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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땅: 듀랑고’에서 체험한 인류 문명의 탐식 진화기

불에서 발효까지…음식 진화를 게임 내 함축적으로 구현

2018.02.08(Thu) 13:57:50

[비즈한국] “비상금을 태워 몸을 녹였다. 독을 먹는다고 꼭 죽는 건 아니었다. 점점 이곳이 좋아진다.”

 

TV 광고 카피에 마음이 설렜다. 공룡과 정글과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움막집이 멀쩡한 월세 집 보다 나아 보일 때가 있다. 돈 같은 거 알 게 뭐람. 되는 대로 주워 먹고 잡아먹는 야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푸드 라이터로서 말하건대, 지구엔 맛없는 음식이 너무도 많다. 맛있는 음식보다는 효율적인 음식을 지지하는 어떤 사람과 함께 먹고 살자면 때로 나도 지구를 떠나고 싶다. 가즈아!!! 공룡을 잡아 부싯돌로 모닥불을 피우고 1++ 등급 공룡 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먹자! 그리하여 단 5일 만에 이뤄진 230만 다운로드 러시와 피크 때는 다섯 자리 숫자까지 치솟았던 접속 대기자 행렬에 동참했다. 

 

광고 카피가 나를 세뇌시켰다. 조난 인류에게 더 이상 주택대출은 없다. 당연히 월세도 내지 않겠지(그런데 내더라). 필요한 도구는 내가 만들고(귀찮은 일이었다), 친구는 찾아야겠지(친구가 줘야 하는 어려운 도구와 재료들을 경매장에서 다 살 수 있더라). 아무튼 공룡 고기 스테이크다! 병든 이 문명은 기한이 다했으니 자연으로 돌아가즈아!!!

 

공룡과 공존하는 원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야생의 땅: 듀랑고’에서는 요리를 포함,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 사진=넥슨 제공

 

지구에서의 직업도 당연히 요리사, 듀랑고에서의 진로도 당연히 요리사 직업을 택했다. 개인적인 일탈 충동과 별개로 인류 문명의 요리 발달사도 게임으로나마 체험하고 싶었다. 다분히 학구적인 호기심으로 나는 야생에 정착했다. 

 

인류 문명은 불을 ‘발명’했다. 불이 등장한 이후로 인류의 섭식 생활은 효율과 쾌락 두 가지 방향성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하여 이제 분자 요리나 수비드 같은 미래적인 조리법이 변방의 조악한 술집에서도 널리 응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동시에 공장 생산을 통해 얼마든지 싸고 푸짐한 음식도 공급되고 있다. 인류의 조리 문명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체험해봤다. 조난 인류가 된 나의 조리 문명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처음은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나뭇가지에 날것을 꿰 굽는 꼬치구이가 첫 요리다. 생식할 때는 “입 안에 비린내가 진동 한다”며 ‘맛없음’ 디버프가 자꾸만 떴다. 이 디버프는 ‘너무나 맛없는 나머지 시름시름 건강이 깎여나가는’ 고약한 디버프다.

 

불은 인류를 추위로부터 지켜준 위대한 발견인 것과 동시에 인류의 미각을 깨워주었다. 사진=넥슨 제공

 

불에 날것을 굽자 나의 캐릭터는 ‘맛있음’ 버프를 띄우고 튼튼하게 스태미너를 채웠다. 육회도 맛있지만 거기에 화학적 변성을 가해 구워진 단백질의 맛을 보태면 날것의 단 맛과 변성된 단백질의 고소한 맛, 감칠맛이 함께 난다. 달콤하고 고소하게 진화된 맛이다. 참고로 이건 스테이크가 맛있는 이유다.

 

불 다음은 도구의 발명이다. 조난 인류가 조리도구를 발명했다. 돌로 돌을 쪼개고, 나무를 타는 것을 익히자 캐릭터가 쓸 수 있는 조리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나무냄비로는 삶기, 찌기, 끓이기를, 돌판 으로 구이를 해내고, 금속 문명까지 도달하자 프라이팬을 만들어내고 곡물, 견과류의 기름을 짜내 볶음 요리까지 가능했다. 도구가 문명을 견인했다.

 

맛도 창대하게 번성해갔다. 또 하나 중요한 발명이 양념이었다. 역시 인류의 진화 방향은 맛있는 쪽을 향해 우직하게 달려온 것이 맞았다. 소금과 설탕을 발명하자 캐릭터에겐 ‘맛있음’ 버프가 꺼질 날이 없었다. 잉여 식재료는 워프된 냉장고에 보관해 봐야 야생에 전기가 없으니 냉장이 안 된다. 캐릭터는 보존 식품도 빠르게 익혀나갔다. 나의 캐릭터는 훈제, 건조에 이어 염장까지 익혔다. 채집, 사냥을 나가지 못하는 날에도 ‘보관함’은 언제나 꽉 찬 곳간이었다.

 

인류(정확히는 한국인)가 치킨을 배달시켜 먹기 시작한 것은 전체 인류 역사를 통틀어볼 때 찰나에 불과하다. 사진=넥슨 제공

 

한층 더 맛이 폭발한 시점은 발효였다. 캐릭터는 이제 나보다도 요리를 잘하기 시작했다. 효모를 키워 빵을 굽고, 식초를 발효시키고 있다. 더 레벨이 오르면 치즈나 술(와인까지도 가능하다)도 만든다고 하니 인류의 진화 방향은 역시나 쾌락을 향해 ‘두두두’ 돌진해왔던 것이 맞았다.

 

아직 가보지는 못한 경지이지만, 듀랑고에서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려고 미리부터 부지런히 쌀을 재배하고 있다)와 햄버거, 피자, 프라이드 치킨, 양념 치킨, 빙수까지도 만들 수 있다. 듀랑고 세계엔 이미 ‘만렙’을 찍은 조난 인류들도 우글우글하니 꼬치구이에서 시작해 단 며칠 만에 지구의 음식 문명을 따라잡은 셈이다.

 

추후 대규모 업데이트가 나온다면 분자 요리를 만들고,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는 식당을 열 수 있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술과 도구는 충분하다. 맛있게, 더 맛있게! 극상의 미식 경험을 스스로 진화해 만들어 보자! 그리하여 나는 점점 더 맛있는 것을 조합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이 게임의 레벨 업이 너무나 즐겁다. 

 

야생에서 만드는 음식 중에 ‘고기빵’이라는 것이 있는데 아이콘부터도 참 맛있어 보인다. 사진=야생의땅: 듀랑고 게임 화면 캡처

 

라는 것은 먹보인 나의 생각이고, 게시판 등을 둘러보니 실제로 ‘만렙’들이 즐겨 조리하는 음식은 결국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채워 주는 ‘회찜찜’​(재료를 얇게 떠서 두 번 찐 것)인 모양이다. 맛있어 보이는 수많은 조리법들이 있음에도, 포 뜬 고기를 양념도 없이 쪄먹는 끔찍하게 맛없는 것을 즐겨 먹고 있다니. 맛보다는 양, 맛보다는 가성비가 앞서는 어떤 지구인들이 벌이는 구슬픈 괴식의 향연과 다르지 않다. 

 

문명은 언제나 맛의 쾌락을 향해 달려가지만, 동시에 효율을 향해서도 달려간다. 다시 주어진 문명 진화의 기회에서도 조난 인류는 스마트폰 밖의 현실 세계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싸고 맛있고 배부른’ 음식은 듀랑고 문명에서도 결국 다수의 지향점이었다.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은 계속된다. 내 캐릭터의 만렙까지는 아직 13레벨이 남았고, 나는 꿋꿋이 나만의 야생 조리 문명을 발달시켜나가며 맛의 진화를 즐길 셈이다. 그러는 동안에 회찜찜보다 인기는 덜한 것 같지만 맛있어 보이고, 고기빵과 돌판 고기빵 구이, 수육, 꼬치구이구이를 지지하는, 때로는 귀찮고 번거로워도 굳이 떡볶이나 양념 치킨을 만들어 먹고야 마는 듀랑고의 먹보 유저들을 어느 ‘불안정섬’에서건 만나보고 싶다. 

 

그나저나 고기빵은 꽉 찬 고기 속이 표현된 아이콘만 봐도 참 맛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서울 동대문의 ‘사마리칸트’라는 우즈베키스탄 식당에 가면 정말로 빵 안에 고기를 꽉 채운 ‘고기빵’을 맛볼 수 있답니다.​ 

이해림 푸드 라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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