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대면 금융 거래가 보편화하면서 금융업계에서 전산장애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거래가 잦고 개인 투자자의 자금 규모가 큰 증권사에서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및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오류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서도 금융권에서 다수의 전산장애 사고가 일어난 가운데, 금융당국이 감독을 강화하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분기 기준 전산장애로 민원을 가장 많이 받은 증권사는 메리츠증권이었다. 금융투자협회가 공시한 금융투자회사별 민원 현황에 따르면, 1월 1일~3월 31일 메리츠증권에 접수된 전산장애 민원은 13건이었다. 그 뒤를 신한투자증권(11건), 유안타증권(7건), iM증권(5건), 미래에셋증권(3건), SK·하나증권(2건), 토스·한국투자증권(1건) 순으로 이었다. 1분기 중 국내 60개 금융투자회사에 접수된 전산장애 민원은 총 45건이었다.
협회가 공시하는 민원은 금융사에 직접 접수된 자체 민원과, 금융감독원 등 타 기관에서 접수해 금융사에 이첩하거나 사실 조회를 요청한 대외 민원으로 구성된다. 대외 민원의 경우 기관에서 타 기관에서 직접 처리한 민원은 집계하지 않는다. 전산장애란 HTS, MTS, 홈페이지에서 발생한 오류를 의미한다.
전산장애 사고는 국내 금융권 전반에서 늘고 있지만, 피해는 증권업계에서 가장 심각하다. 최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국내 금융권 전산장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20~2025년 5월 금융권(은행·저축은행·손해보험·생명보험·카드·증권)에서 발생한 전산장애는 총 1763건이었다. 피해 금액은 약 295억 원, 장애 시간은 48만 시간에 달했다. 구체적인 발생 건수를 보면 2020년 238건, 2021년 289건, 2022년 327건, 2023년 347건, 2024년 392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 5월까지 발생한 사건만 해도 170건이었다.
업권별로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증권업계로, 2020~2025년 전산장애로 인해 발생한 피해 금액만 무려 263억 원에 달했다. 이는 업권 전체 피해 금액의 89%에 해당한다. 반면 발생 건수는 475건으로, 가장 많이 발생한 은행업계(577건)보다 적었다. 은행의 경우 발생 건수나 시간(21만 6436시간)으로 가장 많았지만 피해 금액은 약 26억 원으로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피해 규모가 큰 사건들도 증권사에서 발생했다. 2020년 키움증권에서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전산장애 사고의 피해 금액이 약 48억 원으로 산정됐다. 2021년에는 미래에셋증권에서 39억 원어치, 2022년에는 한국투자증권에서 25억 원어치의 전산장애 피해가 발생했다.
2020년 이후 전산장애로 인한 피해 금액이 가장 큰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으로, 약 66억 원을 기록했다. 발생 건수로는 NH투자증권이 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산장애 시간으로 보면 우리투자증권이 1만 6294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나머지 업권의 경우 발생 건수를 기준으로 은행은 카카오뱅크(64건), 저축은행은 중앙회(41건), 손해보험은 롯데손해보험(27건), 생명보험은 삼성생명보험(44건)에서 전산장애가 가장 많이 일어났다.
금융업계에서 전산장애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최근 경제 및 정치 불확실성의 확대로 비대면 매매가 증가하자 사고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키움증권에서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상호 관세 발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등이 있었던 지난 4월 3~4일 이틀에 걸쳐 MTS와 HTS에서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키움증권의 경우 3월에도 주식 실시간 조회 오류, 체결 조회 지연 등의 전산장애가 있었던 탓에 논란이 컸다.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로 인기를 얻은 토스증권조차 3월에 한 번, 5월에 두 번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올해 1분기 전산장애 민원 1위였던 메리츠증권은 지난 5월 6일에도 MTS·HTS에서 미국 주식의 주문 접수나 취소가 안 되는 등의 오류가 있었다. 특히 메리츠증권은 2024년 12월 19일과 지난 2월 21일에도 미국 주식 거래와 관련한 전산장애가 발생한 탓에 이용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전산장애 사고는 늘어나지만 피해 회복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3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2020~2024년 증권사 전산장애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증권사 MTS·HTS 서비스 장애로 피해를 본 투자자 중 배상을 받은 비율은 58%에 불과했다. 배상을 받은 피해자 비율은 2020년에도 79%에 그쳤는데, 이보다 줄어든 셈이다.
강민국 의원은 “금융권 전산장애 사고 급증은 결국 소비자의 잠재적 피해 위험성을 높인다”며 “금감원은 전산장애 다발 회사에 대해 IT 운영 실태 점검을 강화하고 ‘금융 IT 안전성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미흡하게 준수한 회사에는 추가 검사를 실시하거나 제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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