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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택 '모아'오라던 서울시, 역삼동 골목길 449명이 쪼갰다

모아타운 추진 지역서 최대 3평 '지분 공유' 도로 거래 수두룩…서울시 "허위 광고 단속 중, 유의해야"

2024.04.19(Fri) 11:23:49

[비즈한국] 서울시가 뒤늦게 모아타운 투기 세력에 칼을 빼든 가운데 관련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강남구 일대에 ‘골목길 쪼개기’ 투자가 성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역삼동 모아타운 추진 지역 중심부에 위치한 주택가 골목길 하나는 최근 지분 거래로 쪼개져 땅주인만 15명으로 파악된다. 심지어 추진 지역과 200미터 떨어진 인근 도로 11필지는 무려 449명이 지분을 나눠가졌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역삼역과 수인분당선 한티역 인근에서는 지난해 251건에 달하는 도로 지분거래가 이뤄졌다. 9년 치 거래량 합산치를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소규모 주택정비 모델이 투기 수요를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가 모아타운 투기 세력에 칼을 빼든 가운데 관련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강남구 역삼동 일대에 ‘도로 쪼개기’ 투자가 성행하고 있다.

​ 

#역삼동 주택가 11필지 소유자가 449명 

 

비즈한국 취재 결과 강남구 역삼동 774번지 일대(7만 1604㎡)와 그 근방에서 최근 수년간 도로 지분 거래가 매우 활발하게 벌어졌다. 이 구역은 2022년 하반기 신탁업체 주도 첫 번째 공모에서 탈락한 후 올해 1월 구청 공모 방식으로 재지원했다가 주민 반대와 투기 우려를 이유로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사업 선정에서 탈락한 후에도 골목길 지분 거래는 계속 이어졌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구역에 위치한 주택가 골목 한 구간(288.8㎡)은 지난 1월 원 소유주에게서 부동산컨설팅 업체에 일부 넘어간 뒤 3월 7일까지 12명에게 분할 매수됐다. 16평(53.09㎡) 남짓한 부지는 평당 2600만 원 정도에 거래됐다. 앞서 매매가는 2억 6500만 원이었는데 그 일부가 한 달 새 총 4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것이다. 현재 원 토지주 포함 총 15인이 이 골목길의 공동소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주택가의 평범한 골목길을 두고 지분 거래가 성행한 것은 모아타운 추진 지역이라 투자 수요가 몰린 것으로밖에는 보기 어렵다. 토지 공유 지분 면적이 총 90㎡(27평) 이상인 경우 온전한 조합원이 아니어도 입주권을 받을 수 있지만, 이 도로는 개인이 최대 3평에서 적게는 1평도 안 되는 땅을 구매했다. 입주권과 관계없이 현금청산을 목적으로 이뤄진 도로 지분 투자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도로여도 정비 이후 대지로 사용되면 대지에 준하는 가격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모아타운 대상지로 지정되면 규제 완화,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받아 소규모주택정비사업 방식으로 아파트를 짓고 공공 지원을 통해 지역 내 부족한 공영주차장, 공원과 같은 기반 시설을 조성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대학협력 모아주택·모아타운 프로젝트 성과공유회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제공


이 구역 인근에서도 다수의 도로 지분 거래가 파악됐다. 2호선 역삼역과 이 구역 사이에 위치한 골목길 11개 구간(4872㎡)과 구역 바로 옆 골목길 1개 구간(456.9㎡)의 소유자 수는 총 449인으로 확인된다. 2021년부터 분할 거래가 본격화되더니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불과 2~3년 새 조용하던 역삼동 골목들이 소리 없이 요동친 셈이다. 

 

한 회사가 보유하던 15필지 가운데 11필지가 2020년부터 임의경매와 재매매로 ​부동산 개발업체 등 9곳에 ​넘어갔고, 지난 3월까지 다시 지분 쪼개기를 통해 개인에게 판매됐다. 도로는 대부분 1~6평대로 쪼개져 거래되는 양상을 보였다. 공유자 1인이 소유한 평균 면적은 4.31평 수준으로 평당 가격은 약 920만 원이다. 이 도로들과 모아타운이 추진되는 구역 상단과의 최단 거리는 180m, 먼 곳도 500m 내에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사도로가 경매에 풀리면서 소액으로 강남땅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몰린 것 아니겠냐”며 “모아타운이 추진되면서 역삼2동 구역 내 건물이 평당 1억까지도 갔던 걸 고려하면 도로라고 해도 평당 1000만 원대 가격은 상당히 매력적인 매물”이라고 말했다. 

 


#작년 도로 지분 거래가 9년 치보다 많아

 

2023년은 최근 10년간 역삼동에서 도로 지분 거래가 가장 왕성하게 이뤄졌던 시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도로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역삼동 지번 700번대 도로에서 지난해에만 총 251건의 쪼개기 거래 사례가 확인됐다. 2019년까지만 해도 0~5건에 불과했던 지분 거래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과 오세훈 시장 재집권이 맞물린 시기에 늘기 시작해 △2020년 78건 △2021년 88건 △2022년 39건 △2023년 251건으로 크게 뛰었다. 올해는 벌써 30건을 기록 중이다. 증가세가 잠시 꺾였던 2022년에도 인근의 지번 600번대 도로에서 다수의 지분 쪼개기 사례가 확인됐다.

 

지하철역과 도곡동 도곡렉슬, 강남세브란스 등을 마주보는 이 근방에서 도로 지분 거래가 활발히 일어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정비사업 호재를 기대한 투기 수요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규제 완화, 민간 정비사업 부흥을 기조로 삼은 서울시의 정책 방향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적은 지분이라도 투자하면 수익을 볼 수 있고, 당장 수익이 안 나더라도 묵혀두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역삼동은 서울시 대상지 공모에서 탈락했고 서울시는 “투기가 있는 곳에는 모아타운이 시행되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못 박았다. 개발 가능성이 낮거나, 미확정 혹은 취소된 개발 계획을 확정된 것처럼 제시하며 ‘소액 땅 투자’를 현혹하는 행위에 유의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모아타운은 재개발과 달리 그 구역 전체를 전면 철거하고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다. 모아주택을 개별 시행하고 기존의 도로 배치 등을 살리기 때문에 보통은 도로가 사업 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허위 광고를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역삼동 모아타운 추진 지역 일대에 부착된 반대 문구. 사진=강은경 기자


도로 지분 보유가 위법 사항은 아니지만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주택 정비 사업의 원래 취지를 해칠 뿐만 아니라 원활한 사업 진행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지분 쪼개기 결과 조합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소유자 수가 늘면서 잡음이 일 수 있다. 일명 ‘알박기’ 형태로 무리한 청산 금액을 요구한다면 향후 조합원의 분담금 부담이 커진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합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정상적인 ​사업 추진 세력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단지를 관통하는 도로가 아닌 좁은 길들은 계획구역 안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지분과 관계된 이 같은 비정상적인 행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달 전 서울시는 투기세력 유입 차단을 위해 구청장 판단 하에 부동산 이상거래 등 투기세력 유입이 의심되거나 이전 공모에서 탈락한 사유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으면 자치구 공모에서 제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다. 주민 반대(토지등소유자 25% 이상·토지면적의 3분의 1 이상) 요건도 다시 세웠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서울 주거지가 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움직임으로 들썩인 만큼 지분 쪼개기가 곳곳에서 들끓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또 다른 모아타운 대상지인 광진구 자양4동도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사업 구역에서 500m 떨어진 3필지가 57명에게 분할 거래된 내역이 포착됐다.

 

서울시는 투기 세력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권리산정기준일을 ‘대상지 선정 결과 발표 후 고시 가능한 날’에서 ‘모아타운 공모 접수일’로 앞당기고, 분양권 ‘딱지 장사’를 막기 위해 신축 빌라를 짓는 행위를 제한하는 등 강화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도로 쪼개기 거래를 막을 뾰족한 해법은 없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사도로 거래 제한을 강제하기는 어렵다. 다만 투기 우려가 있는 구역은 대상지로 선정하지 않는다. 자치구에서는 허위 광고 단속 제도가 운영 중”이라며 “도로 지분 거래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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