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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익명의 집단이 범한 사상 최악의 범죄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일부 범죄자 행각 아닌 사회 전체가 가해자…주동자 잡혔지만 범죄는 '현재진행형'

2022.05.26(Thu) 12:27:24

[비즈한국] ‘N번방’ ‘박사방’ ‘갓갓’ ‘박사’ ‘노예’ 등의 단어가 뉴스란을 어지러이 오가던 때, 여동생과 남동생을 고루 둔 나는 여동생에게 먼저 말했다. 카톡 프사에 얼굴 나온 사진은 다 내려.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를 친구나 직장동료 등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지인 능욕’이란 디지털 성범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동생에겐 섣불리 ‘N번방’ 사태에 대해 말을 꺼내지 못했다. 평소 대화해온 동생은 그럴 리 없었으나 호기심이란 외피를 두르고 ‘관전’하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는 걸 알았으니까. 동생에게도 ‘혹시’라는 의심을 보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무섭고도 무서웠다.

 

한겨레 김완 기자와 함께 심층 보도에 나선 오연서 기자. ‘사이버 지옥’은 경찰보다 이 사건에 초기부터 주목한 저널리스트들의 목소리를 주로 담아냈다. 사진=넷플리스 제공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사이버 지옥)는 2019~2020년 언론에 알려지며 전 국민의 공분을 산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N번방 사건)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다. 미성년자를 포함해 수십 명의 피해자들을 협박해 음란 동영상을 찍게 한 뒤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유포시킨, 이게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인지 경악하게 만든 그 사건. 주요 범인들이 구속되고 형량까지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 대부분 지난해 하반기. 빠르게 흥분하지만 잊는 것도 빠른 대한민국에서 ‘N번방 사건’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 다큐멘터리는 이 사건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에만 공분했던 대한민국에 차근차근 이 사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곱씹고 방지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제보를 받고 기사를 썼던 한겨레 김완 기자조차도 이 사건이 이토록 큰 사건이 되리라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보도 이후 신상이 털렸고, 이 사건을 심층 보도해야 함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사진=넷플리스 제공

 

누구나 ‘N번방 사건’을 알고는 있었으나 누구도 제대로 알기 싫어 오히려 ‘N번방 사건’은 빙산의 일각처럼만 아는 사람이 많았다.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완 기자의 말처럼, 오래된 문제였던 아동·청소년 음란물과 같은 문제는 언론은 물론이요, 이런 유의 사건을 계속적으로 접하던 대중에게도 관성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니까. 한겨레에서 2019년 11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에 대해 심층·연속 보도했음에도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도 ‘흔하디 흔한’ 성범죄라 여긴 시선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이버 지옥’은 극영화 대신 다큐멘터리 장르를 선택한 이유를 확실히 보여준다. ‘N번방 사건’의 실태와 이를 운영하던 범인들을 체포하는 과정을 성실하게 복기하고, 이 과정에 참여한 주요 저널리스트들을 인터뷰하며 이 사건이 품은 무게를 들려준다. 한겨레 김완, 오연서 기자, SBS 정재원 PD, JTBC 김광일 PD와 장은조 작가, 기자를 꿈꾸던 평범한 대학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 그리고 경찰 관계자와 법조인 등 24명의 인터뷰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오해되거나 피로감으로 외면했던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데 도움을 준다.

 

 

2019년부터 ‘N번방 사건’을 취재, 보도한 ‘추적단 불꽃’. 첫 보도부터 필명을 쓴 대학생 ‘불’과 ‘단’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은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함께 일부 참가자를 붙잡는 데 성공한다. 사진=넷플리스 제공

 

‘사이버 지옥’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N번방, 박사방 같은 성착취방 참가자들의 수가 일부 언론의 표현처럼 ‘일부 비뚤어진 사람들의 일탈’ 정도가 아니고 우리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위협적으로 많은 숫자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대표적으로 보도에 나선 저널리스트들의 신상을 털고, 온라인에서 위협을 가하고, 심지어 취재를 원하는 저널리스트 앞에 주요 범죄자인 ‘박사’ 조주빈은 대범하게 ‘나를 찾습니까’라며 나서기도 한다. 보도 이후에는 ‘한겨레 피해자’ ‘JTBC 피해자’라며 새로운 피해자의 영상을 유포한다. 성착취방 안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털리고,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학대를 가하는 것을 보면서 그 누구도 소극적인 저지조차 없는,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범죄를 부추기는, 자정작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은 건 나뿐일까. 실시간으로 방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가 천 단위, 만 단위로 늘어나는 모습은 재현임에도 끔찍했다.

 

피해자를 출연시키거나 직접 인터뷰를 담는 것을 일절 배제한 ‘사이버 지옥’. 모바일 채팅 화면으로 재현되고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사건 전개 방식이 한층 집중을 돕는다. 사진=넷플리스 제공

 

‘사이버 지옥’을 보며 새록새록 끔찍함을 느끼게 되는 건, 이 사건이 일부 범죄자들의 행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왜 피해자들이 협박을 당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 영상이 유포되었을 때 얼마나 나를 비난할지 너무나도 잘 예측되기 때문에 그 공포로 협박에 응하게 되는 것’이라는 답이 나오는 것처럼,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부터 이 폭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는 점, 시청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없으면 제작하고 유포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 다큐멘터리는 알려준다. 디지털 성범죄가 집단적인 협업 형태의 범죄라는 말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달까. 

 

SNS와 온라인 UI를 활용한 영화 ‘서치’처럼 모바일 채팅 화면을 통해 사건의 전개를 보여주고, 피해자의 직접 인터뷰나 극적인 재연 방식은 일절 배제한 연출 방식도 흥미롭다. 다큐멘터리지만 한 편의 스릴러 추적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이 스릴러 추적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의 끝은 시원한 ‘사이다’가 아니다. ‘현재 N번방 영상은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여전히 거래가 되고 있다’라는 다큐 말미의 자막은, 이 다큐멘터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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