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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권 대리는 금지, 총회는 같은 날…'슈퍼 주총데이' 대란 예고

소액주주 권리 위한 '섀도보팅' 폐지 여파…금융당국 "정족수 미달 상장폐지 사유 제외"

2018.03.09(Fri) 15:01:45

[비즈한국] 3월 말 열리는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총 대란’이 예상된다. 올해 처음으로 ‘섀도보팅(그림자투표) 제도’ 없는 주총이 예정돼 있어서다. 그동안 소외됐던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정부 조치지만, 제도 폐지 후 처음 진행되는 주총인 만큼 업계 혼란과 각종 부작용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코스피 상장 기업인 A 사 IR본부 관계자는 최근 주주총회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섀도보팅이 폐지되면서 주총 참석률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으로선 개별 주주 한 명이 중요하다. 우호적인 주주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다음 문제다. 주주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도 남기고 일부는 전화도 걸고 있다”고 말했다.

 

B 그룹 계열사는 회사 직원 대부분이 ‘주주 모시기’에 나섰다. 이 회사는 상장사 가운데 소액주주 지분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B 사의 한 관계자는 “IR이나 영업 등 일부 부서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다. 최근까지는 전화로 주총 참석이나 전자투표를 독려했는데, 앞으로는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위임장을 받아와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섀도보팅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를 대신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참석한 주주들의 찬성과 반대 비율대로 불참 주주들이 투표한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는 일을 방지하는 등 ‘경영효율성’ 명분으로 1991년 도입됐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의결권을 대리 행사하면서 주주의 동의나 위임이 없어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는 데다, 일부 기업들이 최대주주나 경영진 등 소수를 위해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서다. 논란 속에서 금융당국이 2014년 말 폐지를 결정했지만 상장사들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3년간 유예됐다가 올해부터 시행됐다.

 

섀도보팅과 함께 일명 ‘슈퍼 주총데이’도 주주 권리를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슈퍼 주총데이는 특정일에 상장사들의 정기 주총이 몰리는 날을 말한다. 통상 3월 셋째 주나 넷째 주 금요일 오전에 몰린다. 지난해의 경우 총 924개 기업이 3월 24일에 주주총회를 열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주총이 특정일에 집중되면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 현실적으로 모든 주총에 참석할 수 없어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 정부가 셰도보팅 폐지에 맞춰 각 상장사들에게 주총 분산개최를 유도하고 있는 이유다. 

 

정부는 제도 폐지와 관련,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상장사들이 충분히 대안을 마련할 시간이 있었고, 전자투표 활성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상장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겼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의 A 사나 B 사 사례와 같은 ‘주주 모시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첫 번째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이제 주총 정족수를 채우려면 소액주주들을 다 챙겨야 하는데, 상장사 소액주주들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이 4~5개월이다. 300여 명의 회사 임직원을 투입해도 수천 명에 달하는 주주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다”며 “​주주들의 연락처나 주소 등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총에 대한 관심도 적다. 전자투표도 같은 이유로 독려는커녕 안내조차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주주 구성 파악이 안 되면 주총 자체를 개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제도 폐지 취지는 좋지만 이보다 앞서 소액투자자의 장기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 먼저 마련됐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주총 분산 개최에 대한 보완책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주총이 쏠리는 날을 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사는 재무제표 등의 확정과 공시를 위해 정기주주총회를 매년 한 차례 개최해야하는데, 결산일로부터 90일 이내로 기한이 정해져있다. ‘슈퍼 주총데이’가 3월에 몰리는 이유다. 

 

다른 상장사 관계자는 “3월 슈퍼 주총데이를 피하려면 1월에 재무제표 작성을 마쳤어야하는데, 회계인력도 부족하고 감사는 관행적으로 대기업을 우선한다. 시간상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주총 날짜를 조정하라”는 메시지도 주총 한 달 전인 2월에 나온 점도 지적된다. 금융위원회의 지난 2월 1일 ‘상장회사 주주총회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주총회 분산개최, 전자투표 접근성 제고, 주총안내 강화, 참여주주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대국민 홍보 강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상장사들이 예정했던 주총 일정을 ‘부랴부랴’ 변경해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의결권 위임을 대행하는 사업도 특수를 맞고 있다. 그동안 대행업체는 10곳이 채 안됐지만, 제도 폐지 이후엔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장사들의 입장에선 주총 개최를 못하면 안건 처리는 물론 배당금 지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특히 소액주주들의 지분 비율이 높은 상장사들은 대행업체가 큰 돈을 요구해도 일을 맡겨야하지만, 소액주주들이 모이더라도 안건이 부결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짜 위임장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가짜 위임장이 적발되면 즉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지만, 상장사들이 간발의 차이로 주총을 못 여는 상황이 오면 유혹을 뿌리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회꾼’​은 최근 상장사 관계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총회꾼은 상장사 주식을 한두 주만 보유하면서 일부러 주총을 방해하는 악성 투자자를 말한다. 일부 총회꾼은 상장사에 금품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회사 입장에선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슈퍼 주총데이가 총회꾼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며 “주총 분산 개최가 자리 잡으면 다시 총회꾼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정부도 섀도보팅 제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은 파악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정족수 미달로 주총을 열지 못한 경우는 상장 폐지 사유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증권회사가 주주들에게 주총 일정과 방법을 안내 하도록 하는 한편, 전자투표 참여자에게 모바일 기프티콘이나 경품을 제공해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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