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러일으킨 관세 전쟁에서 또 하나의 전장으로 품목 분류가 주목받고 있다. 수출입하는 상품이 어느 품목에 속하는지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상품의 품목 분류 코드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관세율, 원산지 등 달라져 비용과 직결
최근 관세청 웹사이트에는 미국이 부과한 품목관세에 대한 품목번호 연계표 자료가 가득 차 있다. ‘한-미 품목번호 연계표’는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당국이 발표하는 품목관세 부과 품목이 한국의 품목 분류상 무엇에 해당하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한국의 대미 수출입기업이 미국의 정책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관세청에서 지원하는 조치다.
이 품목 분류에서 활용되는 품목번호가 바로 ‘HS코드’다. HS코드(Harmonized System code)는 세계관세기구(WCO)가 제정한 국제 표준 상품 분류 코드다. 앞 6자리까지는 국제 공통 단위를 사용한다. 대분류와 종류, 용도와 기능에 따라 6자리의 번호를 부여한다. 그 뒤 번호는 국가별로 다른 분류 체계를 통해 세분화하여 최종적인 HS코드를 부여한다. 한국은 10자리까지 부여하는 품목 분류 번호인 ‘HSK코드’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원두커피는 첫 2자리에 커피·차·마류·향신료에 해당하는 제09류가 붙고, 그 중 커피에 해당하는 제01호가 그 뒷자리에 붙어 제0901호라는 품목번호 앞 네 자리가 부여된다. 그 뒤로 볶지 않은 커피는 1, 볶은 커피는 2로 분류하는 식이다.
HS코드가 중요한 이유는 이 번호에 따라 △관세율 △원산지 판정 △자유무역협정(FTA) 특혜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동일한 상품이라도 국가마다 어느 코드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과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달라진다. 스마트워치의 경우 국내에서 통신기기 HS코드 제8517호로 분류되면 무관세가 적용되지만, 손목시계 HS코드 제9102호로 분류되면 기본관세 8%가 적용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 ‘갤럭시 기어’를 인도·터키·태국 등의 국가가 손목시계로 분류해 4~10%의 관세를 부과했다가, 2015년 WCO가 갤럭시 기어를 통신기기로 분류하면서 관세 부과를 피했다.
#어느 코드 적용하느냐 두고 무역 분쟁까지
HS코드를 놓고 무역 분쟁도 벌어진다. 특정 국가가 세수 확보를 위해 높은 관세율의 코드를 적용하려 하면, 수출국은 낮은 관세율의 코드를 부여할 것을 주장한다. HS코드 부여 주체는 각 국가의 관세 당국이기에, 수출입 양국이 특정 상품의 HS코드를 다르게 볼 경우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관세청 세원심사과 관계자는 “보통은 양자외교로 HS코드 관련 분쟁을 해결하지만, WCO에 제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협상을 통해 HS코드가 합의되지 않으면 WCO 품목분류위원회(HS 위원회)에 제소해 판단을 받기도 한다. WCO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은 지니지 않지만 품목 분류에 관한 국제 사회의 합의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최근 인도에 수출하는 기지국용 라디오 유닛(RU)을 두고 한국과 인도 양국이 갈등한 사례가 있다. 인도는 관세 20%가 부과되는 ‘통신기기’로 보아 HS코드 8517.62를 부과한 반면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는 관세가 없는 ‘부분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이 사안을 WCO에 제소했다. HS위원회는 9월 18일(한국 시각)에 최종적으로 한국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결과 정부와 삼성전자 측은 관세와 과징금 등을 합쳐 80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아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2023년에는 옥외용 LED 디스플레이 모듈 관련 분쟁이 있었다. 한국에서 수출하는 옥외광고용 LED 디스플레이 모듈을 두고 미국·유럽연합(EU)·스위스 등은 ‘기타 모니터’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전까지 옥외광고용 LED 디스플레이 모듈은 중간재 부품으로 취급해 대부분 관세를 부여하지 않았으나, 미국과 EU는 관세가 부여되는 기타 모니터로 분류해 세수 확보와 자국 제조업 보호를 노린 것이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옥외광고용 LED 디스플레이 모듈이 영상신호 변환 기능이 없는 중간재라고 주장했다. 결국 HS위원회는 옥외광고용 LED 디스플레이 모듈 ‘평판디스플레이모듈’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기업은 수백억 원 규모의 관세 부담을 벗을 수 있었다.
#품목 재분류 ‘틈새’ 찾아나선 업계, 미국서 받아들일까
14일 한미 관세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가 체결되면서 산업계에서는 품목 분류를 통해 관세 부담을 최대한 덜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50%의 높은 품목관세가 부과된 비철금속 업계도 품목 분류를 통한 관세 틈새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승훈 한국비철금속협회 기획본부장은 “알루미늄 금속박이 자동차의 2차 전지에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해 15% 관세가 부과되는 자동차로 품목 재분류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품목 재분류가 미국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이 관세 회피 목적의 재분류로 받아들여 HS코드를 변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팩트시트 체결 이후 HS코드 부여가 관세전쟁의 새로운 전장이 될 전망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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