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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다반사] 4스타 쉐프의 무한도전, 인천공항 2터미널 '평화옥'

묵직한 육향과 밀도있는 감칠맛 '매운곰탕'이 시그니처

2018.01.29(Mon) 10:44:26

[비즈한국] 지난해 이맘때, 한 사내가 서울과 나주 등지의 곰탕 전문점 여러 곳에서 목격됐다. 육수에 목욕할 기세로, 아무튼 곰탕을 엄청 먹고 다녔다.

 

사내는 지난해 2월 12일, ‘곰탕 팝업’이라는 알기 쉬운 이름으로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서울 홍대 앞과 여의도 월향 등지에서다. 문전성시를 이룬 이 팝업 레스토랑은 2월부터 3월까지 이어졌다. 이내 베트남 쌀국수, 어복쟁반, 평양냉면 등 스핀오프 시리즈도 연중 이어졌다.

 

사내의 정체는 임정식. 쉽게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의 권위를 빌어 설명하자. 뉴욕편에서 ‘정식Jungsik’으로 2스타, 서울편에서 ‘정식당’으로 2스타를 받아 총 4개의 별을 가진 요리사다.

 

가끔 유머러스하기도 한, 대체로 진중하고 모던한 한식을 파인 다이닝의 작법으로 펼쳐내는, 꽤 근사한 요리 퍼포먼스를 펼치는 레스토랑의 예술가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들어 그 원숙함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을 내심 흥미롭게 지켜볼 참이었는데, 아니 갑자기 웬 곰탕이란 말입니까, 임 셰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4층 중앙 우측에 자리 잡은 평화옥. 사진=이해림 제공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고선 못할 일이다. 사실 미친 일이다. 곰탕이며 어복쟁반, 평양냉면, 불고기, 만두 등 그가 지난 한 해 내내 도전한 음식들은 이미 확고한 명장이 존재하며, 쿠데타는커녕 민주적인 정권교체조차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카테고리에 속한다.

 

‘4스타’가 뭐하러 그 아성에 굳이 도전한단 말인가. 질 게 뻔하고, 이겨도 지는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는 않기 위해, 임정식 셰프는 자신도 숭앙하는 그 음식들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용을 썼을까. 아니나 다를까 팝업이 열릴 때마다 찬사와 비웃음이 동시에 터지기도 했다. 임 셰프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의 근원은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4층, 중앙 에스컬레이터 우측(특급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나 시내의 고급 음식점이 대개 입점하곤 하는 목 좋고 비싼 자리)에 으리으리하게 밝혀졌다.

아랍풍 신발을 신고 한반도와 지구의 평화를 메시지로 담은 꼬불꼬불한 ‘평화옥’ 간판. 그리고 짙은 회색 색조의 인테리어에서 요요하게 빛나는 비둘기 모양의 조명, 그리고 긴 커뮤니티 테이블에 놓인 백자 모양의 스테인리스 반찬통. 임정식 셰프의 세 번째 식당 ‘평화옥’​의 첫 인상이다.

 

충전 설비가 갖춰진 커뮤니티 테이블 위로 놓인 스테인리스 용기는 주문 제작한 김치통이다. 사진=평화옥 제공

 

사실 그가 지난해 해온 팝업은 이 식당을 위한 공부, 그리고 실연의 기회였다. 대용량으로 조리해야 제 맛이 나는 음식들이다 보니 팝업 레스토랑으로 테스트 키친을 운영한 셈이다.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하고자 하는 음식은 처음 맛본 그때부터 이미 저 확고한 명장들과 기라성 같은 노포들의 그것과는 처음부터 목표한 바가 다른 듯했다. 뭔가를 깨려는 듯한 의도가 꾸준히 주입된, 뭔가 다르려 애쓰는 맛이었다.

 

역시나, 평화옥에선 고춧가루 양념장을 숙성시켜 빨갛고 매운 맛을 낸 ‘매운 곰탕’을 시그니처로 내세웠다. 그 매움의 밀도나, 감칠맛과 육향의 강도나 매한가지로 묵직하고 진하다.

 

임 셰프가 그간의 팝업에서 내놓았던 것과 똑같이 핵펀치 같은 결이 의도대로 완성됐다. 라이트 잽을 휙휙 날리며 혀를 잠식하는 그 요요한 음식들과는 애초부터 지향이 다르다. 익숙한 음식을 제 방식으로 다시 창조했다. 다른 맛을 만들고자 했음이지, 애초에 익숙한 그 맛들을 이길 생각도 없었다.

 

개업 전날 맛본 평화옥의 매운 곰탕 상차림. 김치류 외에 장아찌 반찬이 추가될 예정이다. 사진=이해림 제공

 

이길 대상으로 여겼던 것은 차라리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여 호사가들의 찬사도, 비웃음도 모두 덧없게 됐다. 평화옥은 18일 오전 6시 오픈 이래로 줄이 잘 끊이지 않는 인기 식당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17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낸 구성은 육개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아삭하게 질감을 살린 배추와 대파가 마치 파인 다이닝 음식의 가니시처럼 색다른 악센트를 만들어 주는 매운 곰탕, 그리고 투명할 정도로 여리여리하게 담은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1인용 솥에 갓 지은 밥이 그 모두를 아울렀다.

 

누룽지 향이 구수하니 유독 진한 향미 품종인 골든퀸 3호 쌀로 이렇게 밥을 제각각 지어 내준다. 김치는 여러 종류를 담아 익을 때마다 돌려가며 두 종씩 내고, 장아찌도 추가한다는 후일담이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라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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