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횡령·배임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화랑에 있던 가짜 미술품과 자신이 보유하던 진짜 미술품을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최근 승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 전 회장에게 가짜 미술품을 넘겨준 사람은 ‘재벌가 미술상’으로 알려진 홍송원 전 서미갤러리 대표로, 양측은 10년 전 알렉산더 칼더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미술품을 교환했다. 홍 전 회장은 당시 홍 전 대표 말을 믿고 작품을 교환했지만 지난해 감정 결과 이 작품은 위작으로 판정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남인수)은 지난 12일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홍송원 전 서미갤러리 대표 부부가 보유하던 가짜 미술품과 자신이 보유한 진품을 교환한 거래를 물러달라며 홍 전 대표 부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홍 전 대표와 홍 전 회장이 서로 작품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번 재판은 홍송원 전 대표의 주소를 알 수 없어, 법원이 일정 기간 소송 서류를 게시하는 방식으로 송달을 갈음하며 진행됐다.
분쟁은 양측이 알렉산더 칼더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미술품을 교환하면서 시작됐다. 알렉산더 칼더는 ‘모빌의 창시자’로 알려진 20세기 미국의 조각가다. 소장에 따르면 홍 전 회장은 2015년 경 홍송원 전 대표 부부가 운영하는 화랑에 방문해 ‘잃어버린 날개(MISSING WING)’라는 작품을 봤다. 홍 전 대표는 이 작품이 칼더의 작품이라고 설명했고, 홍 전 회장은 이를 자신이 보유하던 칼더의 작품 ‘빨강(THE RED)’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홍 전 대표와 홍 전 회장은 두 작품을 교환하는 계약을 맺고 서로에게 양도했다.
하지만 홍원식 전 회장이 넘겨받은 작품은 위작으로 판정됐다. 홍 전 회장이 지난해 2월 칼더재단에 진품 여부를 문의한 결과, 칼더재단은 이 작품이 위작이라고 답변했다. 잃어버린 날개라는 작품이 칼더재단 자료 전산 시스템에 등재되지 않았고, 육안으로도 제작 방식이나 재료가 칼더의 것과 다르다고 밝혔다. 칼더재단은 알렉산더 칼더 가족이 1987년 설립한 비영리재단으로 칼더 작품을 수집해 전시·보존·해석하고 있다.
이에 홍원식 전 회장은 자신의 미술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홍송원 전 대표 부부가 화랑을 운영하면서, 상당 기간 미술품 중개업에 종사해 ‘잃어버린 날개’라는 작품이 칼더 작품이 아닌 것을 쉽게 감별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진품인 것처럼 속여 자신과 교환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홍 전 회장은 사기나 강박으로 교환계약이 체결됐다며 자신의 미술품과 홍 전 대표 미술품을 교환하는 앞선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법에 따르면 법률행위 내용상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경우 취소할 수 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 홍송원은 원고로부터 ‘잃어버린 날개(MISSING WING)’ 작품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빨강(THE RED)’ 작품을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홍원식 전 회장이 홍송원 전 대표 남편에게 같은 내용으로 제기한 청구는 양측 사이에 교환계약이 체결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 밖에 홍원식 전 회장은 앞선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대비해 작품 가액 일부로서 5억 1000만 원을 예비로 청구했는데, 주 청구가 받아들여지면서 이 청구는 따로 판단되지 않았다. 홍원식 전 회장은 이 청구에서 자신의 미술품 가격이 5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피고인 홍송원 전 서미갤러리 대표는 재벌가 미술상으로 불린다. 과거 재벌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비자금 조성 창구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2008년 삼성그룹 특검 당시에는 삼성이 비자금으로 구입한 의혹이 제기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낙찰받아 삼성에 넘긴 통로로 지목됐고, 2013년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의 증여세 포탈 수사 당시에는 앤디 워홀 작품 ‘재키’를 25억 원에 구매해준 사실이 확인됐다. 이듬해에는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이 가압류를 피하기 위해 빼돌린 미술품을 판매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한편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은 현재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남양유업을 운영하면서 납품업체들로부터 거래 대가로 수십억 원을 수수하고, 친인척 운영 회사를 거래 중간에 끼워 넣어 회사에 100억 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여기에 납품업체 대표를 회사 감사로 임명한 뒤 급여를 되돌려 받거나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이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홍 전 회장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남양유업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 억제 효과가 있는 것처럼 꾸며내고,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증거 인멸을 지시한 혐의도 있다고 보고 함께 재판에 넘겼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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