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엔터

[올드라마] '한 번 보면 밤샘각' 유튜브 버전 '내 남자의 여자' vs '불꽃'

출퇴근길에 보는 꿀잼 불륜 드라마…느낌있는 편집과 자극적 썸네일로 시청자 유혹

2020.01.27(Mon) 11:54:00

[비즈한국] 재미있는 드라마를 볼 때면 단 1초도 놓치고 싶지 않다. 어떤 친구는 VOD로 드라마를 몰아볼 때면 1.2배로 보곤 하던데, 음, 적어도 ‘김수현 작가 드라마’는 그럴 수 없다.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대사가 넘쳐흐르기에 온 신경을 기울여 시청해도 까딱하면 놓치는 대사가 있을 수 있기 때문.

 

어쨌든 재미있는 드라마를 띄엄띄엄 본다는 건 내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를 보면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김수현 작가 드라마들이 편당 25분, 더 나아가 2편을 20분 분량으로 편집해 업로드되곤 한다. 그런데 요상도 하지, 그 편집본이 ‘기깔나게’ 재미나다.

 

요즘 유튜브엔 이른바 ‘방송국 놈들’이 몇 년째 불고 있는 복고 바람에 편승해 옛날 드라마, 옛날 예능을 적절히 편집해 올려 높은 조회수를 올리는 중이다. ‘스트로-SBS 복고채널’ ‘SBS NOW’ ‘옛드: 옛날 드라마 [드라맛집]’ ‘옛날티비: KBS Archive’ 같은 채널들이 그렇다. 예전에 봤던 드라마도 클릭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끔 유혹적인 썸네일과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선 시청자를 홀린다.

 

워낙 핵심만 요약 편집해 12개의 에피소드를 단숨에 몰아볼 수 있다. 이 요약본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도 큰데, 가장 인기인 베스트 댓글 중 하나는 ‘이 드라마가 준 교훈: 열등감 있는 친구는 사귀지 말 것,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남편 만나지 말 것, 하유미가 내 언니여야 한다는 것’.

 

24부작인 ‘내 남자의 여자’를 편당 20분 이내로 12편으로 편집해 올린 ‘SBS NOW’가 대표적. 에피소드 1부터 ‘혈압 주의-친구의 남편과 바람난 여자’란 제목을 달곤 썸네일에도 ‘미국 물 먹고 미국 X 됐냐!?’란 대사를 붙이는 센스를 보라. 총 4시간 이내면 24부작의 핵심을 쭈욱 훑을 수 있다.

 

게다가 내용은 ‘강 건너 불구경’인 상태라면 세상 재미지다는 불륜 이야기. ‘아들과 딸’의 후남이, ‘완전한 사랑’의 영애, ‘부모님 전상서’의 성실 같은 역할로 세상 정숙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였던 김희애가 화려하고 도도한 상간녀 이화영을, ‘목욕탕집 남자들’ ‘거짓말’ 등의 작품을 거치며 제 할 말 다하는 도시녀 이미지였던 배종옥이 지고지순한 전업주부 김지수를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파격적이었다.

 

배종옥과 김상중, 김희애의 파격 변신(?)이 돋보였던 ‘내 남자의 여자’. 처음에는 제목의 의미가 지수(배종옥)의 입장에서 내 남편의 여자 화영(김희애)을 뜻하는가 싶지만, 뒤로 갈수록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불륜의 면면을 재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 사진=SBS 홈페이지

 

게다가 1편부터 절친한 친구 지수의 바비큐 파티에 초대된 화영이 지수의 남편 홍준표(김상중)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곧바로 지수의 언니 은수(하유미)에게 들키는 스피디한 전개! 안 그래도 속도감 넘치는 김수현 작가 드라마인데, 유튜브 버전은 한 편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편을 클릭하게 되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다.

 

방영 당시 ‘국민 언니’로 등극해 전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하유미의 까랑까랑한 대사는 귀에 착착 감기고,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또라이’ 같은 화영과 비겁하기 짝이 없는 준표의 ‘대환장파티’ 놀음은 쉬지 않고 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와우, 이런 짜릿함을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만끽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지. 

 

김수현 작가의 타율이 대부분 좋지만 ‘내 남자의 여자’는 가장 친하고 헌신적이던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역할을 김희애가 맡았다는 것부터 성공의 조짐이 보였다. 어쩌면 ‘내 남자의 여자’가 있었기에 2014년 ‘밀회’의 오혜원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SBS 홈페이지

 

이러니 무려 13년 전의 드라마임에도 편집본이 편당 최소 조회수 50만은 너끈히 찍을 수밖에 없다. 세상 자극적이고 짜릿한 엑기스만 매끈하게 요약한 편집 실력에 감탄한 네티즌들이 다는 댓글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밥 먹는 것에 집착하는 홍준표에게 네티즌들이 ‘밥줘충’ ‘감자돌이’라는 별명을 붙이면 그런 반응들을 살펴보고 편집자가 다음 편 에피소드 마지막에 베스트 댓글로 소개하는 센스도 유튜브 버전 ‘내 남자의 여자’에 끌리는 이유다.

 

‘내 남자의 여자’ 초반 인기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은수(하유미)와 화영의 격투 장면. ‘국민 언니’로 등극한 하유미와 만만찮은 ‘또라이’로 변신한 김희애는 투 샷이 잡힐 때마다 시청자들의 간담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유튜브 버전은 그 짜릿함이 더욱 압축되어 한층 더 농밀하게 느껴진다. 사진=SBS 홈페이지

 

그렇게 ‘내 남자의 여자’를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스트로-SBS 복고채널’에서 현재 업로드 중인 김수현 작가의 또 다른 불륜 드라마 ‘불꽃’을 보라. 2000년 방영한 ‘불꽃’은 지금도 여신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은 이영애의 젊었을 적 서늘하게 아름다웠던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유튜브 버전은 회당 25분 이내로 편집했는데, 각자 약혼자가 있으면서 여행지에서 불꽃 같은 정염에 휘말린 방송작가 박지현(이영애)과 성형외과 의사 이강욱(이경영)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냐 민폐냐, 2020년에도 댓글창이 시끌시끌하다. 방영 때도 그랬지만 대체 왜 지현이 재벌 후계자에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미남인 최종혁(차인표) 같은 남자를 두고 강욱에게 끌리는 건지, 이미 정분이 난 약혼자를 기어코 붙들고 결혼까지 가고 마는 종혁과 피부과 의사 허민경(조민수)의 사랑은 정상적인 건지 갑론을박이 여전한 걸 보면 김수현 작가의 힘이 대단하고 또 매력적이긴 해도 그 옛날 드라마를 요즘 감성에 맞게 요약 편집한 유튜브 편집자들의 실력이 대단하다. 

 

재벌집 후계자 준혁을 약혼자로 둔 지현(이영애)과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 같은 약혼녀를 둔 강욱(이경영)은 태국 여행에서 짧은 시간 안에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이 결혼 상태가 아니었기에 지금 시청자들은 비난의 여지가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시청자들의 반응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의식의 변화는 유튜브 댓글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SBS 홈페이지

 

2007년작인 ‘내 남자의 여자’도 오래되긴 했지만 20세기 끄트머리에 방영한 2000년작 ‘불꽃’은 지금 보면 격변의 한국, 다이내믹 코리아를 실감할 수 있다. 재벌집이라 해도 종혁의 집은 2020년 사람들의 눈에는 귀신의 집이 따로 없을 만큼 오싹하기 짝이 없거든. 잘잘 치맛자락 쓸리는 한복이나 홈드레스 차림으로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옆에 서서 식사 시중을 하는 지현을 보면,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고 짜증을 부리는 종혁의 모습을 보면 결혼하고도 강욱에게 끌리는 지현에게 공감을 하게 된다니까?

 

객관적인 지표로는 모든 걸 갖추고도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속박하는 사랑을 보여줬던 종혁(차인표). 그러나 당시 시청자들은(어느 정도는 지금도) “대체 왜 차인표를 놔두고 이경영이랑 눈이 맞아? 대체 왜?”를 외치곤 했다. 사진=SBS 홈페이지

 

똑같이 불륜이 소재인 데다 김수현 작가 작품인지라 ‘내 남자의 여자’와 ‘불꽃’은 비교해가며 보기 딱 좋다. 내가 화영이라면, 내가 지수라면, 내가 준표라면, 혹은 내가 지현이라면, 내가 강욱이라면, 내가 종혁이나 민경이라면 하고 대입해서 보는 재미도 크고. 유튜브의 ‘내 남자의 여자’와 ‘불꽃’이 재미지다고 1.2배속으로 드라마를 몰아보는 친구에게 귀띔했더니, 다음날 새벽에 카톡이 왔다. “자니? ‘불꽃’이 11화까지 올라와 있던데 그 다음 편 더 볼 수 있는 방법 없을까?’라고. 아, 작년 이맘때 썼던 김수현 작가의 ‘청춘의 덫’도 ‘스트로-SBS 복고채널’에 업로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니 조심하시라, 자칫 잘못 유튜브로 옛날 드라마에 빠졌다간 밤샘 시청으로 다크서클이 잔뜩 내린 거울 속 몰골과 마주하게 될 테니까.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올드라마] '비포&애프터 성형외과'로 짚어보는 성형공화국의 현실
· [올드라마] '하얀 거탑', 왜 우리는 오만한 의사 장준혁에게 끌리나
· [올드라마] 내 인생의 치트키 '얼렁뚱땅 흥신소'
· [올드라마] 단언컨대, '용의 눈물'을 뛰어넘는 사극은 없다
· 우울할 때 보면 딱 좋은 로맨틱 코미디 '낭랑 18세'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