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LG전자가 대만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제조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수백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2014년 소송 제기 이후 12년, 1심 판결 이후 약 2년 만에 나온 결과다. 법원은 대만 업체들의 가격 담합 행위(카르텔)로 인한 LG전자의 피해를 인정하며 손해배상 원금 약 282억 원에, 10년 넘게 누적된 지연이자 266억 원을 더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2년 이어진 손배소, 2심서도 “대만 업체 배상 책임 인정”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4일 LG전자와 해외 법인 여섯 곳(중국 난징·폴란드 므와바·미국·인도네시아·폴란드 브로츠와프·러시아)이 대만 LCD 제조사인 에이유 코퍼레이션(AUO)과 한스타 디스플레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만 업체들이 LG전자에 지급해야 할 배상액을 에이유 249억 4400만 원, 한스타 32억 5000만 원으로 산정했다. 2007년 무렵부터 발생한 지연이자를 제외한 금액이다. 지연이자를 포함하면 양 사가 물어내야 하는 금액은 원금 약 282억에 지연이자 약 266억 원을 더한 548억 원 규모다.
다만 배상 인정 범위는 1심보다 다소 줄었다. 앞서 2023년 11월 1심 재판부는 손해액의 70%를 피고의 책임으로 인정했으나, 이번 2심에서는 이를 60%로 낮춰 적용했다. 이에 따라 배상 원금은 1심(각각 약 291억 원, 37억 9000만 원)보다 감소했다.
이번 소송의 발단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 대만, 일본의 주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제조사들은 매월 대만에서 열리는 이른바 ‘크리스탈 회의’를 통해 양자·다자회의를 열고 LCD 패널 제품의 가격과 물량을 합의했다.
공정위 조사 등에 따르면 대만 업체들은 이 자리에서 LCD 패널의 가격 하한선을 설정하거나 공급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담합했다. 당시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었으나, 후발 주자인 대만 업체들은 공급 네트워크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는 상황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1년 12월 이들의 담합 사실을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940억 원을 부과했다. 이후 LG전자는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해 비싼 가격에 패널을 구매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대만 업체 다섯 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담합에 따라 낙찰가격이 높게 형성됐고, 담합하지 않았을 경우 예상되는 가격과의 차액만큼 손해를 봤다는 취지다. 소송 과정에서 에이유와 한스타를 제외한 업체들에 대해서는 소를 취하했다.
에이유와 한스타는 1심 판결 직후인 2023년 12월 항소했고, LG전자 역시 이에 맞서 항소장을 제출했다.
#“소멸시효 지났다” 주장했지만 법원 배척
서울고법은 1심 판결을 인용해 “피고들은 지속적인 회의를 통해 TFT-LCD 주요 제품의 가격 유지와 인상을 논의하고 주요 제품의 최저 목표가격 합의, 선전량 및 가격정보 교환 등 공동행위를 해 경쟁을 부당 감소시키거나 제한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이번 항소심의 쟁점 중 하나는 소멸시효였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
대만 업체들은 “미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2009년이나 유럽연합(EU)의 제재 결정이 나온 2010년 무렵에는 원고들이 위법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주장했다. 이미 10년 넘게 지난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에이유는 미국 형사 절차에서 유죄 합의를 거부하고 무죄를 주장하며 법적 다툼을 지속했고, 국내 공정위 조사 및 행정소송 단계에서도 합의 존재와 경쟁제한성을 일관되게 부인했다”며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업체들이 위법성을 다투는 상황에서 LG전자가 손해 발생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어 “공동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가 불확실성이 해소된 시점, 즉 국내 행정소송 판결이 확정된 때 비로소 소멸시효가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글로벌 카르텔 사건에서 가해 기업이 혐의를 부인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갈 경우, 피해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가 그만큼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대목이다.
두 대만 업체는 자사가 대만 법인이고 증거자료도 대만에 있는 만큼 자국 법원에서 재판해야 한다거나, LG전자는 담합업체 중 한 곳인 LG디스플레이의 대주주이자 모회사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점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국제재판관할권에 관한 국제사법 조항에 근거해 “분쟁이 된 사항과 당사자들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며 배척했다. 아울러 “피고들이 제시한 사정만으론 LG디스플레이와 독립된 법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하는 LG전자가 담합에서 동일한 행위 주체로 봐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2014년 1월 소장이 접수된 후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만 무려 9년 10개월, 항소심 결과까지 12년이 소요됐다. 앞서 재판부는 국제 재판 관할권 문제, 방대한 증거 자료 분석, 피고 측의 절차적 이의 제기 등으로 심리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글로벌 부품 공급망에서 벌어진 담합 행위에 대해 국내 수요 기업이 책임을 물어 배상을 받아낸 사례다. 2심에서 배상 비율이 소폭 축소됐으나, 대만 제조사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재확인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에이유와 한스타 측이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지도 주목된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만 패널 업체들의 가격 담합으로 모니터와 TV 등의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입어 지난 2014년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사안”이라며 “아직 소송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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