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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스위스는 어떻게 시계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나

'행운' 때문에 몰락하는 나라와 번영하는 나라의 차이는 '개방성'

2017.10.02(Mon) 07:00:00

[비즈한국] 지난 칼럼에서 15~16세기 스페인이 믿기지 않는 행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몰락한 것을 지적했더니, 매우 흥미로운 댓글이 달렸다. 

 

“미국도 스페인처럼 캘리포니아의 금광 같은 어마어마한 행운이 있었지만, 미국은 지금도 잘나가지 않습니까?”

 

흥미로운 지적이다. 왜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100년도 지나지 않아 패권을 놓쳤고, 반대로 미국은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 같은 큰 행운을 잘 살려 세계의 패권을잡게되었는가? 여기에 수많은 답이 달릴 수 있다. 스페인과 미국의 인구구성 차이라든가 제도의 차이 등등 아마 원인을 찾자면 수백 가지는 족히 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스페인 은의 세계사’의 저자, 카를로 M. .치폴라 교수의 또 다른 책 ‘시계와 문명’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힌트를 제공한다. 일단 시계가 서양 문명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지 확인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90쪽). 

 

시계 제작은 물리학과 역학의 이론적 발견이 실용화된 최초의 산업이었다. (중략) 아주 이른 시기부터 시계공들은 그들이 하는 가장 섬세한 작업을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도구들을 고안했다. (중략) 시계공들은 열에 의한 금속의 팽창과 태엽의 탄성, 복원력을 연구하기 위해 작업에 쓰이는 다양한 유형의 강철과 구리의 속성을 조사하게 되었다. 그들은 몇몇 단순한 도구들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기계를 발명하고 개량했다. 

 

한마디로 말해, 18세기에 본격화되는 산업혁명의 기원은 시계산업의 발전에 있다는 이야기다. 

 

아래 그래프에 나타난 것처럼, 유럽 시계공들의 기술은 대단히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세로축은 시간 측정의 정확도, 가로축은 시간의 변화를 나타내는데 1300년대 처음 유럽에서 시계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이후 산업혁명(18세기)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정확도가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s://jeremylent.wordpress.com/2010/07/10/an-exponential-rate-of-change/


그런데 시계산업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었고, 시계에 관련된 지식과 숙련 수준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따라서 시계공들이 자유롭게 일하고 그들의 작품을 손쉽게 판매할 수 있는 곳은 언제든지 산업의 중심지로 부각될 수 있었다(99쪽).

 

적어도 17세기 말까지 시계산업은 커다란 자본 설비나 복잡한 조직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요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여건만 조성된다면 커다란 시계산업의 중심지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몇 안 되는 수공업자들뿐이었다. (중략)

1449년 제네바에는 시계공이 딱 한 명 있었다. (중략) 1515년 생피에르 교회의 시계가 고장 났을 때 시계를 수리할 사람이 없었다. 1550년 직후 몇몇 시계공이 제네바에 난민으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필리프와 보야르라는 장인은 로렌에서 왔고, 로랑 드롱델은 파리에서, 피에르 샤르팡티에는 오를레앙에서 왔다. (중략) 당시 제네바의 문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모든 이에게 열려 있었다. (중략)

피난민 중에 시계공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시계산업 중심지가 되는 데에는 소수의 시계공만으로 충분했다.

 

왜 프랑스 시계공은 스위스로 이주했나?

 

지금까지 엄청난 명성을 떨치는 스위스 시계산업은 바로 프랑스 시계공의 대량 이주 때문에 시작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 왜 프랑스에서 시계공이 대대적으로 이탈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시계공의 상당수가 신교도들이었기 때문이다(98쪽).

 

종교개혁 시기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시계공이 개종했다. 1550~1650년 사이 가톨릭의 도시인 리옹에 살았고 또 우리가 종교를 알 수 있는 90명의 시계공 가운데 50명은 가톨릭 교도, 40명은 신교도였다. (중략) 시계공들의 높은 문자 해독률과 비교적 많은 시계공들이 종교개혁 운동을 지지한 것 사이에 얼마간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특히 프랑스가 성 바르톨로뮤의 대학살(1572년 8월 24일)을 시작으로 종교의 자유가 부여된 낭트칙령 반포(1598년), 그리고 루이 14세의 낭트칙령 폐지(1685년)까지 이어지는 끔찍한 종교갈등을 겪은 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끝없는 전쟁과 학살 속에 프랑스의 신교도들은 해외로 탈출했고, 특히 기술을 가지고 있던 시계공은 탈출 행렬의 가장 앞에 섰다. 

 

물론 프랑스의 시계공들이 모든 나라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잉글랜드와 스위스, 그리고 네덜란드의 세 나라는 프랑스 시계공을 받아들이는 데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다(101쪽).

 

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치세 동안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영국 정착을 허락받았다. 외국 수공업자는 영국 수공업자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방인 기술자’에 대한 1517년 런던 견습생의 메이데이 폭동은 외국인과의 경쟁에 영국 수공업자들이 얼마나 불만을 품었는지를 보여준다. (중략) 

그러나 외국인들은 영국의 산업체제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영국 수공업자들의 반응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반응이 외국의 사상과 기술에 대한 수용성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외국 수공업자들에 대한 널리 퍼진 시기 때문이었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잉글랜드도 16세기에는 기술을 수용해야 하는 후진국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등은 종교전쟁 속에 뛰어난 기술을 지닌 시계공을 재빨리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가질 수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기술을 수용하고 또 발전시킬 계기를 잡을 수 있었던 셈이다. 

 

스위스 시계산업은 바로 종교갈등을 피해 이주한 프랑스 시계공들을 받아준 데서 시작되었다. 사진=필립파텍 홈페이지


스페인과 미국의 차이는?

 

스페인과 미국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는 과정(레콘키스타*)에서 유대인을 적으로 간주했다. 특히 1492년 3월 31일 조인된 알람브라 칙령을 통해 유대인들을 7월 31일까지 추방하기로 결정한 것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스페인 인구 700만 명 중에서 유대인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상인 및 수공업자들이었기에, 이들의 추방은 스페인에게 영구적인 ‘지적자본의 손실’을 뜻했다.**

 

반면 미국은 종교전쟁과 갈등으로 폐허가 된 유럽 대륙을 떠나 신대륙에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건국되었다. 물론 남부해안은 노예제 중심의 유럽형 시스템이 주류를 이루긴 했지만, 대신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기에 인신(人身)을 구속하는 정도는 유럽과 비길 수 없었다. 결국 개방적인 사회 문화와 캘리포니아의 금 발견이라는 행운이 결합한 결과, 미국은 번영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인 실험은 우리에게 한 가지 과제를 선사한다. 과연 한국은 스페인에 가까운가? 아니면 19세기 미국에 가까운가?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혁신적인 정보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더 나아가 공동체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가, 아니면 개방적으로 운영하는가? 이 질문을 이제 한 번 던져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레콘키스타(Reconquista)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한국경제신문(2015.3.27), “세파르디 유대인”.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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