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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리더십과 팀워크④ 존경 받는 여성멘토가 되고 싶다는 '순진한 욕망'

TMI 가득한 조언은 거부감 유발…적절히 입은 다물고, 귀 기울이기

2023.12.07(Thu) 16:08:06

[비즈한국] 스무 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승진경로를 착실히 밟고 올라간 K는 회사에서 2번째로 그 자리에 앉은 여성임원이었다. 첫 번째 임원이었던 이는 직접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유리천장을 깨고 올라간 최초의 여성임원으로서 이름 석 자만 간신히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입사했던 2000년대 중반에만 해도 수많은 팀장 중 하나였던 K가 끝까지 회사에 살아남아 임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굴곡과 고난, 암투와 시기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일과 가정 모두에 시간과 열정을 쏟으면서 임원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며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녀를 본받고 싶은 여성멘토나 롤 모델로 꼽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글쎄, 어떤 자리나 직위, 권력과 부, 명예를 모두 포함한다 할지라도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멘토란 단순히 지식이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윗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성장을 돕는 관계망을 말한다. 사진=생성형 AI

 

하지만, 한 시간 동안 나누는 대화란 ‘ABC 주스의 효능’​과 같은 잡다한 건강정보, 최근 골프 스코어, 사내 직원들의 가십, 자식의 학업성취와 가족들의 직업과 배경, 본인의 인생 역정과 성공담같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과도한 TMI(Too Much Information)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언제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여성이 일하기 좋아졌는지(그러니 오래도록 애사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며), 잘 꾸미고 다니는 것도 중요한 성공전략이기 때문에 외모나 화장, 옷차림에 대한 별로 고맙지 않은 자기 나름의 조언을 하는 식으로 끝맺곤 했다.

 

K의 화법은 20대 때 어머니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잔소리, 혹은 사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이 든 남성 임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 임원에게 동어 반복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몇 배는 더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복도 끝에서 K의 그림자라도 보일라치면 잽싸게 가던 길을 돌리거나, 울리지도 않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1인극을 하기도 했다. K가 나쁜 사람(혹은 상사)도 아니고, 어떤 악의나 의도를 갖고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그를 불편해하며 피해 다녔다.

 

반면에 그의 옆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이야기를 경청하는 청자는 의외로 남성 팀장들이었다. 했던 말 반복해서 계속 들으면 지겹지 않냐고 가볍게 물었던 질문에 한 팀장은 “그래도 K가 지금은 실권자잖아”라고 답했다. 그는 K를 그냥 그 직위에 오른,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줄을 댈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서 아주 단순하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아뿔싸. 회사에서 멘토를, 그것도 성차별적이지 않으면서 어디서나 당당하고 능력 있는 모습의, 닮고 싶은 여성 멘토를 찾아 헤매는 것은 마치 무지개 너머 유니콘을 쫓는 듯 순진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혼자서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 놓고, 그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 보거나 의견을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K를 아주 납작하고 단순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폄하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쯤 되면 나 역시 후배들에게, 특히 힘들게 관문을 뚫고 들어왔으나 여전히 고리타분하고 남성 중심적이며, 효율과 생산성을 따지면서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조직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마주한 동성의 후배들에게 한 줄기 샘물 같은 선배가, 존경받는 멘토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그간 후배들에게 조언을 빙자해 요청하지도 않은 과한 잔소리를, 쿨함과 깨어있는 정신을 보여주고자 오버액팅을, 시시콜콜한 일상을 드러내는 TMI를 구사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온다. K를 보면서 그와 다르고 싶었으나 조금씩 닮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를 본다. 그저 후배들이, 동료들이 언제든 뼈 때리는 의견을 뱉을 수 있도록, 그래서 외롭게 고립되지 않고 서로 도움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지탱할 수 있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도록, 적절히 입은 다물고 귀를 기울이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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