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대규모 송전망 건설 계획이 거센 사회적 저항에 직면했다. 전국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주민은 4일 서울 광화문에 모여 “지역은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가 아니다”라며 용인 반도체 산단 및 송전선로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들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지역과 농어촌의 일방적인 희생 강요가 ‘제2의 밀양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 경고하며, 분산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과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용인 반도체 국가 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전국행동)’이 3월 4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용인 산단·송전선로 전면 재검토와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촉구를 위한 전국행동 3.4 궐기 대회’를 진행했다. 이날 집회는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전국행동 집행위원회, 지역주민, 정치인 발언 △시민사회 공동선언 △상여 및 송전탑 철거 퍼포먼스와 삭발식 △청와대 행진 등이 이어졌다.
전국행동은 용인 반도체 산단 조성과 송전선로 건설 등 국책 사업으로 인한 피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직된 시민사회 연대 기구다. 경기·충남·대전·전남·광주·전북 등 전국 100여 개 지역 및 기후환경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집회에서 전국행동은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과 송전선로 건설 전면 재검토 △재검토를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송전선로 최소화를 위한 분산에너지 정책 마련 △전력망 불평등 해소를 위한 거버넌스와 제도 개편 등을 요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인 김희상 전국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국민주권정부에서 농민 주권은 없는 것이냐”며 “농촌을 희생해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방식을 멈추고 송전탑 계획을 철회하라”고 발언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양대 축으로 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일 입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생산 기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집적화 전략은 규모에 걸맞은 전례 없는 전력 수급 문제를 불러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크게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용인 국가 산업단지’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일반 산업단지’로 나뉜다. 이들 단지가 완전 가동되는 2050년경에는 총 10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현재 수도권 전체 최대 전력 수요의 약 20%를 차지하는 막대한 규모다. 원자력발전소 약 10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만큼 전력망 구축이 난관이다.
특히 2030년부터 진행 예정인 국가 산단 2단계 전력 공급 계획에서는 호남권(재생에너지) 및 동해안(원전·화력)에서 345kV 초고압 송전선로 및 초고압 직류송전선로(HVDC)를 통해 대규모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송전망 건설은 기술적 한계와 사회적 저항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수도권 전압 안정도는 이미 불안정한 상태로 장거리 송전 선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계통 고장 시 대규모 정전 위험이 커진다. 전력거래소는 전압 안정도 우려로 인해 실제 송전 설비 용량의 일부만을 운용하고 있어, 설비를 증설하더라도 확충에 따른 효율이 낮다.
시민사회와 지역 주민은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이 에너지 지산지소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지방은 전력을 생산하고자 석탄발전소, 핵발전소, 초고압 송전탑이라는 위험 시설을 떠안아야 하는 반면, 경제적 이익과 일자리는 수도권과 대기업이 독점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지방을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로 전락시켜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고 국토 균형 발전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경희 송전탑건설백지화전북대책위원회 대표는 집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북 타운홀 미팅에서 생산된 전기를 외지로 보내는 것은 원시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며 “이제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 한국전력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주민은 송전선로 건설의 일방적 추진으로 인해 제2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 충남 공주시 주민들은 ‘공주시 송전선로 백지화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한전의 일방적인 입지 선정 방식에 저항하고 있다. 이들은 입지선정위원회가 송전 선로의 필요성 자체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사업의 노선을 정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집회에 참가한 공주시 주민 임경령 씨는 “절박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 궐기 대회에 참석했다”며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던 밀양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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