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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인간의 눈 모방한 AI 머신 비전 '프로페시'

인간과 기계 장점 조합한 기술로 고효율·​저전력 구현…다국적 창업자에 다국적 투자자 눈길

2019.07.25(Thu) 16:03:39

[비즈한국] 오늘 소개할 유럽의 스타트업은 2014년 창업해 2016년에 1500만 달러, 2018년에 1900만 달러 등 총 3700만 달러(44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인공지능(AI)·머신 비전 스타트업인 프랑스의 PropheSee(프로페시)다. 

 

프로페시는 프랑스 국립안과병원에서 독일인 과학자(현 CTO)가 개발한, 인간의 시각 처리 방식을 모방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공동 창업자인 현 CEO는 프랑스에서 공부한 이탈리아인이며 미국의 인텔, 프랑스의 르노, 독일의 보슈 등 대기업들이 이 회사에 투자했다. 전형적인 유럽의 다국적 스타트업의 모습이다. 

 

프로페시는 인간의 시각 처리 방식을 모방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사진=프로페시

 

미국의 스타트업 투자전문 정보조사업체인 CB인사이츠는 AI 스타트업을 다음의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적용 분야와 상관없이 AI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ML)을 핵심 차별화 요소로 삼거나, 둘째 다양한 분야에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거나, 셋째 AI에 특화된 칩 등의 하드웨어를 설계, 생산해 판매하거나. 첫째 범주는 사실 좀 애매하다. AI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AI의 활용이 핵심이 아닌 스타트업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기 때문이다.

 

AI는 최근 10여 년간 핵심적인 난제들을 잇따라 해결하며 이론적인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때마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눈부신 발전과 맞물려, 과거에는 이론으로만 가능하던 것들을 실제 산업 현장에서 적용할 정도의 수준으로 급속히 끌어올리고 있다. 그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제는 먼 미래로만 여겼던 특이점(singularity), 즉 인공지능과 관련 기술의 진보를 인간이 이해할 수도 따라잡을 수도 없게 되는 시점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대두될 지경이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AI가 광범위하게 활용되다보니, 테크 기반의 스타트업이나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현상) 스타트업이나, 심지어 푸드테크나 농업 분야의 스타트업에서도 AI의 활용이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한 스타트업들도 AI를 활용하지 않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동안 20여 개의 유럽 스타트업들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가장 핫한 분야인 AI를 콕 집어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게 이 때문이다. 

 

초기에 신경망 등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던 AI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지금은 압도적인 계산량과 통계적인 데이터 처리를 활용한 ‘기계학습’을 통해 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판단 및 예측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이세돌 9단을 제압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도 초기에는 인간 프로 기사들의 대국을 ‘복기’하는 방식으로 바둑 실력을 키웠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인간의 수를 참고하지 않고 자체적인 알고리즘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 나갔다고 한다. 말하자면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는데 인간은 그 로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부분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반면 기계의 눈으로 주변 환경과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하고, 이렇게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해 적절히 반응하거나 필요한 작업을 수행하는 ‘머신 비전(machine vision)’은 더 전통적인 의미의 인공지능에 부합하는 분야다. 시각정보 처리에서는 기계가 인간은커녕 훨씬 단순한 하등 생물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전히 인간의 시각정보 처리 과정을 모방, 즉 ‘인공의 시각 지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프로페시는 시각정보 처리에서 인간과 기계 각각의 장점을 모아 이미지를 처리한다. 프로페시의 센서와 AI 알고리즘이 최초로 적용된 디바이스 온보드(Onboard). 사진=프로페시

 

프로페시는 기존의 프레임 기반 이미지 처리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홍채와 시신경 체계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머신 비전을 선보인다. 이들은 이를 ‘이벤트 기반’ 이미지 처리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해를 돕기 위해 흔히 ‘동영상’이라고 부르는 ‘움직이는 화면’을 만드는 원리를 짚어보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에디슨이 발명한 영사기의 원리를 활용해 최초의 상업용 영화를 상영한 지 120여 년이 지났지만, 움직이는 또는 ‘살아 있는’ 영상을 만드는 근본 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날로그건 디지털이건 물체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촬영, 즉 ‘캡처’해 각각의 화상을 이어 붙이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정지 화면을 ‘프레임’이라고 부르는데, 아날로그 영화에서는 필름에 인화된 프레임을 초당 24장씩, 현재의 디지털 동영상에서는 디지털 사진을 초당 30장씩(30fps: 30 frame per second) 재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움직이는 사물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눈의 착각을 이용한 것이다. 인간의 눈은 그런 식으로 사물을 인식하지 않는다. 프레임 기반의 화상 인식은 중요도와 ‘맥락(context)’에 상관없이 화면 전체를 찍어서 처리하거나 전송하지만, 인간의 눈은 필요한 정보만을 인지하고, 그 중에서도 중요한 정보에만 집중한다. 

 

가령 추신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선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다고 하자. 카메라를 비롯한 기계는 추신수 선수뿐 아니라 배경에 있는 관중들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1초에 30번씩 찍어서 전송할 텐데, 이때 전달되는 데이터의 거의 대부분은 사실 불필요한 정보다. 반면 인간은 배경의 관중들은 무시하고 타자의 모습,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의 동작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인 정보 처리가 가능하다. 

 

이때 만약 관객석에서 누군가가 돌출 행동(이벤트)을 한다면, 이 역시 인간의 주목을 끌어 이 부분에 대한 시각정보 처리가 시작될 것이다. 프로페시의 시각 센서는 각각의 픽셀이 독립적으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함으로써 화면상에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수집하며, 이를 통해 데이터의 양을 최소 10배에서 1000배까지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할 경우 초당 10만 프레임에 달하는 정보를 처리할 수도 있다.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모방할 때 인간과 기계 모두를 뛰어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기능이 구현되기도 하는데, 프로페시의 머신 비전이 그 예이다. 인간의 눈은 어차피 초당 30프레임 이상의 정보는 인지할 수 없고, 기계의 눈은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많이 수용해 아무리 고성능의 연산 장치와 센서를 사용해도 용량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조합해 인간과 기계 어느 쪽도 인지할 수 없었던 초고속의 미세한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은 자동화된 대량생산 공정에서 인간도 기계도 잡아낼 수 없었던 미세한 오류를 시각적으로 탐지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르노, 보슈 등이 이 회사에 투자한 이유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모량이다. 시각정보뿐 아니라 인간의 신경망(뉴런)의 작동원리를 칩으로, 즉 하드웨어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뉴로모픽’이라고 하는데, 이 컴퓨팅 방식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저전력으로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처리할 때 슈퍼컴퓨터는 메가와트(MW)급 전력을 사용하지만, 사람은 기껏해야 20와트(W) 정도의 에너지만을 쓴다. 저전력으로 장기간에 걸쳐 정교하게 시각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산업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구현의 핵심이다. 뉴로모픽 컴퓨팅을 주도하고 있는 인텔 역시 프로페시에 투자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프로페시의 공동 창업자이자 CTO인 크리스토프 포슈. 시각장애인을 돕는 보조장치를 연구했다. 사진=링크드인


프로페시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 루카 베레(오른쪽). 최근 조국 이탈리아에서 과학 분야의 혁신상을 받았다. 사진=이탈리아 외교부


프로페시의 공동 창업자이자 CTO인 크리스토프 포슈(Christoph Posch)는 독일에서 대학을 마친 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의 발상지로 유명한 유럽핵물리연구소(CERN)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2004년부터 8년간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원(Austr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광학과 머신 비전, 센서 기술 등을 연구한 뒤 2012년에 프랑스로 건너와 ‘시각연구소(Institut de la Vision)’의 뉴로모픽 연구를 주도했다. 

 

프랑스 시각연구소는 76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국립안과병원의 부설 연구소로서, 애초 포슈의 연구는 시각장애인을 돕는 보조장치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국립안과병원은 1260년에 루이 9세가 도시 빈민들, 그중에서도 맹인들을 치료하고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

 

포슈와 공동으로 프로페시를 창업한 CEO 루카 베레(Luca Verre)는 이탈리아인이다. 밀라노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 TIME(Top Industrial Managers for Europe) 프로그램을 통해 프랑스 리옹 중앙공대(Ecole Centrale de Lyon)에서도 공부했다. 

 

TIME은 1988년에 시작된 유럽 내외 공대들 간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다. 현재 참여하는 53개 대학에는 유럽 대학 이외에 중국의 시안교통대학, 북경항공대학, 일본의 게이오대학, 도호쿠대학 등도 포함되어 있다. 석사 때 도요타 네덜란드 지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졸업 후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 광학연구소에서 잠시 근무한 뒤에 프랑스의 슈나이더 일렉트릭에서 7년간 근무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 외에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가 유창하다.) 창업을 결심하고 프랑스의 인시아드(Insead)에서 MBA를 취득한 뒤 곧바로 2014년에 프로페시를 만들었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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