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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시즌12는 저 너머에 있다 'X파일'

음모론 대명사 된 희대의 명작…그리운 멀더와 스컬리의 환상 호흡

2020.12.22(Tue) 14:51:34

[비즈한국] 지난 11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4를 뒤늦게 봤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어린 시절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를 아내로 맞는 1980년대까지 왔다. 자연 이 시기 영국 수상이었던 마거릿 대처가 주요 인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대처 역 맡은 저 배우, 연기 참 잘하네’ 싶었는데, 그 배우가 질리언 앤더슨이었다! ‘X파일’(The X-Files)의 스컬리 요원! 오랫동안 질리언 앤더슨을 보지 못했던 나는 쇳소리를 내며 여왕과 대치하는 대처가 된 그가 놀랍기만 했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로드쇼인 것처럼, 질리언 앤더슨은 ‘X파일’의 스컬리라고 딱 이미지가 박혀 있었거든.

 

FBI에서 초자연적인 현상 등 기괴한 사건을 전담하는 통칭 ‘X파일’ 업무를 맡는 폭스 멀더와 데이나 스컬리 요원. 이들을 연기한 데이비드 듀코브니와 질리언 앤더슨은 이 드라마 시리즈로 일약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대중에게 한 캐릭터로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 배우들은 어떤 심정일까. 대표작 하나 갖지 못한 무수히 많은 배우들을 보자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지만 이미지가 한정되는 괴로움도 있을 것이다. 시리즈로 선보이는 미국 드라마의 경우 인기에 따라 장장 몇 년부터 십수 년간 제작되기도 하니까. 그런 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연배우들의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 경제적 이득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 외 작품에서 빛을 못 발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오랫동안 질리언 앤더슨을 잊은 것은 워낙 ‘X파일’의 이미지가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넘어서는 작품을 그가 못 만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재미난 건 ‘X파일’이 처음 방영된 1993년만 해도 이 드라마의 성공을 확신하는 분위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시청률 저조한 시간대에 대충 때울 만한 오컬트물이었는데, 이게 기가 막히게 대중에게 먹혔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 10월부터 KBS에서 심야 시간대에 방영했는데, 성우 이규화와 서혜정의 목소리를 입힌 더빙판이 얼마나 인기였다고.

 

‘X파일’의 오프닝 장면과 가장 유명한 대사인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 장면. 이 오프닝 신에서 흐르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BGM도 유명하다. 이 BGM은 지금도 방송에서 종종 쓰이곤 한다. 이 외에도 ‘I want to believe’ ‘Trust No One’ 등의 명대사가 기억난다.

 

‘X파일’은 FBI에서 초자연적인 현상 등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기괴한 사건들을 전담으로 하는 부서의 명칭으로,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요원은 이곳에 자청해 일하고 있다. 어릴 적 여동생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경험이 있는 멀더는 외계인의 존재는 물론 초자연적 현상과 음모론을 믿는 남자. 이에 반해 멀더의 감시 격으로 붙여진 파트너 데이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는 부검도 척척 해내는 의사 출신에 과학적 논리로 설명되는 것을 믿는 이성주의자다.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성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가뿐히 깬 캐릭터 설정부터, 외계인과 늑대인간과 초능력자가 난무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93년부터 2002년부터 9시즌을 이어갔고, 이후 14년 만인 2016년에 시즌10, 2018년에 시즌11까지 무려 25년에 걸쳐 방영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1998년과 2008년에 각각 ‘미래와의 전쟁’ ‘나는 믿고 싶다’라는 부제를 단 극장판 영화도 개봉했을 정도.

 

FBI 부국장이던 월터 스키너. 멀더와 스컬리를 견제하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돕는 인물.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중간관리자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인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X파일’은 크게 외계인에 대해 진실을 감추고 있는 정부와 그를 파헤치려는 멀더와 스컬리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하되 부차적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온갖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다. 외계인과 UFO는 기본이요, 유령, 복제인간, 바이러스, 늑대인간과 흡혈귀, 살인을 저지르는 인공지능, 심지어 시간여행 등 오컬트물과 판타지물에서나 가능한 소재들이 앞다퉈 등장한다. 주인공인 멀더와 스컬리가 툭하면 죽음의 위기에 놓이는 것은 물론 외계인에 납치되는 등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사실 나는 ‘X파일’의 큰 줄기인 음모론보다는 각종 초자연적인 현상과 불가사의한 일들에 더 흥미를 느꼈다. 2002년에 캐주얼한 오컬트를 다룬 ‘신비한TV 서프라이즈’가 생긴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게 아닐까?

 

멀더와 스컬리의 사건에 많은 도움을 주던 론건맨. 외계인은 물론 각종 비밀조직, 주술 등 여러 음모론에 빠삭하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도 제작된 적 있다고.

 

머리가 굵어지고 개인사가 바빠지면서 ‘X파일’은 서서히 내게 잊혀졌다. 시즌11까지 나온 줄도 몰랐고, 질리언 앤더슨이 다른 작품에 출연하는지도 몰랐다.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열연한 ‘캘리포니케이션’은 제법 재밌게 봤지만 그때만 해도 ‘X파일’이 끝났는지 알았지. 시즌11을 마지막으로 질리언 앤더슨이 더 이상 출연하지 않겠다 선언했다니 아마 시즌12는 나오지 않을 전망이 크다. 끝을 확실히 몰라도 ‘X파일’은 두 가지는 확실히 남겼다. 하나는 음모론이나 각종 미공개 파일을 ‘X파일’이라고 통칭하는 일종의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멀더와 스컬리의 ‘케미’가 지금까지 남녀 파트너의 이상적인 사례로 꼽힌다는 것.

 

시가렛 스모킹 맨. 일명 담배 피우는 남자. “모든 것을 부인해라(Deny everything)”이 모토인 정부측 고위인사로, 시즌 후반부까지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앞서 말했듯 멀더와 스컬리는 기존의 관념과 다른 남녀 캐릭터의 설정으로 시작해 처음엔 견제하다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준다. 중학생 시절에 볼 때도 묘하게 섹슈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어지지는 않고 파트너로서 최고의 궁합을 선보이는 게 신기했을 정도. 시즌 후반부로 가면서 스킨십도 조금 있고 인공수정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는 등 가족으로 묶이는 부분이 있다지만, 그래도 멀더와 스컬리의 최고 케미는 이어질 듯 이어질 듯 아슬아슬한데 결국 선을 지키는 데 있으니까(선 넘지 않는 오피스 허즈번드-오피스 와이프 느낌).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가 멀더의 “스컬리, 나예요(Scully, it’s me)”와 스컬리의 “멀더, 어디 있어요?(Mulder, whrer are you?)”일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더 크라운’에서 발견한 질리언 앤더슨에 대한 놀라움으로 다시금 ‘X파일’을 보면 정말 뽀송뽀송하기 그지없는 질리언 앤더슨과 데이비드 듀코브니를 만날 수 있다. 그 시절 심취했던 초자연적인 현상과 음모론에 대한 추억도 스머스멀 밀려든다. 코로나가 극심한 요즘, 방구석에 틀어박혀 볼거리가 필요하다면 ‘X파일’은 어떤가.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믿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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