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배달앱 수수료에 대한 가맹점주 부담이 커지면서 치킨 업계에도 이중가격제 도입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중가격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던 bhc도 결국 이달부터 배달 메뉴 가격 조정에 들어갔다. bhc는 본사 차원에서 가격을 일괄 인상하는 대신 가맹점주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도록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설명하는데, 가맹점주 사이에서는 가격 인상 부담을 가맹점에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 매출 상위 점포는 오히려 가격 못 올려
치킨 프랜차이즈 bhc가 이달부터 배달앱 전용 가격제(이중가격제)를 도입했다. 배달앱 수수료 부담으로 인한 가맹점주의 수익 하락을 우려해 배달 메뉴는 매장 판매가와 다른 가격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배달앱 전용 가격을 가맹점주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배달앱 전용 가격제를 도입했던 프랜차이즈의 상당수는 배달 메뉴 가격의 인상 폭을 본사에서 지정했다. bhc는 배달 메뉴의 가격 선택권이 가맹점주에게 있는 만큼 가맹점에 따라 인상, 인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bhc 관계자는 “배달앱 수수료 등에 대한 점주 부담이 커지면서 매장을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에 배달앱 전용 가격제를 도입해 인상, 인하를 가맹점 여건에 맞게 조정하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배달앱에서 bhc 판매가를 살펴본 결과, 배달 메뉴 가격을 매장가보다 2000~3000원 인상한 가맹점이 눈에 띄었다. 인기 메뉴인 ‘뿌링클 콤보’는 권장 소비자가가 2만 3000원이지만 상당수 가맹점이 2만 5000원~2만 6000원으로 판매가를 변경했다. 외식업계에서는 전체 bhc 가맹점의 30%가량이 이달부터 배달앱 판매가를 변경한 것으로 추정한다.

bhc는 가맹점 수익 보존을 위해 가격 책정을 자율에 맡겼다는 하지만, 이 정책에 부담을 느끼는 가맹점주도 적지 않다. 인근 가맹점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 고객을 뺏길까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는 가맹점주도 상당수다. 특히 배달 매출 상위 점포가 다수 모여 있는 서울 강남권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대부분의 가맹점이 가격을 인상하지 못한 채 수익성 하락을 감수하는 분위기다.
한 가맹점주는 “수익을 생각하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근처 다른 가맹점이 가격을 올리면 같이 올리겠지만 혼자서만 가격을 인상하려니 주문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차라리 전체적으로 인상됐다면 나았을 것 같다”며 “결국 가맹점끼리 눈치싸움이다. 가격 인상을 계속해서 고민만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bhc는 “본사 입장에서는 권장 소비자 가격 준수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너무 힘든 가맹점도 있고 반대로 전략적으로 가격을 인하하고 싶은 가맹점도 있다”며 “가맹점주의 여러 의견이 있고, 현재 시행 초기인 만큼 상황을 지켜보는 단계”라고 전했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불편감이 커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가맹점마다 판매가가 다를 수 있다 보니 매번 가격을 비교하며 주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bhc를 시작으로 치킨 업계 전반에 이러한 가격 정책이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기존의 가격 정책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촌치킨 관계자는 “가맹점주 사이에서 배달가격에 대한 의견은 없다. 본사에서도 도입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BBQ도 배달 메뉴 가격을 자율에 맡기기보다는 본사에서 소비자가를 권장하는 기존의 가격 정책을 유지할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이중가격제 확산 “배달앱 수수료 수익만 늘리는 꼴”
외식업계는 배달앱 수수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부터 배달앱 전용 가격제를 속속 도입하는 분위기다.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KFC, 파파이스 등의 패스트푸드 전문점 대부분은 배달앱 가격이 매장가보다 비싸다.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이디야커피 등 커피 업계도 배달앱 가격을 인상했고, 배스킨라빈스, 써브웨이, 본죽, 한솥도시락 등도 배달 메뉴 가격에 차등을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배달앱 전용 가격제를 도입하는 것이 소비자 부담을 가중하고, 배달앱 수익만 늘리는 일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마땅한 대응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맹점 수익 보존을 위해 그만큼 배달 메뉴 가격을 올리면 배달 앱이 가져가는 수수료액만 늘어나는 셈이다.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배달 앱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달앱 전용 가격제를 시행하지 않는 브랜드는 자사앱을 활성화해 가맹점 수익을 보존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배달앱과 비교해 자사앱 주문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치킨 업계에서 자사앱 이용률이 높다고 손꼽히는 교촌치킨도 자사앱 주문 비중은 전체 주문의 10%가량에 머문다.
정부가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를 도입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10대 공약 중 하나로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를 제시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통한 배달앱 상생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만약 협상이 불발될 경우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입법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입법 논의가 이뤄질 경우 자영업자의 실질적 부담을 줄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해 배달앱 상생협의체를 통해 상생안이 도출됐지만, 플랫폼 업체가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배달비를 올려 오히려 자영업자의 상황이 악화됐다. 수수료만 제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자영업자의 실질적 고통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소비자가 편하게 음식을 배달 받는 대가를 모두 자영업자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윤리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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