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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 신고해도 시정명령뿐" 어린이집 비리에 교사들 침묵하는 속사정

정부 점검일정 사전 고지, 제대로 처벌되는 경우 거의 없어 "신고했다 되레 신원 알려져 고생"

2023.01.05(Thu) 11:31:22

[비즈한국] 어린이집의 식자재나 보육 문제 등이 터질 때마다 비난의 화살은 교사들에게 먼저 쏠린다. 내부 상황을 누구보다 교사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억울하다. 알면서도 신고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 한숨을 내쉰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원장의 부정행위를 알고도 신고할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어린이집 위생·보육 비리, 알면서도 차마 신고할 용기 못내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교사였던 김 아무개 씨는 얼마 전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양심’ 때문이다. 김 씨는 “어린이집 원장의 부당한 행동을 자주 목격했다. 특히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장난질을 하는 걸 보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근무한 어린이집은 먹거리 관리가 엉망이었다. 그는 “아이들 간식으로 떡이 제공되는 날이면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떡을 해동해준다. 이미 몇 번씩 냉동과 해동을 반복했는데, 도대체 언제 구입했는지도 알 수 없다”며 “원장이 식자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음식을 여러 번 재사용했다. 시에서 제공되는 과일도 한두 개만 아이들이 먹도록 하고 나머지는 원장이 집으로 가져갔다”고 털어놨다. 

 

어린이집에서 제공되는 식사와 간식은 학부모에게 매일 사진으로 전달되지만, 김 씨는 사진만으로는 학부모들이 식자재 문제를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으로만 보니 음식이 상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지 않나. 상한 달걀을 찍어 올리기도 하고, 사진만 찍은 뒤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고 다시 냉장고에 넣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맛이 변질된 음식을 원생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김 씨는 고민이 깊어졌다. 구청에 원장을 신고할 생각도 했지만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김 씨는 “지역 내 어린이집 원장들끼리 네트워크가 끈끈하다. 만일 내가 신고한 사실을 원장이 알게 되면 지역 내 다른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신원을 공개해 취업할 수 없게 한다”며 “사는 지역을 아예 옮기거나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교사들이 먼저 나서서 신고하긴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정부의 어린이집 관리·감독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가 정기점검 전 원에 방문 일정을 미리 공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뿐인 어린이집 관리·감독, 신고에 의존하고 있지만 

 

정부는 1년에 두 차례 어린이집의 정기점검을 실시하며 원을 관리·감독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정기점검을 통해 어린이집의 허술한 관리 실태가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정기점검이 형식적 절차에 그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정기점검은 지자체의 현장점검으로 이뤄진다. 지자체의 관리감독자가 어린이집을 방문해 식자재나 위생, 안전 상태 등을 살피는데, 점검 일정을 사전에 어린이집에 공지한다. 

 

한 교사는 “구청에서는 점검을 나오기 전에 매번 일정을 알려준다. 그럼 점검일 전에 상한 식자재를 버리고 냉장고 정리를 한다”며 “불시에 찾아오면 어린이집에서도 늘 긴장하고 관리를 할 텐데, 사전에 날짜를 알려주고 와서 점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점검일정을 사전에 통보하는 이유에 대해 점검의 목적이 ‘단속’보다 ‘예방’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점검은 예방 및 계도 차원인 만큼 미리 일정을 알리고 방문한다. 대신 어린이집과 관련해 민원이 들어오면 그때는 불시 점검을 나간다. 이를 통해 현장점검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결국 어린이집의 부정행위 적발을 ‘신고’에만 의존하는 상황이지만 교사들은 피해를 입을까 하는 우려에 먼저 나서길 꺼려한다. 어렵사리 용기 내 신고를 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는 교사들의 증언도 상당수다. 

 

어린이집 교사 박 아무개 씨는 “구청에 어린이집 관련 민원을 넣었지만 자진 삭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구청에서는 어린이집 관련 민원을 받으면 해결하기보다는 덮어버리기에 급급하다”며 “화가 나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고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구청 등에서 합동 단속을 나왔다. 냉장고에 보관된 음식에 곰팡이가 핀 것이나 직원 아닌 사람이 원생들을 보육하는 것 등이 모두 적발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원장이 강도 높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는 “식자재 관리나 보육 문제 등은 모두 무마됐고, 보조금 횡령에 대해서만 처벌을 받았다”면서 “단속에서 적발되더라도 보조금 횡령이 아니면 처벌이 안 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보조금 횡령은 일반 교사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보니, 결국 교사들이 식자재나 보육 관리 등에 대해 신고한 내용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집에서 식자재 검사 등을 통해 불량 상황이 적발될 경우 내리는 행정처분은 시정 명령에 그친다. 3년 이내 동일사안으로 재적발 시 운영 정지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사들 사이에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근무 태도의 기본이라는 말도 나온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원장이 식자재를 모두 수입산으로 사용하면서 식단표에는 국산이라고 허위 표기를 한다”며 “신고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 뻔하다 보니 모른척하게 된다. 아이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 교사 역시 “원장이 구청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관리 직원들과 사이가 돈독한 편이다. 그래서 신고해도 대충 무마되기 일쑤”라며 “원장을 신고했다가 구청에서 되레 원장에게 신고자 신원을 알려줘 고생한 지인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씁쓸해한다. 앞서의 교사 박 씨는 “신고가 들어가 단속이 나오면 원장이 제일 먼저 교사를 의심한다. 어린이집 내부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교사뿐이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단속 후 근무 분위기가 살벌하다. 사사건건 화를 내고 인신공격까지 한다. 신고자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교사들도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나. 그런 것을 감안하고도 신고를 하는 것인데, 제대로 된 처벌이 없으니 기운이 빠진다. 교사들이 점점 더 신고를 하지 않게 되는 이유”라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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