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벤처 투자 시장이 긴 침체기를 지나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성장 가능성보다 독자적인 기술력과 시장 검증 가능성을 갖춘 기업에 자금이 몰리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대학 기술지주회사인 포스텍홀딩스가 딥테크 분야 극초기 투자에 집중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어 주목된다. 포스텍 출신 여부보다 기술적 차별성, 이른바 ‘엣지’를 투자 기준으로 삼고 펀드 직접 출자와 후속 투자 연결까지 맡는 방식이다.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를 만나 딥테크 투자 전략과 대학 창업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펀드 직접 출자 15% 책임 투자…“10배 성장 시 지분 일부 매각”
포스텍홀딩스의 운용자산(AUM)은 약 840억 원 규모다. 조 단위 AUM을 운용하는 대형 VC(벤처캐피탈)와는 차이가 있지만 대학 기술지주회사 가운데서는 적지 않은 운용 규모이며 초기 기술창업 투자에 특화된 대표 운용사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고병철 포스텍홀딩스 대표는 “지금까지 177곳에 투자했다”며 “초기 창업 3년 미만, 길게 봐도 5년 미만의 회사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텍홀딩스의 투자 철학은 당장 유행하는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기술적 차별성을 뜻하는 ‘엣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 대표는 “시드 투자를 주로 하기 때문에 뚜렷한 강점을 보유한 엣지 있는 회사를 선호한다”며 “특히 대학 기술지주회사인 만큼 일반적인 플랫폼이나 서비스보다는 딥테크 등 기술 기반 회사를 1순위로 발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인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자교 출신의 창업이나 특허 사업화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과 달리, 포스텍홀딩스의 투자 비중은 포스텍 출신과 외부 기업이 5 대 5로 팽팽하게 나뉜다. 출신 학교나 간판보다는 엣지를 보유했는가를 최우선 투자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포스텍에 없는 기술을 가진 곳이라면 다른 대학 교수 창업 기업이라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실제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헬스케어 벤처 투자 비중도 높다. 고 대표는 “바이오벤처 20~30여 곳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들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20% 이상을 차지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국내 바이오 시장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짚었다. 그는 “국내 의료 현장에서 무조건 국산 제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에서 검증된 제품을 선호하다 보니 국산 제품의 초기 진입이 쉽지 않다”면서 “많이 사용되고 기능을 확인받으며 개선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어려움이 많다”고 분석했다.
포스텍홀딩스는 펀드마다 약 15%를 자체 자금으로 출자해 운용사와 투자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책임 투자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펀드의 유동성도 적극 확보하고 있다. 고 대표는 “딥테크 기업이 IPO(기업공개)까지 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펀드 운용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투자 이후 기업 가치가 10배 정도 올라가면 지분을 일부 매각해 수익을 실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2억 원을 투자해 원금 기준 약 4분의 3 규모의 지분을 매각하고 약 45억 원을 회수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에이치앤지와 3년 만에 가치가 10배 뛰어 지분 전량을 매각한 테이블 오더 솔루션 스타트업 페이히어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시행착오 줄이는 창업 허브, ‘한국판 실리콘밸리’ 꿈꾼다
포스텍홀딩스는 교수 창업가들이 각자의 연구실에서 공통으로 겪는 시행착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자산화하는 허브 기능을 수행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자라 해도 훌륭한 경영자가 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포스텍홀딩스는 학기 중에도 정기적으로 연구실을 방문하는 밀착 컨설팅을 진행한다. 고 대표는 “초기 기업에 처음부터 완벽한 드림팀은 있을 수 없다”면서 “자기만의 드림팀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창업”이라고 역설했다.
연구실 안팎을 잇는 가교 역할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데모데이를 열고 드론 기술을 보유한 나르마, 세포배양 기술 기반 원료 생산기업 셀위버스 등 8개 유망 포트폴리오 기업을 외부 투자자들에게 소개했다. 창업가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동시에 후속 투자 유치의 마중물 역할까지 해내며 시장과 접점을 넓혀주는 것이 기술지주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게 고 대표의 지론이다. 고 대표는 “투자자들을 우리 포트폴리오로 연결하는 자리”라면서 “지주사 차원의 직접 투자뿐만 아니라 다른 투자사들과 연결해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포스텍홀딩스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잇는 연결 창구 역할도 자처한다. 고 대표는 “대기업 오픈 이노베이션 팀이 유망 스타트업이나 교수의 연구 과제를 원활하게 발굴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도 한다”며 “특히 투자 포트폴리오 중 B2B 기업의 비중이 높은 만큼 이들이 대기업·중견기업과 만나 실질적인 기술 실증(PoC)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남을 적극 주선한다”고 밝혔다.
고 대표가 그리는 포스텍홀딩스의 궁극적인 청사진은 뭘까. 바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처럼 막대한 자체 재원을 바탕으로 한 투자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고 대표는 “미국 유명 사립대학들은 수십조 원의 재원을 운용하는데 실리콘밸리가 스탠퍼드대학을 중심으로 기술 사업화와 스타트업 발전을 이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포스텍홀딩스 역시 포항공대의 가장 큰 기부자이자 배당자가 돼야 한다”며 “공과대학도 현실 시장에서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입증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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