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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리가 숨쉴 수 있는 건 지구의 자전이 느려진 덕분이다

지구 자전 속도와 산소 농도 사이에 놀라운 연관관계 발견

2021.09.06(Mon) 10:17:49

[비즈한국] 바쁜 하루를 살다 보면 24시간으로는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루의 길이가 조금만 더 길어진다면 여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러한 소원은 이미 조금씩 이뤄지는 중이다. 

 

45억 년 전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자전했다. 당시 하루는 겨우 여섯 시간. 이후 지구의 자전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하루의 길이도 아주 미세하게 늘어나고 있다. 평균 100년에 약 2밀리초, 대략 10만 년마다 하루가 1초씩 길어지고 있는 셈이다. 약 1억 년 전 지구에 살던 공룡들은 지금보다 한 시간 짧은 23시간의 하루를 보냈다. 

 

최근 ‘네이처’에 지구의 자전 속도 변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됐다. 지구의 자전이 서서히 느려진 덕분에 지구 대기에 산소가 풍부해져 생명이 폭발적으로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지구의 자전 속도가 지구의 산소와 생명을 좌우한 걸까? 그 연결 고리에 대해 알아보자. 

 

지구 대기에 산소가 풍부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서서히 느려진 지구의 자전에 그 해답이 숨어 있다!

 

#지구의 하루가 길어지자 산소가 늘어났다

 

지구 대기권의 약 20퍼센트는 산소로 채워져 있다. 지구에 사는 동물 대부분은 바로 이 산소로 숨을 쉬고 살아간다. 하지만 지구에 원래부터 산소가 이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다. 약 30억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 대기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약 24억 년 전 갑자기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산소 대폭발 사건(GOE, Great Oxidation Event)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산소 농도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다가 약 5억 년 전 한 번 더 급격하게 산소 농도가 높아졌다. 이를 신원생대 산소 폭발 사건(NOE, Neoproterozoic Oxidation Event)이라고 한다. 지질학적인 증거를 통해 추정한 지구의 역대 산소 농도 변화를 보면 이 두 번의 시기에 걸쳐서 산소가 ​오늘날 수준으로 ​풍성해졌다. 덕분에 숨을 쉴 수 있게 된 지구 생명체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엽록소를 통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시아노박테리아. 이미지=wikimedia commons


몬타나 빙하 국립 공원에 위치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사진=Rod Benson/Universities Space Research Association

 

이렇게 지구 대기에 산소가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대 지구에 살던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 남세균) 덕분이다. 이들은 엽록소를 품고 있는 세균으로 광합성을 통해 햇빛을 먹고 산소를 뱉어낸다. 그런데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같은 화석 증거를 보면 시아노박테리아는 첫 번째 산소 폭발 사건이 있었던 24억 년 전보다 훨씬 이른 약 35억 년 전부터 이미 지구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왜 시아노박테리아가 지구에 등장하자마자 산소 농도가 곧바로 증가하지 않았을까? 왜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의 출현 시기와 산소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 사이에는 무려 10억 년이라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는 걸까?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해답을 발견했다. 지구의 역대 산소 농도 변화와 정확히 일치하는 패턴을 보이는 또 다른 변화. 바로 지구의 자전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면서 변화한 지구의 역대 하루 길이 변화 패턴이다. 

 

약 45억 년 전 지구가 테이아에게 얻어 맞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던 당시의 하루는 겨우 여섯 시간이었다. 이 충돌의 결과 지구 곁에 거대한 달이 만들어졌다. 달의 중력은 지구에게 조금씩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구 주변을 한 바퀴 공전하는 달에 비해서 지구는 훨씬 빠르게 자전하려고 한다. 달은 자신의 중력으로 자기보다 빠르게 돌고 싶어하는 지구를 계속 붙잡고 있다. 느리게 움직이는 달이 빠르게 돌고 싶어하는 지구의 자전을 조금씩 방해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게 된다. 빠르게 돌고 있는 턴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놓고 서서히 회전 속도를 늦추는 것과 같다. 이러한 효과를 달에 의한 조석 마찰(Tidal Friction)이라고 한다. 그 결과 지구의 자전은 서서히 느려지고 달도 지구에게서 조금씩 멀어진다. 

 

산호 화석에 남아 있는 성장선(growth line)의 개수 변화를 통해 지구의 역대 하루 길이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산호 화석의 성장선은 지구의 역사를 품고 있는 달력인 셈이다. 이미지=Milwaukee Public Museum


실제로 지구의 하루 길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화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닷속 산호는 매일 성장하면서 하루에 한 줄씩 성장선을 남긴다. 일종의 나이테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계절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성장선 사이의 간격이 짧아지고 길어지는 변화를 통해서 1년 단위로 성장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고생대 산호의 화석을 보면 그 성장선의 개수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약 4억 년 전 산호는 1년 동안 400개 정도의 성장선을 남겼다. 하지만 그보다 1억 년 후인 3억 년 전에 살았던 산호는 10개가 적은 390개의 성장선을 보여준다. 4억 년 전에는 1년이 약 400일이었지만 3억 년 전에는 1년이 약 390일로 줄었다는 뜻이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1년은 큰 변화가 없었다. 즉 1년의 일수가 줄었다는 것은 하루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화석 증거를 통해 역대 지구의 하루 길이 변화를 보면 45억 년 전 여섯 시간에 불과했던 하루가 24억 년 전이 되면서 21시간까지 길어졌다. 특히나 지구와 달이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던 과거에는 달에 의한 조석 마찰의 효과도 더 강했다. 그리고 약 20억 년간 지구와 달이 서로 안정적인 궤도를 잠시 유지했고 하루의 길이 변화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약 5억 년 전 또 다시 달의 궤도가 요동치면서 그간 누적된 조석 마찰로 인해 하루의 길이가 늘어나는 시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변화가 이어지면서 하루의 길이가 24시간이 됐다. 놀랍게도 하루의 길이가 가장 뚜렷하게 길어진 시기, 24억 년 전과 5억 년 전은 지구의 대기 중 산소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두 번의 주요 시기와 딱 들어맞는다.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 변화(주황색)와 하루 길이 변화(파란색)을 비교한 그래프. 흥미롭게도 지구의 하루 길이가 확연하게 증가한 시기에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도 크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으름뱅이 시아노박테리아들의 숨 가빴던 하루 

 

과연 이것은 우연일까? 지구의 하루 길이와 산소 농도 변화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서 연구진은 미국과 캐나다 국경 오대호 중 하나인 휴런 호수로 향했다. 이 호수에는 약 25m 깊이에 고립된 해저 웅덩이, 미들 아일랜드 싱크홀이 있다. 그래서 이곳은 산소 농도가 아주 적고 황이 풍부하다. 수십억 년 전 고대 지구의 환경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타임캡슐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싱크홀의 바닥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박테리아 사이에서 치열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보라색의 시아노박테리아로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뱉어낸다. 초기 지구에 살던 시아노박테리아와 비슷하다. 이들과 경쟁하는 놈들은 하얀색의 황산화 박테리아(sulfur-oxidizing bacteria)다. 이들은 황을 먹으며 살아간다.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면 밤 사이 황산화 박테리아들이 싱크홀 바닥으로 올라와 시아노박테리아 위를 덮어버린다. 황산화 박테리아 때문에 햇빛이 가려지면서 시아노박테리아는 광합성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다시 아침이 되고 해가 떠오르면서 황산화 박테리아들이 아래로 물러난다. 그제야 다시 보라색 시아노박테리아들은 일광욕을 하면서 광합성으로 산소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해가 뜨자마자 곧바로 시아노박테리아들의 광합성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보라색 게으름뱅이들을 덮고 있던 황산화 박테리아가 충분히 물러나고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기까지 몇 시간 정도가 걸린다. 

 

미들 아일랜드 싱크홀 바닥에 살고 있는 보라색 박테리아들. 이곳은 고대 저산소 지구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Phil Hartmeyer, NOAA Thunder Bay National Marine Sanctuary


과거 지구의 하루가 겨우 여섯 시간에 불과하던 시절, 낮 시간은 그 절반인 세 시간뿐이었다. 게으름뱅이 시아노박테리아들이 충분히 산소를 만들어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해가 떠오른 뒤 느긋하게 두세 시간 농땡이를 부리다보면 어느새 낮 시간이 다 끝나버리고 해가 저물기 때문이다. 기껏 만들어놓은 산소도 대부분 밤에 자신이 호흡하는 데 다 써버렸다. 결국 이때는 지구의 산소 농도가 증가할 수 없었다. 이후 달에 의해서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고 하루가 점점 더 길어지면서 느긋한 시아노박테리아가 산소를 만들 수 있는 낮 시간도 함께 길어졌다. 

 

실제로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직접 빛을 비춰 일조 시간을 바꿔가면서 박테리아들이 만들어내는 산소의 농도 변화를 비교했다. 그 결과 하루의 길이를 24억 년 전 지구처럼 21시간 정도로 했을 때부터 배출되는 총 산소 농도의 변화가 효과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결과 지금처럼 하루의 길이가 24시간이 되었을 때 딱 현재 수준과 같은 대기 중 산소 농도를 채운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낮이 길어지고 일조 시간이 길어지면서, 바닷속에 시아노박테리아가 뱉은 산소 농도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리고 그 산소가 대기 중으로 올라가면서 대기 중 산소 농도도 함께 높아졌다. 

 

결국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가 현 수준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지구의 자전이 충분히 느려지고 하루가 길어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지구의 짧았던 하루는 박테리아들도 산소를 내뱉을 여유조차 없었던 정말 ‘숨 가쁜’ 하루였다. 고맙게도 지속적인 달에 의한 조석 마찰로 인해 지구도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박테리아들도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셈이다.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우리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산소 분자는 대부분 24억 년 전과 5억 년 전, 두 번에 걸쳐 길어진 지구의 하루를 만끽하며 시아노박테리아가 내쉰 여유로운 한숨의 흔적이다. 

 

참고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totally-new-idea-suggests-longer-days-early-earth-set-stage-complex-life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1-021-00784-3

https://www.mpg.de/17315311/0730-mbio-a-long-day-for-microbes-154772-x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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