페이지


도요타와 함께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업체로서 수위를 다투는 폭스바겐은 굳이 왜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자체 기술과 인력이 아니라 창업한 지 3년밖에 안 되는 신생업체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걸까? 답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장과 이를 쫓아갈 수 있는 실행력이다. 

 

자동차 문화의 발상지로서 지난 100여 년간 관련 기술 개발을 주도해 왔고 여전히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도 한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은, 최근 ‘디젤게이트’를 비롯한 일련의 판단 미스로 인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새로운 시장에서 좀처럼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선 환경 문제에 민감한 유럽 소비자들의 친환경 자동차 수요는 오히려 타 지역을 압도하고 있어, 이대로는 세계 자동차 산업 밸류체인의 주도권은커녕 안방시장마저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자동차 관련 산업이 전체 일자리의 6%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에서 이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 중에서도 핵심인 배터리는 한국의 삼성SDI·LG화학·SK이노베이션과 중국의 CATL, 일본의 파나소닉 등 한·중·일 3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EU의 점유율이 불과 1%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의 전기차들이 아시아 기업들이 생산하는 배터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다. 

 

유럽의 배터리 업체들의 역사는 실상 배터리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한데도 불구하고,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배터리 업체인 바르타의 매출이 불과 3억 유로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현재의 상황은 초라하기만 하다. 참고로 삼성SDI의 2018년 전지사업 매출은 7조 원에 달했다. 유럽 배터리의 양강이라 할 프랑스의 사프트는 2016년 석유 슈퍼메이저 토탈에 1조 5000억 원에 인수됐고, 모기업의 공격적인 자금 투자에 힘입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관련기사 [유럽스타트업열전] 석유 기업들이 앞다퉈 '호랑이' 키우는 까닭).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를 위시한 각국 정부와 유럽 연합 및 대기업들은 앞 다퉈 지원 및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사프트, 독일의 지멘스를 비롯해 기계장비 업체 만츠, 벨기에의 화학업체 솔베이 등이 연합해 고밀도 리튬이온, 전고체 배터리 등을 개발하기 위한 연합체를 구성했다.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유럽 내에 최소 10개에서 20개의 기가팩토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설비투자를 독려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유럽투자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EIB)이 노스볼트에도 5200만 유로의 자금 대출을 승인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전기차 및 모빌리티 시장에서, 그 중에서도 대규모 시설 투자와 3~5년의 건설 기간을 요하는 배터리 사업에서 한번 뒤쳐진 이상, 뒤늦은 자금 투입만으로 이를 만회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구나 LG화학은 폴란드,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 중국의 CATL은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각각 수조 원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름 아닌 테슬라 출신의 창업자들이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해 온 노스볼트는 유럽의 정부와 투자자, 자동차 기업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 8GWh의 생산 용량을 갖춘 공장 2기를 스웨덴 북부의 셸레프테오(Skelleftea)에 건설하기 위해 추가 자금 유치에 착수했고, 투자처에 목말라 있던 폭스바겐과 BMW 등이 재빨리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사진=노스볼트 홈페이지


노스볼트는 창업 직후인 2017년에 스위스·스웨덴의 세계적인 전기 장비 제조업체인 ABB로부터 1000만 유로, 2018년에 독일의 지멘스로부터 다시 1000만 유로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기 장비 및 공장 자동화의 리더들답게 노스볼트와 배터리 사업의 중요성을 다른 유럽의 대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간파한 셈이랄까. 폭스바겐그룹 계열사이자 스웨덴의 대형트럭 생산업체인 스카니아도 1000만 유로를 투자했다. 

 

이 정도 자금으로도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노스볼트는 스톡홀름 외곽의 배스터뤄스(Vasteras, 1947년 스웨덴의 세계적인 SPA 즉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이 창업한 곳)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EIB 대출금 등을 포함해 그동안 1억 유로 이상을 투입, 기술 개발과 테스트를 완료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 이제 각각 8GWh의 생산 용량을 갖춘 공장 2기를 스웨덴 북부의 셸레프테오(Skelleftea)에 건설하기 위해 추가 자금 유치에 착수했고, 투자처에 목말라 있던 폭스바겐과 BMW 등이 재빨리 기회를 잡은 것이다. 

 

디젤게이트의 핵심인 폭스바겐의 경우 그룹 전체의 전략을 전기자동차 위주로 재편하고, 향후 10년간 70여 개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해 총 2200만 대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23년까지 300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며, 노스볼트에의 투자는 그 일환인 셈이다. 폭스바겐은 이번 지분 투자와는 별도로 독일의 작센 지역에 또 다른 기가팩토리 건설을 위해 노스볼트와 합작 법인(JV)을 세울 계획 또한 갖고 있다. 

 

이제 폭스바겐이 왜 자체 R&D(연구·개발) 투자가 아닌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도 어느 정도 나온 것 같다. 폭스바겐은 이미 R&D에만 연간 140억 유로(18조 원)를 투자하고 있지만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해 왔다. 이는 단일 기업의 R&D 투자로 단연 세계 1위였으나 2017년 이후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계열사인 아우디가 야심차게 준비한 ‘e-트론’ 출시가 예정보다 늦춰지고 있는 것 또한 배터리 수급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상황이 다급한데 어제까지 시도한 방법을 답습하는 것으로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체질개선이 절박한 80년 역사의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은 스타트업에 투자함으로서 난관을 타개해 보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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