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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김유정 미모에 혹했다 연기에 헉 '친애하는 X'

소시오패스가 이끄는 전형적 피카레스크 장르물…섬세한 연기로 악인 서사에 설득력 부여

2025.11.21(Fri) 14:51:56

[비즈한국]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강력한가. 배우 강동원을 보고 언론인 손석희가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라고 내뱉은 것처럼, ‘친애하는 X’의 김유정을 보면 외면의 아름다움의 강력함에 대해 절로 감탄하게 된다. ‘친애하는 X’를 계속 보는 이유가 김유정의 미모 때문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첫 번째 이유는 된다.

 

고아나 다름없는 삶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백아진. 선천적 성향과 후천적 성장환경의 결합으로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는 데 스스럼없는 사람이 되었다.

 

‘친애하는 X’는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면을 쓴 여자 백아진(김유정), 그리고 그에게 잔혹하게 짓밟힌 X들의 이야기이다. 백아진은 인류의 약 4%에 해당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일명 소시오패스. 도덕적 판단은 가능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그는 어릴 적부터 남다름을 보여준다. 알코올 중독으로 아진을 학대하던 엄마를 아빠 선규(배수빈)가 계단에서 던져 살해하는데, 어린아이였던 아진은 그걸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무덤덤하게 “설마 던졌어요?”라고 물을 뿐이다. 죽어가는 엄마가 119 좀 불러달라고 애원하지만 뿌리치고 가버리는 아이라니. 

 

학창시절부터 톱스타가 되기까지 백아진의 곁에서 물심양면 돕는 윤준서와 김재오. 다만 구원이 사랑이라 믿은 준서와 맹목적 충성으로 사랑을 말하는 재오의 길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아이가 자라서도 평범할 리 없다. 고등학생이 된 아진은 겉으로는 모범생이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담임교사의 불륜 행각을 들춰내 학교를 떠나게 만들고, 아무도 몰래 동급생들을 상대로 일수를 놓으며 돈을 번다. 사사건건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심성희(김이경)를 도둑으로 몰아 전학가게도 만든다. 이런 아진의 이중 행각을 도와주는 조력자들이 있다. 어릴 적 부모끼리 재혼으로 잠깐 의붓남매 사이였던 윤준서(김영대), 그리고 교실에서 도둑질하다 아진에게 들키며 얽히게 된 김재오(김도훈). 윤준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릴 적 아진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진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괴로움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 아진을 어떤 식으로든 돕고자 한다. 김재오는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면서 도둑질이나 하고 다니는 자신에게 ‘쓸모’를 말한 아진에게 기꺼이 충성을 바친다. 

 

아진의 삶을 지옥으로 밀어 넣고, 아진을 비뚤어진 인간으로 자라게 한 원인 중 하나인 아빠 백선규. 그리고 잠깐 동안 아진의 계모였던 윤준서의 엄마 황지선(김유미).

 

물론 백아진에게도 최소한의 이유는 있다. 어릴 적부터 술만 마시면 자신을 학대하는 엄마를 시작으로, 엄마를 살해한 아빠 역시 툭하면 아진을 괴롭히며 돈을 뜯어내는 등 지옥 같은 삶을 선사한다. ‘지옥에서 시작된 삶이라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게 낫지 않겠어요?’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아진의 삶을 대변한다. 스스로 괴물이 된 아진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고, 조종하고, 교묘한 덫을 놓아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아진은 누구든 이용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아진은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나 족쇄가 되는 이들을 하나하나 치워버린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보단 주변의 손을 빌려서.

 

아이러니한 건, 아진의 악행이 교묘하고 악독해질수록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이 점점 아진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거다. 어릴 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족쇄 같던 아빠를 치워버리기 위해 선량하고 의협심 많은 카페 사장 최정호(김지훈)를 이용하거나 연예계에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기 위해 톱스타 허인강(황인엽)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연애했다가 처절하게 버리는 모습은 도무지 편을 들어주기 어렵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게 뭐가 나빠?”라고 비뚤어진 논리로 항변하는 백아진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배우가 된 아진의 덫에 걸린 남자, 허인강. 아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으나 쓸모를 다하며 처절하게 버려진다.

 

백아진에 대한 묘한 동조의 시선은 순전히 김유정의 빼어난 연기 탓이다. ‘친애하는 X’는 도덕적 결함을 지닌 악인이 이야기를 이끄는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장르물이다. 백아진의 서사에 최소한의 이유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백아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백아진 주변의 윤준서도, 지켜보고 있는 우리도 잘 안다. 그럼에도 김유정이 연기하는 희대의 악녀 백아진은 독특한 감정이 깃들게 만든다. 마냥 동조할 순 없는데, 피 칠갑을 한 채 아빠를 내리치던 백아진이 이후 묘한 해방감과 광기로 물들어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과 연민이 든다. 허인강의 자살로 윤준서가 아진을 질시하자 도리어 준서에게 가스라이팅을 시전하지만, 이내 허인강이 죽었던 욕조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그렇다고 내가 망가질 순 없잖아’라고 되뇌는 아진의 복잡미묘한 내면을 헤아려보게 된다. 어릴 적부터 ‘연기천재’라 불렸던 김유정은, 이제 시청자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섬세한 연기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고아인데 예쁘고 공부 잘하는 아진이 거슬렸던 동급생 심성희와 잘나가기 시작한 아진이 거슬렸던 연예계 선배 레나(이열음). 둘 다 선을 넘으면서 아진에게 제대로 걸려 나락으로 떨어진다.

 

최근 드라마 트렌드 중 하나는 도덕적 결함 내지는 감정이 결여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작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유성아(고민시)부터 올해 ‘하이퍼나이프’의 정세옥(박은빈), ‘다 이루어질지니’의 기가영(수지), 그리고 12월 공개 예정인 ‘자백의 대가’의 모은(김고은)까지. 아직 ‘자백의 대가’를 보지 않아 섣부를 순 있겠지만 ‘친애하는 X’의 백아진은 이 트렌드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상징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개 이후 2주 연속 티빙 주말 기준 신규 유료 가입 기여자수 1위를 기록하고, 전 세계 플랫폼에서 시청 상위권에 오르는 것을 보면. 김유정의 서릿발 같은 아름다움과 섬세한 연기로 매혹당하고 싶다면 얼른 티빙을 켜시라. 

 

과연 백아진은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오를 수 있을까. 도덕적 결함을 지닌 악인이 이야기를 이끄는 피카레스크 장르에서 주인공의 해피엔딩이란 언감생심이거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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