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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토익 900점에 500만 원' 취준생에게 뻗치는 검은 유혹

현직 토익학원 강사가 '선수'로 직접 뛰기도…취준생 "사회가 몰고 가는 것"

2018.11.16(Fri) 11:55:00

[비즈한국] 천재 소녀가 피아노를 치듯 책상 위에서 손가락 춤을 춘다. 검지를 들썩하면 1번, 중지와 엄지를 함께 움직이면 2번을 뜻한다. 그녀의 신호를 알아들은 반 친구들은 재빨리 답안지를 채워 넣는다. 태국 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한 장면이다. 가난한 소녀가 부유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답을 알려주는 ‘커닝’으로 학비를 벌고 있었던 것.

 

영화 같은 스토리가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태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다. 지난 8일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합성사진을 활용해 토익(TOEIC)이나 텝스(TEPS) 등 어학 시험을 대리로 치르는 방식으로 돈을 챙긴 일당 총 35명을 검거했다. ‘비즈한국’은 실제 토익 시험 대리 응시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추적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현장 경험은 배제한 채 학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구조입니다.’ 토익 대리 응시의 유혹은 사회의 아픈 곳을 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진=SNS 광고 캡처

 

접촉은 간단했다.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에서 한 번의 검색만으로도 5곳의 ‘학원’과 연락할 수 있었다. ‘학비’는 270만~500만 원선. 만점인 990점에 가까운 점수도 가능하다고 했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묻자 자신을 ‘실장’이라고 소개한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대답했다.

 

“토익 900점 받으려면 적어도 2~3개월 학원을 다녀야 하고, 시간 통째로 써서 공부해야 하잖아요. 토익 등록비도 있죠. 근데 그렇게 하고도 900점 이상 받을 거란 보장 있어요? 돈 있으면 이거 하는 게 나아요.”

 

# YBM 관계자까지 들먹이며 ‘뒷돈’​​ 건넨다는 브로커 조직

 

대부분 학원의 운영 방식은 비슷했다. 여기서 학원은 브로커 조직이다. 브로커 조직은 ‘의뢰인’을 교포나 유학파 등으로 구성된 토익 전문가인 ‘선수’와 연결해주고 ‘계약금’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긴다. 학비가 300만 원이라면 계약금은 100만 원 수준이다. 이들 학원의 공통점은 계약금을 입금해야 일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토익 대리 응시 브로커 조직과 주고받은 이메일​. ‘선수’​가 시험을 대신 봐주는 방식이나 기계적 장비로 답을 알려주는 방식은 400만 원이라고 했다. 전산을 해킹하는 방법은 가격이 500만 원으로 더 높다. 국내팀과 국외팀으로 나뉘어 조직적으로 범죄가 벌어지고 있었다.

 

계약서는 쓰지 않는다. 모든 학원은 대리 시험이 불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A 학원 실장은 “대리 시험이 불법이라 계약서는 없다”고 못 박았다. 학원에 계약금을 넣었는데 연락이 끊기면 돌려받을 길은 없다. 실장들은 ‘믿음’을 가지라고 종용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기술’은 다른 학원보다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전액 환불을 보장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A 학원 실장은 “하루에 10명 정도 문의가 온다고 치면 그 중 3명은 실제로 한다”며 “우리 단톡방에 ‘선수’가 170명 정도 있다. 문의가 오면 거기 공지를 띄워서 점수랑 장소가 맞는 사람을 매칭해드린다. 우리 전문가니까 걱정 마라. 안 걸린다”고 강조했다.

 

토익 대리 응시 브로커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다. 이 브로커는 토익 시험을 주관하는 YBM 관계자에게 돈을 건네 시험을 조작한다고 주장했다.

 

학원마다 쓰는 ‘​기술’​은 달랐다. 취재 중 알게 된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토익 등 어학시험 주관 기관인 YBM의 전산망을 해킹하거나 토익 시험 감독관으로 들어오는 YBM 관계자에게 ‘뒷돈’을 준다는 것이었다. 

 

B 학원 실장은 “우리는 신분증으로 장난질 안 한다. 그건 하수나 하는 거다. 사장님(대리 응시 문의자를 지칭)이 토익 신청하시고 신청 번호만 알려주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한다”며 “YBM 관계자한테 뒷돈을 주거나 전산을 해킹해서 우리 선수 신상 정보로 바꾼 뒤에, 선수가 시험 치고 점수가 나오면 다시 사장님 신상 정보로 바꿔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YBM 관계자는 “거기(토익 대리 응시)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부정행위와 관련해서) YBM 관계자가 적발된 사건도 없다”​고 답했다. 

 

# 실제 선수 만나보니…“내 직업은 토익학원 강사”

 

‘비즈한국’은 실제 ‘선수’를 부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자는 신분을 속이고 C 씨에게 토익 시험 대리 응시를 의뢰했다. C 씨는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직접 정했다가 변경하는 등 기자가 경찰이 아닌지 확인하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브로커 집단에 소속돼 있지 않고 개인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C 씨는 “나는 시험장에 들어가서야 돈을 받는다. 그 전엔 받지 않는다. 계약금을 달라고 하는 업체는 다 사기다. 내 의뢰인 중에도 당한 사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C 씨는 700점대는 150만 원, 800점대는 250만 원, 900점대는 40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의 기술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커닝 수법에 가까웠다. 그는 가로세로 약 4cm 정사각형 모양의 메모지를 꺼내며 설명했다. 메모지는 두 번 반듯하게 접혀 네 등분이 돼 손에 쏙 들어왔다. C 씨는 “한 구역에 정답 50개를 적는 거다. 총 200문제가 들어간다. 이걸 내가 시험 당일 (의뢰인에게) 직접 전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익 대리 응시 ‘선수’​인 C 씨와 만남에서 봤던 메모지를 기자가 재현했다. C 씨는 한 구역에 50문제의 답을 적어 총 200개의 답이 적힌 메모지를 시험장에서 의뢰인에게 직접 건넸다고 했다. 한 손에 들어가기 딱 알맞은 크기였다. 사진=박현광 기자

 

C 씨는 “당일에 나도 같은 수험장에서 같이 시험을 친다. 반이 같을 필요는 없다. 시험 시간 18분 남았을 때 내가 화장실이나 사전에 약속된 장소에 숨기면 의뢰인이 15분 남았을 때 나와서 가져가는 방식”이라며 “시험 감독관은 앞의 책상에 앉아 있기 때문에 감시가 허술하다. 마킹할 때 너무 티만 안 나게 주의하면 된다”고 답했다. 토익은 시험 중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다만 시험장 복귀 시 감독관으로부터 금속 탐지기로 몸 수색을 받는다.

 

이어 C 씨는 만난 자리에서 YBM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신의 토익 시험 점수를 보여줬다. 975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달에 최소 10건 의뢰를 받는다. 조심하기 위해서 매회 차에 응시하진 않는다. 점수가 갑자기 뛰면 YBM에서 성적을 보류하기 때문에 성적이 아예 없는 게 좋다”며 “사실 나는 실제 학원에서 토익을 가르치는 강사다. 아는 형님도 선수로 뛴다”고 고백했다.

 

C 씨는 “처음엔 용돈이 필요해서 했다. 이제 2년이 조금 안 됐다. 취업 준비생들이 많이 찾아온다. 우리 사회에선 스펙이 중요하니까 수요가 꾸준하다”고 덧붙였다.

 

# ‘청년 실업자 36만 명​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청년 실업률은 8.4%, 청년 실업자 35만 9000명에 달한다. 청년 실업 문제는 날이 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권장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 채용에선 ​‘스펙​’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지난 10월 22일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7급 정기 공채에 지원한 D 씨(30)는 필기시험을 통과했지만, 토익 성적을 허위로 기재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공무원시험에서 부정행위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5년간 국가공무원시험 부정행위는 2014년 65건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7년 79건 적발됐다. 올해는 9월까지 46건의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지난 10월 22일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공무원시험에서 부정행위 적발이 늘고 있다. 2017년 79건, 올해는 9월까지 46건의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들은 오히려 이해가 된다는 반응이다. 취업준비생 박 아무개 씨(24)는 “솔직히 말하면, 돈만 있으면 대리 시험할 것 같다. 어느 회사에 지원하든 토익 점수는 기본적으로 필요한데, 그 점수 따는 데 내 시간을 써야 하는 게 아깝다.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토익을 공부해도 실전 영어가 느는 것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직을 준비 중인 최 아무개 씨(27)는 “만약 당장 점수가 필요한데 내가 공부를 안 한 상태라면 쓸 만할 것 같다. 솔직히 물론 범죄지만 이게 그렇게 나쁜지도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도록 몰고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한편 부산경찰청은 토익 대리 응시를 주도한 브로커집단에게 시험 주관사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와 건조물 침입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신분증을 위조해서 대리로 들어간 사람과 사주한 사람 모두에게 범죄 혐의가 적용된다”​고 답했다.

부산=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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