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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담배회사 상대 소송 2심도 패소 "흡연, 폐암 유발 인정 어려워"

정기석 건보 이사장 "유보적 판단에 유감, 상고할 것"…대법원서 뒤집할 가능성도

2026.01.15(Thu) 16:39:16

[비즈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KT&G 등 담배회사 세 곳을 상대로 제기한 폐암·후두암 보험금 관련 530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에 이어 다시 한번 패소했다. 법원은 건보공단의 원고 적격성은 물론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흡연과 폐암 간 개별적 인과관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최근 대법원이 ‘가습기 살균제’​나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건 등에서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추세인 만큼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강보험공단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사진은 편의점 내 담배 매대. 사진=최영찬 기자

 

서울고등법원은 15일 오후 열린 선고 공판에서 건보공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의 기각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보험급여를 지출한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이 예정한 바에 따라 보험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자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징수한 자금 등을 집행한 것으로 원고에게 침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원고의 직접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에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건보공단이 예비적으로 청구한 제조물책임법상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조물책임법에서는 △설계 도면대로 만들지 못하고, 만드는 과정(공정)에서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제조상의 결함’ △제품을 제조 공정상 완벽하게 만들었더라도, 애초에 설계 자체가 위험하게 돼 있어 피해를 주는 ‘설계상의 결함’ △제품의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거나, 사용법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표시상의 결함’이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제조상의 결함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가 고도의 위험방지 의무가 적용됐던 고엽제 사건을 들어 피고의 책임을 묻는데, 사용방법 해악의 회피가능성, 제조과정에서 투입되는 첨가제 기능 등의 차이를 놓고 보면 담배에도 고도의 위험방지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해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WHO(세계보건기구), 미국암학회 등의 자료를 인용하며 첨가제가 없는 담배가 더 안전하다는 증거를 인정하기 어렵고 1960년대부터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경고해온 사정 등을 적시하며 설계상의 결함과 표시상의 결함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발생의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흡연과 폐암 발생 사실이 증명돼도 개인이 흡연한 시기와 특정 기간, 폐암 등의 발생 시기, 흡연하기 전의 건강 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의 사정을 추가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과거 대법원 판단을 인용했다. 이날 재판부는 “원심은 흡연이 폐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역학적(통계적) 상관관계가 인정되더라도 흡연으로 폐암이 발생했다는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역학적 연구 결과가 실제로 특정 개인의 질병에 대한 개별적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게 전통적 견해인 만큼 재판부는 학문적 한계를 넘어 인과관계 추정 법리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흡연과 폐암 등 발생 사이의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되고 이 사건 대상자들이 30년·20갑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자들도 폐암 중 소세포암이나 편평세포암,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 진단을 받은 점 등의 사정을 비중 있게 고려해 개별적 인과관계를 판단함이 상당하다”고 언급해 향후 건보공단의 입증 노력 여하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속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최근 대법원이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덜어주는 판시를 내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소송’과 ‘가습기 살균제 소송’이다. 대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인정 소송에서 “발병 원인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 않더라도,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추단된다면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며 무죄 취지의 판시를 한 형사재판과 달리 제조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재판에서는 사회통념상 인정될 정도의 역학적 상관관계가 인정되면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 결정이 난 이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건강보험공단

 

건보공단 측은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판결이 나온 뒤 기자들과 만나 “담배회사는 담배를 팔아 수많은 이익을 얻는 데 반해 매년 4만 명이 폐암에 걸리고 2만 명이 폐암으로 사망한다”면서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법원이 유보적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으면 헌법에 나와 있는 건강추구권, 사회적 기본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고를 생각하고 있으며 의료계·법조계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법원을 설득하겠다”고 덧붙였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담배회사 세 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폐암과 후두암을 진단받은 3465명에게 2003~2012년까지 치료비로 보험급여 등의 명목으로 약 533억 원을 지급한 데 대해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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