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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온 마을이 마법처럼 변했다! 동화 같은 독일의 핼러윈

부모들까지 가세한 학교 앞 풍경…한국 유치원 분장 그대로 보냈다가 미안한 마음만

2019.11.14(Thu) 11:02:10

[비즈한국] “이번이 마지막 핼러윈 데이잖아.” 요새 아이는 툭하면 ‘마지막’을 내세워 설득에 나선다. 내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을 제대로 간파한 설득의 기술이다. 

 

10월 31일,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아이는 당일에 친구와 함께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핼러윈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과자를 안 주면 장난을 칠 거야’라는 뜻의 ‘트릭 오어 트리트’를 외치고 사탕 등을 받아오는 것인데, 지난 2년간 별 관심 없더니 올해 유난히 적극적이다.

 

핼러윈 데이에 ‘트릭 오어 트릿’ 퍼포먼스를 즐기는 위해 코스튬을 하고 이웃집을 방문한 아이들. 사진=박진영 제공


몇 번 핼러윈 데이를 겪으며 익숙해진 탓이리라. 한국에서도 유치원에서 코스튬 퍼포먼스를 하고 호박 모양 바구니에 사탕 등을 담아주는 행사를 경험해보긴 했지만, 학교 전체가 종일 떠들썩하고 거리 곳곳에 코스튬을 한 어린이와 어른들이 떼 지어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광경이 흔한 이곳의 핼러윈 데이는 그야말로 모두의 축제다.

 

독일살이 첫해, 학교에서 핼러윈 데이 코스튬 공지가 왔을 때만 해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영국에서 시작됐다지만, 지금은 미국의 축제이고 독일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니까. 당일 아침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 놀라움은 시작됐다. TV에서나 보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낌없이 분장·변장한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서는 광경은 ‘여기가 동화 속인가’ 싶었다.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입던, 허술한 아이언맨 코스튬 의상을 달랑 입혀 보낸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날 오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은 더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많은 부모들, 심지어 담임들과 교장선생님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핼러윈 코스튬을 하고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미니언즈로 변신한 교장 선생님, 카우보이로 분한 담임 선생님, 마녀 복장의 같은 반 학부모…. 그 속에서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엄마들이 오히려 더 튀어 보였다. 

 

보눙(아파트) 현관에 누군가 붙여놓은 핼러윈 관련 안내문. “누군가 벨을 누를 수 있으니 무서워하지 말고 즐기세요”라며 사탕 등을 준비해둘 것을 당부했다. 아이의 호박 바구니는 몇 집을 도는 동안 사탕과 과자 등으로 가득 찼다. ​사진=박진영 제공​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독일의 핼러윈 풍경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며 더 대중화된 축제로 발전한 모습이었다. 해마다 ‘트릭 오어 트리트’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길거리에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수가 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첫해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아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머쓱한 상황도 겪었지만, 올해는 일찌감치 아이들을 위한 ‘트리트’를 준비해두고 문 앞에도 ‘우리 집은 핼러윈 데이를 즐기는 집’이라는 일종의 표시로 핼러윈 호박 사진 하나 붙여두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사실 길가에 위치하지 않고 중정을 끼고 안으로 들어와야 입구가 있는 우리 집의 경우, 선뜻 아이들이 들어오기 쉽지 않은 구조지만 핼러윈 데이 며칠 전 현관 입구에 누군가 붙여놓은 안내문을 보니 이번엔 제법 아이들이 오려나 싶었다. 안내문에서는 ‘10월 31일 누군가 벨을 누를 수 있으니 두려워 말고 즐기세요’라며 달콤한 것들을 준비해둘 것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 뒤엔 우리 집 아이가 ‘출격’할 준비를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같은 반 친구를 ‘섭외’한 뒤 각각 해리포터와 조커로 분한 복장을 갖추고 만난 시각이 저녁 6시 반. 그 사이 우리 동네는 이미 핼러윈 코스튬을 한 몇 팀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시끌벅적 휩쓸고 지나갔다. 둘 다 ‘트릭 오어 트리트’ 퍼포먼스는 처음인지라 아이들은 살짝 긴장하는 듯했지만 여기저기 벨을 누를 때마다 대체로 환대해주는 이웃들 덕분에 이내 즐거움을 되찾았다.

 

10월이 되면서 마트나 백화점 등은 핼러윈 데이 장식으로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사진=박진영 제공​


우리 보눙(아파트)을 포함해 6층짜리 건물 3개 동을 다 돌고 온 아이들은 캔디, 초콜릿, 과자 등으로 넘칠 지경인 호박 바구니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사이좋게(?) 개수를 확인한 후 똑같이 나누는 것으로 그날의 이벤트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아이는 설렘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 한 집 한 집 방문했을 때의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어떤 집은 아예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마음껏 가져가라고 했지만, 원래 하나씩만 가져오는 게 예의이니 두 개만 가져왔다는 둥, 친구의 조커 분장을 보고 진짜 깜짝 놀란 이웃도 있었다는 둥, 마녀 복장을 하고 나온 이웃 아줌마 때문에 놀랐다는 둥, 분명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벨을 눌러도 아무런 답이 없는 집도 있었다는 둥…. 그리곤 이 경험이 마지막인 게 아쉬웠는지 이렇게 물었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걸 안 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한국의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어떤 연예인이 제대로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에 가서 역시 제대로 코스튬을 하고 나타난 수많은 사람들과 핼러윈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몇 년 더 지나면 동네에서 ‘트릭 오어 트리트’를 외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으려나. 그와 동시에 드는 생각, 그러기엔 한국은 ‘안전 문제’로 낯선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니 쉽지 않겠구나 싶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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