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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부당 특약 무효' 개정 하도급법, 하청업체 억울함 해소할까

과거 판례에선 부당 특약이 하도급법 위반해도 효력 인정…법 개정 후 부당 특약 무효 인정

2025.05.26(Mon) 14:10:16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개정 하도급법에서는 부당 행위에 대한 법적 효력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있다.

 

법은 상식에 맞아야 한다. 법의 해석이 상식과 맞지 않으면, 그 해석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법의 본질은 강제력에 있으나, 순리에 맞지 않은 법은 존중도 받지 못할 뿐더러 강제력도 없다. 이는 도처에 널린 ‘사문화된 법’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상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리고 상식은 시대에 뒤떨어질 수도 있다. 무조건 상식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건 곧 사회 정의 실현이나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법의 목적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보여주는 예로, 법에는 위반되나 사법상 효력은 인정되는 행위가 있다. 법률의 목적이 행정적 단속에 그치는 것이라면 위반행위는 행정제재의 대상이 될 뿐, 그 자체로 사법상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판례나 학설에서는 입법 목적과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법에 위반되나 효력은 유효하다’는 개념은 언뜻 들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불법적인 상태를 인정함에도 이를 방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는 법에 위반된다고 효력을 부정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자의적인 판단이고 실질적으로 법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가?” 등과 같은 의문이 든다. 실제로 상담할 때 이 지점에서 자주 막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의뢰인에게 “판례상 어쩔 수 없다”며 밀어붙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법학개론 초입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내용을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한 법적 취급이 최근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이다.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은 원사업자와 수급 사업자, 즉 원청과 하청 간의 하도급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하도급법은 다른 공정거래법령에 비해 구성요건이 명확하다. 수급 사업자가 실제 손해를 입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서면 미교부 등 형식적·절차적 사항 위반만으로도 법 위반이 성립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갑을관계 분쟁이 극심해서인지 법 위반사례가 유형화돼 있어 규제기관이 척 보면 바로 판단이 내려지는 사안도 많다. 그래서 하도급법은 다른 법령에 비해 비교적 집행 사례가 많고, 적용 대상이 되면 제재 수위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제재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하도급법에서 불공정거래행위로서 금지하는 행위 중엔 ‘부당한 특약의 금지’가 있다(제3조의 4). 원사업자가 수급 사업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조건을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무엇이 부당한지 모호한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부당 특약 심사 지침’을 보면 대체로 어떠한 조항이 하도급법으로 금지되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위 심사 지침은 ‘부당 특약’을 ‘원사업자가 수급 사업자에게 제조 등을 위탁할 때 교부하거나 수령한 설계도면·시방서·현장설명서 등 명칭이나 형태를 불문하고, 원사업자와 수급 사업자 간의 권리·의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약정을 통해 설정한 계약조건으로서 수급 사업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제한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했다.

 

하도급법 개정으로 관련 분쟁의 양상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급 사업자가 공정위 신고 절차, 민사소송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조건이 하도급법에 위반되는 부당 특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조건은 부당 특약으로서 법에 위반되는 것이니 수급 사업자는 효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과거 판례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대법원 2010다53457 판결은 입법 목적, 취지 등에 비춰 부당감액을 금지한 하도급법 조항을 위반했더라도 그 행위는 유효하다고 본다. 다만 그러한 행위가 수급 사업자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구성할 경우 수급 사업자는 원사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하도급법에 위반되더라도 그 행위는 유효하고 다만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위 판례는 수급 사업자에게 또 다른 어려운 과제를 던져 준 것과 같다. 수급 사업자는 어렵고 지난한 논쟁을 거쳐 하도급법 위반행위를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구제 받을 수 없고, ‘손해의 발생’ ‘행위와 손해 간의 인과관계’ ‘손해의 액수’ 등 여러 요건을 입증해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에서는 “불법행위는 인정되나 손해 발생 등은 입증되지 않으므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심심치 않게 내려진다. 그리고 법원의 보수성 때문인지 과실상계 등의 법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인정되는 손해액은 대체로 손해를 입은 사람의 입장에선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민사소송 등의 절차를 통해 구제를 받는 것은 ‘밑져야 본전’에 불과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래 자기가 받아야 했을 몫 이상은 절대 받을 수 없어, 대부분 적자에 놓이게 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법 위반 행위는 없던 일로 치고, 없는 상태를 전제로 서로 주고받은 것을 돌려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법적 안정성 등 어려운 개념은 무시하고, 법 위반 행위의 효력을 부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발상이다. 이 경우 원사업자가 수급 사업자로부터 받은 기성·납품 등은 원인 없이 받은 것이므로 수급 사업자가 손해 등을 입증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수급 사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개정 하도급법은 부당 특약의 효력을 아예 부정하는 것으로 규정했다(2025. 10. 2. 시행). 이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서면에 기재하지 않은 사항을 요구해 발생한 비용을 수급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약정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민원 처리, 산업재해 등의 비용을 수급 사업자가 부담하는 약정 △입찰 내역에 없는 사항을 요구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약정 등은 모두 무효다. 수급 사업자의 이익을 제한하거나 원사업자 의무를 수급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약정의 경우 그것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무효다.

 

개정 하도급법이 부당 특약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과감하게 규정하면서, 하도급법 분쟁의 양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개정 방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으나 실무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개정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실무에서 지적하는 문제점을 반영해 곧바로 하도급법 개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모습이라고 여겨진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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